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을 다한다는 것.
말 그대로다. 젊은은 다시 오지 않는다. 나는 지금 젊다. 가지고 있던 커리어, 필드 경력, 연고지 다 집어던지고 글을 써서 성공해 보겠다고 상경을 한 이유이다. 곧 있으면 서른이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살아온 것을 2번 정도 더 살면, 나도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말이 되겠다. 인생은 정말 짧은 것 같다.
젊음을 어떻게 쓰느냐에 대한 개개인의 가치관들이 있을 것이다. 아마 젊을 때 한 번이라도 여자를(남자를) 더 만나보려 하거나, 여행을 다니기 위해 복잡한 돈 생각은 차치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라고 보인다.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다. 젊을 때 아니면 그런 일들 잘 못하는 것도 사실이니 말이다.
나는 이런 이점들을 어느 정도 희생시키고 있다.(대학교 다닐 때 만날만큼 만나고 놀만큼 놀아봤다고도 생각한다.) 즉슨, 저러한 것보다 더 높은 가치를 두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인데, 그것은 나의 경제적, 정신적 힘을 기르는 것이다. 궁극적인 목표는 가족과 내 사람들을 충실히 지키는 수호신이 되는 것이다.
며칠간 짙은 미세먼지가 이어진 탓에 달리기를 못하고 있었다. 나는 주기적으로 조깅을 한다. 강한 신체에 강한 정신이 깃든다고 믿는다. 부산에 있을 때는 광안리 해변가를 따라 뛰곤 했다. 상경한 지 일주일 정도 되었다. 오늘 드디어 미세먼지 수준이 보통으로 떨어져 이때다 싶어 여의도 근처 생태공원을 6km 정도 뛰고 왔다. 서울에서의 첫 조깅이다.
첫 조깅이다 보니 길을 몰라서 중간에 몇 번 헤매었다. 헤매던 도중 어떤 다리 밑을 지나게 되었다. 어두컴컴한 구석에 열개 남짓의 텐트촌을 보게 되었다. 운동화가 보이고 살림살이가 있는 것을 보니 사람이 사는 텐트들인 것 같았다. 국회의사당이 있는 여의도 다리 밑에 이런 곳이 있었다. 굉장히 놀라울 것은 없었으나, 주목해서 봤다. 주목해서 봤으니 지금 글에 쓰는 것일 테다.
'행복추구권'이라는 것이 있다. 대략 이런 내용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헌법재판소 : 소극적으로는 고통과 불쾌감이 없는 상태를 추구할 권리, 적극적으로는 만족감을 느끼는 상태를 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포함되는 권리로는 일반적 행동자유권, 소비자의 자기 결정권, 성적 자기 결정권, 수면권, 신체불훼손권, 휴식권, 일조권, 스포츠권 등이 있다.
이의 기원은 '존 로크'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미국의 버지니아 권리장전, 미국의 독립선언서의 규정에서 시작된다. 17-18세기부터 그 토대를 잡아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 3-400년 전이다.
'행복추구권'이라는 것은 강제성 있는 규정이 아니라, 단순히 개인이 추구할 수 있는 권리인 것이다. 스스로 의지를 발현하여 원하는 것을 추구하고 쟁취할 수 있게끔 그 자유를 보장하기는 하나, 자신을 제외한 그 누구도 이를 입에 떠먹여 주지는 않는다는 말이 된다.
물론 텐트에서 노숙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악한 인간들에 의해 사기 비슷한 것을 당해서 저러한 처지에 놓였을 수도 있다. 잘 살아보려고 리스크를 크게 감내했다가 주저앉은 것일 수도 있다. 피치 못할 건강 문제로, 또는 원치 않은 불법적인 일에 휘말려 치명상을 입은 것일 수도 있다. 짧은 생각으로 그들을 매도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이 나라를 운영하는 기본 소프트웨어 설명서(헌법)를 읽어봐도 나오듯, 자신을 제외한 다른 이가 저들을 구제해주지는 않는다. 유일한 희망은 스스로 여며 잡고 일어나 다시 전진하는 것이다. 유일한 희망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간혹 가다 저런 곳에서 용이 탄생하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성공자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저런 스토리를 가진 사람들이 꽤 많이 있다.
성공을 원하며 전진하고 있는 나의 인생에서도 저러한 일들이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그래서 경제적인 힘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힘 또한 기르려고 노력해야 한다. 가지고 있는 돈의 액면가 못지않게 이 점이 중요하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이는 단순히 자기 자신을 위해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오래전 나의 아버지 또한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척박한 환경에서 그거 두쪽만 가지고 무역회사를 차리셨다. 모직물을 다뤘으며 주 거래층은 사우디아라비아, 리비아, 레바논, UAE 등의 중동 국가들이었다. 처음에는 구매자와 한국의 생산공장 사이에서 중개를 해주는 역할만을 했기 때문에 작은 사무실 하나로 시작하셨다. 후에는 공장 2개를 직접 소유하시고 사업을 진행하셨다. 꽤 크게 일을 하시려다가 2000년도 초반 중국이 제조업으로 치고 올라오며 한국의 제조업계는 초토화되었다. 그 포화를 피하지 못하셨다. 그렇게 20억의 채무를 안은 채, 회사는 부도가 났다.
평생을 일궈온 회사가 공중분해되었다는 충격에, 나의 아버지는 망가지셨다. 10년 이상을 방황하셨다. 그 충격을 어찌 내가 감히 넘겨짚을 수 있겠냐만은, 나는 그 세월 동안 돌이킬 수 없는 영혼의 흉터들이 새겨졌으며 지금은 아버지를 보지 않고 있다. 아버지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이해는 하지만, 용서는 할 수 없을 사건들이 몇 있었다. 말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아버지에게 바랬던 점은 투지였다. 돈을 벌어 가난을 탈출시켜 달라는 바람은 없었다. 가난하게 살아도 되었다. 그만하면 내 아버지는 최선을 다했었다고 믿을 수 있었다. 스트레스로 탈모가 오고 잇몸이 죄다 주저앉았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그는 가장이었다. 불변하는 위치다. 자식들에게 '나는 가장의 책임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태도라도 보여주기를 바랐다. 그 점이 결여되보이는 순간, 나는 내 아버지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잃어버렸다. 당시 나는 다짐했다. 아무리 상황이 어렵더라도, 현실을 개선시킬 희망이 보이지 않더라도 내 책임을 잊지는 않겠다는 것을 말이다.
눈 내린 들판을 걷는 이여, 발걸음 어지러이 걷지 마라.
오늘 나의 발자취가 후인의 이정표가 될지니.
- 서산대사의 시 -
나에게는 12살 어린 남동생이 있다. 그래서 서산대사의 시에 나오는 저 구절을 늘 품고 산다. 어지러이 걷지 않기 위해 무명작가로서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쓰고, 상경을 했으며, 베스트 셀러 작가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의 정신적 힘에서 나오는 나의 실행력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 내 앞을 가로막는 것이 있다면 그걸 부셔버리던지, 뛰어넘던지, 그럴 능력이 안되면 가랑이 사이라도 기어서 통과할 것이다.
나는 내 부모형제의 정신적 지주이며, 내가 있는 바로 이 자리가 최전선이다. 신체가 완전히 기능 불능이 될 때까지 투지를 잃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정신적 힘을 바탕으로 전진하는 것이다. 애초에 번아웃이라는게 있을 수 없는 구조이다. 정신적 원자력 발전기라고 표현하고 싶다.
이 글을 읽는는 당신에게도 가족이 있을 것이다. 부모 형제가 있을 것이다. 나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고, 그래서 난쟁이 정신을 가진 난쟁이 무리에 잘 어울리지 못한다. 나와 당신의 차이를 생각해보길 바란다. 뭔가 참신한 씨앗을 얻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