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29세 관점

남자들은 보라.

말랑 물렁한 에세이 저격글

by 언더독

이 말 꼭 하고 싶다. 아무래도 여성을 대상으로 해야 책이 많이 팔릴 것이기 때문에, 저런 허여멀건 한 에세이들이 베스트셀러 칸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출판사는 영리 기업이고, 이익을 내야 한다. 그 부분은 동의한다. 그러나 실제 소비자들에 입장에서 보았을 때, 그게 그네들 삶에 진짜 도움이 될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몸이 아프면 병원을 간다. 병원에서는 이런저런 검사들을 한다. 검사를 하는 이유는 아픈 원인을 찾아내기 위해서다. 원인을 찾아내면 그것을 치료하거나, 치료가 불가능하면 절제를 해서 떼어낸다. 그러면 몸이 안 아프고 회복이 된다.


말차 라테처럼 밍밍한 에세이는 원인을 치료하거나 절제해 내는 것이 아니다. 그냥 국소마취제라고 생각한다. 겉보기에만 건강해 보이는 펜타닐 같은 것이다. 저런 책들 읽고 보름정도 지나 봐라. 똑같다. 달라지는 거 하나 없다. 정말로 변화를 원한다면 힘든 상황을 극복해야만 한다. 물리적으로 현실을 뚝딱뚝딱 뜯어고쳐놔야 한다. 그 방법이 가장 확실하며 유일하다.


물론, 종교적 또는 정신적으로 열반에 경지에 이른 소수의 사람들은 진정 내면의 힘만으로 번뇌를 제거한다. 그러나 속세에 사는 당신이 머리를 밀고 단무지로 그릇 닦아먹으며 매일 한자책 공부를 하지는 않을 것 아닌가. 독은 독으로 치료하듯, 속세는 속세로 치료해야 한다. 혜민 스님이 풀소유를 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내가 진정한 행복을 느꼈던 경험을 말할까 한다. 10년 전 고등학생의 내가 처했던 상황은 이러했다.


아버지 회사 부도, 알코올과 니코틴 그리고 폭력이 난무하던 문지방 안 상황, 부모님 신용불량자, 5살짜리 남동생, 긴급구호물품으로 먹고 삼, 겨울에 수도 얼어서 물 안 나옴, 여름에 바퀴벌레 천국.


저 상황에서 말랑 물렁 에세이 읽고 헤롱거리고 있었으면 뭐가 달라졌을까. 나는 장남이었다. 내가 아니면 저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캐릭터가 없었다. 마치 전투를 지휘하는 작전사령부처럼 나는 내가 가진 물자를 확인한 후, 최선의 작전계획을 수립하고, 지체 없이 행동을 개시했다. 망설일 여유 같은 건 없었다. 군사작전이랑 다를 바가 없었다.


빨리 돈부터 벌어야 했다. 공부머리는 그저 그랬지만 나에게는 엉덩이가 있었다. 무거운 엉덩이로 공부하면 그래도 괜찮은 대학 들어간다. 등록금 낼 돈이 어디 있나. 전액 지원해 주는 학교를 가야 했다. 또, 졸업 후에 바로 돈을 벌 수 있어야 했다. 해양대를 갔다. 배를 탔다. 돈을 벌어왔다. 그 돈으로 옆구리 터진 우리 집 수술시켰다. (말은 간단히 하지만, 나는 바다에서 죽을뻔했다. 힘들어 죽겠다는 말이 아니라 물리적으로 죽을 뻔했다.)


집안에는 질서가 잡혔고, 아버지가 지난 과오를 반성하고 어머니를 챙기기 시작하면서 엄마 얼굴이 많이 폈다. 옛날에 비하면 정말 살만해졌다고 말하는 엄마 모습을 보고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진짜 행복은 이렇게 얻는 것이다. 평화와 행복에는 대가가 따른다. 에세이 책 사서 한번 읽는 게 대가라고 생각한다면 어림반푼어치도 없는 말이다. 보라. 나는 목숨을 잃을뻔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저러한 책들을 추천하지 않는 바이지만, 특히 남자들은 더욱 그러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20대 후반이 되어서야 남자와 여자가 전혀 다른 종족이라는 것을 깨우쳤다. 여성은 반드시 자신이 직접 상황을 해결하지 않더라도 큰 죄의식을 가지지 않아도 된다. 성적인, 사회적인 지위로 말미암아 그러하다. 그래서 솔직히 저런 에세이 책 읽고 있어도 그 누구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런데 남자가 그러고 있으면 안 된다. 그런 식으로는 안된다. 남자가 구실을 못하고 있으면 욕먹는다. 억울해도 어쩔 수 없다. 그냥 그렇다. 어찌 되었든 삼켜내고 일을 해결해야 하는 게 남자의 사회적 지위이다. 이것은 현대시대만 그랬던 것이 아니다. 인류 초창기 때부터 그러했다.


그런 책을 볼 시간에, 머리 아프고 복잡한 투자 지식 책을 봐라. 머리 아프고 복잡한 세금 지식 책을 봐라. 머리 아프고 복잡한 마케팅 지식 책을 봐라. 스트레스받으면 팔 굽혀펴기와 턱걸이를 하라. 정 힘들면 담배라도 피워가며 하라는 이야기이다. 당신이 싫든 좋든 간에 이게 맞는 방향이다. 사람의 기호에 따라 세상 순리가 변하지는 않는다.


나는 언행일치 한다.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은 이러하다.


무직, 실업급여로 연명, 투자 자금 원천봉쇄, 베스트셀러 작가의 꿈, 1권의 자가출판 경력, 상경해서 친구집에서 얹혀 삼. 여자친구 없음.


나의 원대한 꿈에 비해, 아직 실적과 실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양적으로 밀어붙인다. 하루도 빼먹지 않고 글을 쓰고 있으며(아무리 못해도 3000자는 쓴다.) 헬스장 등록할 지출도 일으키고 싶지 않아서 팔 굽혀 펴기와 턱걸이를 하며 한강변을 따라 구보를 뛴다. 근처 백화점 안에 서점이 있다. 책 살 돈도 아끼고 싶어서 서점에 앉아 눈치껏 한두 시간 내리읽어버린다. 내가 현재 읽고 있는 책은 '합법적으로 세금 안내는 110가지 방법'이다. 정말 머리 아프다. 이해 안 된다. 그래도 본다.


서점 베스트셀러 칸에 있는 책들 뒷면을 전부 사진 찍어왔다. 거기에는 원고 투고를 할 수 있는 출판사 이메일 주소가 찍혀있다. 월말까지 샘플 원고를 완성해서 현재 베스트셀러 매대에 오른 전 출판사에게 투고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10년 전 내가 현실의 벽을 돌파했던 것처럼, 이번 벽도 돌파할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다고 나 자신을 믿는 것은, 말랑 물렁한 에세이 책에 나오는 하나마나한 위로에서 비롯된 게 아니다. 과거에 고통을 감내하여 이루고자 한 바를 이뤘던 성공경험에서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전쟁의 최고의 목표는 우유부단하게 끄는 것이 아니라 승리이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용기를 잃어서는 안된다.

용기는 역사를 이끌어간다.

인천상륙작전은 5000대 1의 도박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지만.

나는 그런 모험에 익숙해져있다.

우리는 인천에 상륙할 것이며, 적을 분쇄할 것이다.

우리는 모든 전력을 다하여 이 나라를 지켜야 한다.


- 더글라스 맥아더 -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여자들은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