매거진 29세 관점

여인의 향기

해변을 뒤로하고.

by 언더독

서기 2023년 4월 8일, 부산 광안리 해변 근처에 살다가 상경했다. 서울을 몇 번 와보긴 했지만, 낯선 것은 매한가지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사람이 많다. 무지하게 많다. 부산에서도 시끌벅적한 것을 피해왔던 사람인지라, 더더욱 상당한 위기감을 느꼈다. 앞으로 더 집에서 안 나갈 것 같다. 잘 되었다. 돈 아끼고 글 쓰는데 집중할 수 있겠다.


사람들의 얼굴 인상도 다르다. 광안리 해변 근처는 관광지이다 보니 사람들 얼굴이 그래도 좀 편 축이였다. 서울에 사는 사람들은 얼굴이 나보다 사납게 생긴 사람이 꽤 많이 보인다. 그러기 쉽지 않은데 말이다. 남자들은 그러하다. 여자들의 경우 오묘한 괴로움 같은 것들이 베어난다. 하여튼 분명한 건 저건 행복한 표정은 아니다.


치열한 곳임에 틀림없을 것이기에 어느 정도 그렇겠거니 예상은 하고 왔다. 생각보다 그 진하기가 더 한 것 같다. 걱정이 되지만 나는 이미 서울에 와버렸고, 되돌릴 수는 없다. 앞으로 방구석에서 두 번째 출판을 위한 글쓰기를 통해 참선하며 지낼 계획이다. 괜히 밖에 나다녔다가 시비나 걸릴 것 같다.


앞으로 서울 생활을 더 해봐야 알겠지만, 부산 사투리를 쓴다고 크게 관심가지는 사람은 없는 듯하다. 다행이다. 서울에서는 촌놈 티 내면 코 베어 간다고, 고향 친구는 나에게 항상 코를 두 손으로 잡고 다니라는 둥의 우스운 소리를 했다. 자기도 촌놈이면서 말이다.


내가 상경한 이유는 기회를 더 만들어 내보기 위해서이다. 출판을 하려면 출판사와 원고를 주고받는 작업이 필요하다. 물론 기술적으로는 메일로도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회의를 해야 할 경우가 생길 수 있다. 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픈 나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원고를 들고 직접 출판사를 찾아가는 간절함을 보여야 할 필요도 느꼈다.


내가 같이 일하고 싶은 출판사는 기존에 경제, 경영, 자기 계발 분야로 베스트셀러 작가를 배출해 본 곳들이다. 특히, 그저 출판사의 일을 하는 곳보다는 출판사의 대표 스스로가 인플루언서인 곳들이 욕심이 난다. 지금의 시대에서는 대중들의 주목을 받는 사람들이 기회를 얻고, 성공한다.


현재 나의 상황은 이렇다. 굶어 죽지 않을 만큼의 실업급여가 3~4개월 간 나올 예정이다. 그 안에 두 번째 출판 원고를 완성할 계획이며, 출판사들에 투고할 예정이다. 나는 전직 항해사로, 가지고 있는 라이센스는 모두 바다에서 사용되는 것들이다. 그래서 서울에서 취업을 위해 쓸 수 있는 자격증 같은 건 전무하다. 실업급여가 끝나갈 무렵이 되면 무슨 일이든 해야 한다. 배달이든 막노동이든 말이다.


현재로서는 최선을 다해 원고를 완성하고, 존재하는 출판사들에게 빠짐없이 투고해 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지이다. 다른 방법은 없다. 잘 될 거라는 보장도 없다. 다만, 내가 처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움직임을 실행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무모한 것이다.


무모한 도전은 무모해도 될 때 해야 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지금은 처자식이 없다. 나하나 고생하면 되며, 오늘의 나는 몸도 성한 편이다. 2~30대의 사람들이 고민에 휩싸여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상당한 리스크라고 생각한다. 국방부에서도 흐르는 게 시간이라고 했다. 잔인하게 흘러가는 시간의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탱고를 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화 '여인의 향기'에 나오는 한 장면을 인용하고 싶다.

장님이 된, 나이 든 퇴역군인 '프랭크'가 연회장의 한 미녀에게 탱고를 같이 춰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하는 장면이다. 미녀는 탱고를 춰본 적이 없다며 걱정을 표하는데, 그런 미녀에게 '프랭크'는 이렇게 말한다.


"if you make a mistake, if you get all tangled up, you just tango on."

"탱고를 추다가 실수를 해서, 스텝이 엉키게 돼도 그게 바로 탱고입니다."


다시 한번 강조해서 말하지만, 탱고를 추자고 제안하는 '프랭크'는 다 늙은 노인이며, 장님이라 지팡이도 짚고 다닌다. 그런 그가 젊고 아름다운 여자에게 탱고를 추자고 제안하고 설득까지 했다. 연회장 중간의 무대 넓이와 구조는 같이 다니던 고등학생 '찰리'에게 구두 설명을 부탁했고, 이를 바탕으로 눈으로 볼 수 없는 무대의 범위를 짐작하여 그녀와 멋진 탱고를 춰낸다. 탱고 음악 'Por una Cabeza'가 끝난 뒤, 연회장 손님들의 박수갈채를 받는다. 이 얼마나 무모하고 아름다운가.


20대 후반의 나이. 어쩌면 지금이 마지막 탱고를 춰볼 수 있을 만한 시기일 수 있다.

그리고 이 황금 같은 나이에도 용감히 무대로 나가지 못한다면, 남은 인생에 동안에도 자리에 앉아 남들 춤추는 것 구경이나 하고 있을 확률이 아주아주 높다. 내가 그렇게 살았더라면 쭈그렁탱이 백발이 된, 후일의 내가 나를 용서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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