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배기 탐구 시간

뭐 먹는 이야기 아니지롱.

by 언더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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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의 창립자 '제프 베조스'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그는 스트레스가 일을 하는데에서 오는 게 아니라, 해야 할 일을 지금 하지 않고 무시하고 있는데에서 발생한다고 말했다. 이 말을 잘 풀어볼 필요가 있다. 저기서 말하는 '일'이라는 것부터 정립할 필요가 있다.


저 '일'은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이어야 한다. 자신이 정말 하고자 하는 일이어야 한다. '자고 일어나면 이 짓만 하고 싶은데' 하는 그런 일을 말한다. 직장에서 톱니바퀴 역할을 하는 '일'이 아니다. 내가 이에 대해 자신 있게 논할 수 있는 것은 톱니바퀴 '일'을 해보고 난 후, 지금 내가 하는 글쓰기 '일'을 해보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나는 어떤 좋은 글을 써서 남들의 인정을 받을지 생각한다. 하루 종일 생각한다. 이 활동을 한지가 벌써 반년이 넘었는데, 단 하루도 이게 지겹다거나 하기 싫다거나 지친다는 기분을 느껴본 적이 없다. 이에 반해 직장에서 톱니바퀴 '일'을 하려고 들면, 회사 근처에만 가도 역겨움을 느꼈다.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거부반응을 일으켰다. 항암치료를 할 때, 머리카락이 빠지고 구토를 하는 환자처럼 말이다. 어느 순간부터 내 뇌는 그 구조가 확 바뀌어버렸고, 다시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 수준에 다다랐다.(지난 10년간의 경제 공부에 의해 그렇게 된 것 같다. 근로노동자의 뇌에서 자본가의 뇌로 변태 했다.)


서른이 가까워진 이 시점에서야 내가 글쓰기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늦었다면 늦은 때이지만, 지금이라도 발견을 했다는 것에 대해 하늘에 무한한 감사를 느낀다. '제프 베조스'가 했던 저 말은, 지금의 글 끄적이는 나에게 비로소 완벽히 적용되는 내용이다.(하나 강조하고 싶은 점은, 이런 '나의 일'을 발견하기까지 수많은 시행착오와 세월이 걸렸다는 것이다. 노파심에 말한다. 가만히 있는다고 찾아지는 게 아니다. 기를 쓰고 힘들게 찾아야 뭐가 하나 걸리는 게 있다. 그러니 포도나무 밑에서 입만 벌리고 누워있는 행동은 지양하길 바란다. 시간만 축내는 전략이다.)


나는 글 쓰는 게 정말 재미가 있다. 멈춤 없는 경쾌한 타이핑소리가 길게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하얀 배경에 새겨지는 검정 글자가 점점 많아질수록, 그 구성과 전개가 나날이 발전할수록, 참신함이 더해질수록 충만한 만족감을 느낀다. 눈만 뜨면 이 짓이 하고 싶다. 축구공을 찰 때 인사이드 킥이 제대로 걸리는 발등의 느낌처럼, 기똥찬 글이 나올 때도 그런 느낌이 있다. 그런 글은 손가락 끝에서 느껴진다. 착착 감기는 느낌이랄까. 그런 게 있다.


오케스트라 지휘자는 장수한다고 한다. 성직자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장수하는 이유는 행복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완벽을 추구하며 얻는, 영적인 만족감이 그들을 몰입의 행복으로 데려다주는데, 그 정도가 너무나 강하다고 한다. 뭔가를 창작한다는 것에 있어서 이런 만족감을 가져볼 기회가 나에게 주어졌다는 것이 축복이라고 여겨진다.

참신한 글이 쏟아져 나올 때,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같은 기쁨을 느낄 수 있다.

글도 창작이니 말이다. 불현듯 떠오른 참신한 아이디어를 까먹기 전에 글로 후다닥 쏟아내놓았을 때, 그 글을 잘 다듬어서 올리면 여지없이 사람들의 반응이 좋다. 그 루틴이 스스로 느껴진다. 그럴 때 희열을 느낀다. 그런 기쁨은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섹시한 여자를 만나서 노는 것과는 결이 전혀 다른 기쁨이 든다. 그리고 그 강렬함이 더욱 강렬하다. 나도 이것이 대단히 놀라웠다. 내 삶에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 생각해 왔던 탓이었을 것이다.(한마디로, 덜떨어졌던 나는 세상에 섹시한 여자보다 더 좋은 게 없을 거라 믿어왔다.)


스스로 이렇게 재미있어하는데, '일'을 미뤄둔다는 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일을 미루지 않으니 그런 것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없다. 단지,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소재를 생각해 내는데 굉장한 에너지를 소모할 뿐이다. 내게는 글을 밖에 내보이기 전에 꼭 넘겨내야 할 하한 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다 쓴 글을 검사했을 때, 재미가 없거나 참신하지 않다면 내보이고 싶지가 않다. 그런 고민은 있다. 그래서 두통이 오긴 한다. 타이레놀을 먹고 또 한다. 재밌으니까 말이다.


우리 뚝배기를 열어보면 저런 순두부가 차있는데, 저 중 붉은 부분을 통틀어 '선조체'라고 한다. 사람이 받아들이는 여러 종류의 자극을 통합하는 부분이라고 한다. 인간이 행복함을 느껴 '도파민' 호르몬이 분비되면, 선조체의 회로가 빠르게 진동한다. 반면에, 도파민이 없을 때는 활성이 낮아져서 천천히 진동한다.


'도파민' 분비가 많아져 선조체 회로가 빠르게 진동하면 상대적으로 주변 환경이 느린 것처럼 느껴진다. '도파민' 분비가 없어 선조체 회로가 천천히 진동하면 상대적으로 주변 환경이 빠른 것처럼 느낀다.


즉, 재미가 있으면 주변 환경이 느린 것처럼 느끼니(사실은 안 느린데) 시간이 후다닥 가버리는 것이다. 반대로, 재미가 없으면 주변 환경이 빠른 것처럼 느끼니(사실은 안 빠른데) 시간이 오지게 안 가는 것이다. 애꿎은 시계만 자꾸 보는 것이다.


글을 쓸 때, 내 몸에서는 도파민이 나오고 선조체가 활발해진다. 그래서 주변이 느린 것처럼 느끼니 시간이 훅 가버린다. 한 사람의 인생이 이러한 질적인 시간으로 많이 채워져 있을수록 모든 면에서 앞서나가지 않을까 싶다.


오늘도 잠에서 깨고 씻자마자 노트북 앞에 앉았다. 끼니나 커피도 후순위로 미뤘다. 직장 일을 이런 식으로 하기는 아주 어려울 것이다. 그것도 기쁜 마음으로 말이다. (내 글을 봐주시는 독자 여러분들께 감사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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