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사회?
나는 내 인생을 1막 그리고 2막으로 나눴다. 1막은 물리적, 정신적 자유를 목표로 한 끊임없는 투쟁이다. 2막은 물리적, 정신적 자유를 성취한 힘을 바탕으로 부모, 형제 그리고 내가 한창 어려울 때 나를 도와준 내 사람들의 인생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다. 나는 자유인이 된 이후에도 계속 바쁠 예정이다. 내 밑의 후손들에게 그리고 우방들에게 자유를 물려주고 나눠주는 가문의 시조가 될 것이다.
지금의 진행 상황은 1막의 50% 정도 온 상태이다. 이를 더 빨리 이뤄내기 위해 오늘도 사색을 하고 글을 쓴다. 글을 써서 성공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베스트셀러를 달성해 돈을 벌고, 개인 브랜딩을 통해 강연 등의 다른 방식으로도 돈을 벌겠다는 생각이다. 이를 여우처럼 애써 둘러대거나 거짓말하고 싶지 않다.
글을 쓰는 사람이 돈을 벌겠다고 하는 마음을 보고 안 좋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독자들에게만큼은 솔직하고 싶다. 대중들에게 참신하고 흥미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그들의 삶에 변화를 줄 씨앗을 글을 통해 심어 줄 수 있다는 전제하에, 정당한 대가를 받고 싶다. 정말로 그러한 가치를 충실히 제공했다면 말이다.
이 가치를 만들기 위해 자나께나 참신한 소재를 생각한다. 참신한 관점을 생각한다. 조금이라도 진부한 것 같으면 천자를 썼든 만자를 썼든 다 지워버린다. 무에서 다시 시작한다. 샤워를 하다가도 좋은 생각이 나면 뛰쳐나와 메모를 휘갈긴다. 밥을 먹다가도, 응가를 하다가도 그럴 때가 있다.
좋은 생각이라는 것은 일각이 지나면 휘발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명 작가 또는 감독들이 별안간 괴성을 지르거나 의자를 던진다던지 또는 책상을 엎는다던지 하는 괴팍한 행동을 하는 것이다. 자기가 까먹어서 화난다 이거다.
영화 '어바웃 타임'을 보면 그런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이 아버지 친구 집으로 이사를 간다. 아버지 친구는 유명 극작가였고, 주인공이 그 집 벨을 눌렸다. 대문을 열고 나온 극작가는 썩은 표정으로 그에게 말한다.
'who the fuck are you?'
주인공이 집안에 들어와 커다란 배낭을 메고 거실 한가운데 뻘하게 서있는 동안, 극작가는 방에 들어가 괴성을 내지른다. 그리곤 나와서 주인공을 노려보며 말한다. 방금 정말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는데 네놈이 초인종을 눌렸고, 지금은 까먹었다고 말이다.
겉보기에 별 것 아닌 것 같은 글에 그런 노력이 밑바탕으로 자리하고 있다. 내 글이 정말 영양가 있는 글이라면 자연히 출판 시장에서 결과가 나올 것이라 믿는다.(그런 면에서 작가가 인세를 전혀 취하지 않는 '세이노의 가르침'을 출판하신 세이노님을 진심으로 존경하는 바이다. 나는 그분에 비할바가 못된다. 그나마 내세워볼 만한 게 있다면 이 시대 2030이 처한 상황과 그들의 감정상태를 비교적 정확하게 이해한다는 것이다. 현재, 내가 그 2030이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인정받기 위해 비단, 글을 쓰는 것뿐만 아니라 그 어떠한 다른 분야의 일이더라도 생산물의 품질이 뛰어나야 한다. 우리는 자본주의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생산물을 파는 실력도 좋아야 하지만, 품질이 떨어지는 순간 파는 실력도 제 힘을 발휘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일단은 품질부터 좋아야 한다.
품질이 좋다는 말은 시중에 나와있는 다른 결과물 보다 뛰어나다는 의미이다. 다른 경쟁자를 압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경쟁자를 압도하려면 육체적으로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영적인 에너지까지 올인을 해야 한다. 그래야 압도할 수 있다.
영적인 에너지를 올인한다는 것, 이게 핵심이라 생각한다. 확실히 말해두고 싶은 것이 있다. 자기가 하고 싶지도 않은 일인데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붙어있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기에 영적인 에너지를 올인할 수 없다. 그래서 결과물이 시답지 못하며, 시장 경쟁에서 도태된다. 대부분은 말이다. 내가 '대부분'이라는 단어를 계속 썼다는 것을 기억해 달라.
근본적인 해결책은, 당장은 돈이 안되더라도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정말 당장에 먹을 것이 부족하고 입을 것이 부족하더라도 어떤 일을 하고 싶다면, 그게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이다. 나에게는 글쓰기가 그러하다. 당장 돈이 안된다. 그래서 비루하다. 그래서 뭐. 나는 글쓰기가 좋다 이거다. 여기에 내 영혼을 부어낼 수 있을 만큼 글쓰기가 좋다. 나는 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억지로 28년 동안이나 하다가 뒤늦게 이걸 깨달았다.
앞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했는데, 그 말은 즉슨 극소수는 가능하다는 말이 된다. 그 극소수의 인물들이라는 것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느낀 사람들을 말한다. 딸린 처자식이 있거나, 생존을 위해 돈이 필요한 경우에 있는 사람들이다. 또는 성공에 대한 열망이 대단히 강한 사람의 경우도 해당한다. 여기서 더 물러설 곳이 없다는 절박함을 느낀 이들은 이것이 가능하다. 순수한 희생과 헌신으로 말이다.
영혼을 끌어낼 수 있는 방향은 이 두 가지가 있다는 것이다. 이 두 방법 이외에는 성공할 수 있는 근본적인 원리는 없다고 본다. 그리고 저 두 방법 모두 배수의 진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애초에 쉽고 빠르며 편안한 길은 존재하지 않는다.
격투기 격언에 '유일한 방어는 끝없는 공격이다.'라는 게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마치 정부와 법치주의, 경찰력 그리고 군사력에 의해 문명화된 질서사회같이 보일지라도, 본질은 야생과 같다. 사람처럼 살아서는 사람처럼 살 수 없다는 점을 빨리 깨닫길 바란다. 그것을 인생 초반기에 여과 없이 인정하고, 빠르게 대응할수록 당신은 당신 가문의 강력한 시조급 전사가 된다.
우리는 기원전 메소아메리카에서 돌도끼와 화살을 들고 맨발로 정글을 누비며 야생멧돼지를 사냥했던 마야문명의 전사처럼 살아야 한다. 영화 '아포칼립토'에서 나오는 명대사를 남긴다.
나는 표범발이다. 이 숲은 나의 것이다. 나는 이 숲에서 사냥을 했으며, 내 아들이, 그리고 내 후손들이 숲에서 사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