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상경을 한지 일주일 되었다. 내가 서울에 온 목적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기 위해서이다. 부산에서도 이를 할 수는 있으나, 대부분의 출판사는 서울에 있다. 한 번의 기회라도 더 얻어내기 위해, 0.1%의 확률이라도 더 올려보기 위해 올라온 것이다.
수도 서울에 올라와서 가장 먼저 했던 일은 이 나라 최고의 부촌인 잠실 시그니엘을 방문했던 것이었다. 가장 부촌을 먼저 본 이유가 있다. 제일 최고점을 보고 나면 나머지 저점들이 극명하게 눈에 다가오기 때문이었다.
결론적으로 서울이라고 다 잘 사는 것이 아니며, 모두가 열심히 사는 것도 아니다. 일주일간의 관찰 결과, 잘 사는 이들은 더 잘 살며, 못 사는 이는 더 못 산다. 이 말을 잘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빈부격차가 심화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클리셰를 시전 하기 위해 쓴 문장이 아니다.
잘 사는 이들은 더 공부하고 더 배우고 더 열심히 살기 때문에 더 잘 살며, (비록 그 과정에 약간 구린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비록 불평등한 기회 부여가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못 사는 이들은 한심할 정도로 배우지 않고 열심히도 안 살기 때문에 못 사는 걸로 보였다. 일반화하는 것은 아니나, 솔직히 나에게는 이게 대부분인 것으로 느껴졌다.
우리가 평소에 거리를 다니며 쉽게 볼 수 있는 곳들은 먹고 즐기고 마시는 장소들이다. 그런 곳에는 대부분 진짜 잘 사는 사람들은 없다. 거의 다 못 사는 사람들이다. 잘 사는 사람들은 잘 볼 수 있는 곳들에 잘 없다. 못 사는 사람들은 잘 볼 수 있는 곳에 잘 있다. 이게 뜻하는 바가 무엇일까.
잘 사는 사람들은 늘 자신이 해야 할 일들에 몰두하고 있다. 몰두를 하려면 사람들이 없는 곳에 있어야 한다. 그래서 잘 안 보인다. 나 스스로만 보아도 그렇다. 나는 밥 먹고 커피 사 오고 담배 사 오는 일 빼면 밖에 나가질 않는다. 내가 사랑하는 글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항상 생산을 하고 있다. 발전을 하고 있다. 배우고 있다. 그게 언제나 쉽고, 언제나 하고 싶고, 언제나 할만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나의 의무라는 것을 알고 자기 통제를 발휘하는 것이다.
나 개인의 경우, 정말로 글쓰기를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이게 고통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나까짓 사람이 쓰는 글에 많은 사람들이 가져주는 관심들이 나날이 늘고 있고, 그게 감사하고 고마워서 글을 쓰는 게 훨씬 재미있어졌다. 처음에는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기도 했다. 그러나 꾸준함을 보이며 조금씩 글의 가치를 높여감에 따라 사람들의 지지가 느껴졌다. 그것이 더 좋은 글을 쓸 양질의 에너지가 되어준다. 선순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선순환되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있다. '같은 무리끼리 서로 사귐.'이라는 뜻의 사자성어이다. 세상에는 비슷한 퍼포먼스를 내고, 유사한 목표를 지닌 사람들끼리 자연스레 어울리는 형태를 볼 수 있다. 부자들은 부자들끼리 어울린다는 말을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 부자를 '자기 업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맞다.
이런 현상이 지니고 있는 인간 심리 근원을 파고 들어봤다. 절반은 '인간의 이기심'이며, 나머지 절반은 '인간의 이타심'이다. 기본적으로 나를 포함한, 자신의 업에 헌신하려고 하는 이들에게는 더더욱 큰 성공을 하고자 하는 불굴의 욕구가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공이라는 것은 남과의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더 말랑한 말로 잘 포장을 해볼 순 있겠지만, 저것이 본질이다. 남과의 경쟁에서 승리하려는 마음. 그것을 '인간의 이기심'이라는 말로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다.
혼자 성공을 열망하며 혼자 활동한다는 것은 전투기를 혼자 모는 것과 같다. 전투기들이 훈련할 때, 그리고 실제로 전투를 치를 때를 유심히 보면, 혼자 나는 전투기를 보는 경우는 흔치 않다. 늘 편대비행을 한다. 최소한 2인 1조는 한다. 각자가 지닌 시야에 제한이 있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자신의 시야 정보를 제공해 주기 위해서 함께 나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적기와 Dog Fight를 할 때, 승리와 생존의 확률이 높아진다. ('Dog Fight'라는 것은 상대를 잡기에 편리한 유도미사일을 모두 소진해버렸을 때, 기총으로만 싸우는 공중전을 의미한다. 말그대로 개싸움인 것이다.)
성공자 그리고 성공을 열망하는 언더독 무리도 똑같다. 우리는 뭉친다. 기본적으로 각자가 각자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한다. 우리는 21세기가 준 은총인 스마트폰과 카카오톡으로 편대비행을 한다. 각자가 쥐고 있는 가치 있는 정보를 품앗이한다. 항상 개개인이 받은 것보다 많은 것을 주려고 한다. 결국엔 그게 자신에게 더 크게 돌아올 것을 알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 무리 안에서는 말이다.(어중이떠중이 무리 안에서는 현실 적용이 안 되는 원리이다. 유의하라. 탈탈 털리기만 하거나 뒤에서 칼 꼽힌다. 나와 함께 비행 중인 우리 편대는 코찔찔이 때부터 같이 지냈던 죽마고우 또는 바다에서 생사를 함께했던 전우들이다. 엘리트 스쿼드라 할 수 있다.) 이것을 '인간의 이타심'이라는 말로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다.
10년 뒤 우리는 다 함께 일어날 것이다. 세상에 우뚝 설 것이다. 나는 이를 한치도 의심해 본 적이 없다. 이렇게 살고 있으면, 성공 안 하기도 참 어려운 것이라 생각한다.
종합적으로 보았을 때, 빈부격차가 가장 심화되어 있고 그것이 시각적으로 가장 잘 확인되는 곳이 서울이다. 이를 사회나 정치적인 문제로 치부하기에는 개개인의 삶에 대한 태도가 너무나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인류가 처음 세상에 나타나서 소규모 부족을 이루고, 도시국가를 이루고, 대제국을 이루면서 해당 커뮤니티를 유지하고 통제하기 위해 썼던 여러 가지 체제가 있었다. 성격도, 방법도 다 달랐다. 그런데 말이다. 사람들은 그런 체제가 대단히 정교하고, 대단히 공평하며, 대단히 완벽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 같다. 결국엔 우리 같은 사람들이 만드는 규칙일 뿐이다. 어딘가 하자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게 당연한 것이다.(이러니 정치인들 싸우는 뉴스가 우리에게 아무짝에 쓸모가 없는 것이다. 애초에 하자 투성이인 걸로 싸우는 건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냥 밥그릇 싸움이다. 내비둬라.)
체제에 기대지 마라. 당신 자신을 믿고, 체제를 공부해서, 그 편에 서서 성공을 이뤄나가라. 그게 맞다. 부자들이 절세를 잘하는 이유는, 그러한 체제가 원하는 방향의 일을 해주어서 일종의 보상으로 감면을 받는 것이다. 즉슨, 체제가 원하는 방향이 뭔지를 공부해서 알고 있다는 뜻이 된다. 다시 말하면, 공부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왜 직장을 멀리할까. 나는 왜 직장인 바이브를 식중독 균처럼 여겨 몸서리치며 싫어할까. 나는 왜 투자를 할까. 나는 왜 글을 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