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치 않는게 있네요.
영화 '글레디에이터'를 이야기해볼까 한다. 배경은 로마 시대 말기이다. '명상록'을 쓴 스토이시즘의 대표 격 인물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총애를 받던 북부군 총사령관 '막시무스' 장군이 있었다. 전투를 늘 승리로 이끌던 용맹한 장수였다. 공이 혁혁하다.
당시 황제에게는 아들인 '코모두스'가 있었다. '코모두스'는 황제의 사랑을 듬뿍 받는 '막시무스'에게 질투심을 느낀다. 황제는 '막시무스'에게 왕위를 계승하려고 했다. 이를 알아차린 '코모두스'는 친부인 황제를 죽이고, 왕좌를 차지한다. '코모두스'는 '막시무스'를 처형시키려 했으나, 뛰어난 전투력으로 위기를 모면한다. 그리고 아내와 아들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집으로 급히 돌아간다.
'막시무스'가 도착했을 때는 집은 불타있었고, 가족은 화형에 처해져 그 시신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그 자리에서 절규하다가 기절한 그는 누군가에 의해 끌려가게 된다. 검투사를 양성하는 노예상이었다.
졸지에 사령관에서 노예 신분으로 전락한 그는 어찌할 수 없는 세상의 힘에 의해 왕권과 귀족들의 오락거리가 된다. 물론, 그 오락거리라는 것은 검투사로서 목숨을 걸고 싸워주는 엔터테인먼트였다. 그러나 그런 풍파도 '막시무스'의 전투력까지 빼앗아 갈 수는 없었다. 그는 검투사판에서 두각을 드러낸다. 시민들의 사랑을 받게 된다. 한마디로 스타가 된 것이다.
이에 '코모두스'는 일약 스타가 된 검투사 노예를 보기 위해 콜로세움에 당도한다. 노예에게 다가가 투구를 벗고 이름을 밝히라 명한다. '막시무스'는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복수를 공언한다. '코모두스'는 권력을 이용해 검투사 놀음판에 갖은 반칙과 페널티를 부여한다. 그럼에도 '막시무스는' 극복한다. 영화 말미에는 '코모두스'와 '막시무스'가 징검승부를 벌이게 되고, '막시무스'가 승리하며 로마제국은 군주정이 아닌 본래의 공화정으로 돌아간다.(공화정은 지금의 국회처럼, 당시 의원들이 모인 원로원에서 국정을 관할하는 정치제도를 말한다.)
나는 당시의 검투사 놀음판, 콜로세움에서 지금의 sns 인플루언서들이 가지고 있는 파워를 보게 되었다. 황제마저 무너뜨릴 수 있는 대중의 관심이었다. '코모두스'의 권모술수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막시무스'는 여러 조력자들의 도움을 받게 된다. 그중 노예들을 관리하던 검투사 노예상 주인장 '프록시모'라는 인물이 있다.
'프록시모' 또한 과거 검투사 노예 출신으로, 출중한 엔터테인먼트 실력을 인정받아 당시 로마 황제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게 자유인 신분을 하사 받은 인물이었다. 그는 '코모두스'에 대한 복수를 꿈꾸고 있는 '막시무스'에게 이런 조언을 한다. ('막시무스'는 검투사 신분으로 황제 '코모두스'에게 복수할 수 있도록 근처에 가고자 했다.)
"나는 상대를 많이, 빠르게 죽여서 자유인이 된 것이 아니다. 군중들이 나를 사랑했기 때문에 자유인이 되었다. 군중들을 사로잡아야 자유의 몸이 된다. 황제가 내 어깨를 만지는 순간, 나는 자유의 몸이 되었다."
군중들을 사로잡아야 자유의 몸이 된다.
픽션이기는 하나, 지금으로부터 약 2600년 전 경의 시대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물리적인 시간은 흘렀으나 인간의 심리기제는 그리 진보되지 않았다.
'막시무스'가 다시금 주권을 회복하려는 과정을 들여다보면 기존의 권력자로부터 나오는 갖가지 반칙성 플레이가 수도 없이 나온다. 이런 것들이 지금 시대에도 크게 다를 것이라 생각지 않는다. 이걸 가지고 좋다 나쁘다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그러지 않는다. 피할 수 없으니 효용이 없다.
그렇게 가타부타한다고 없어질 일들이 아니기 때문에 주저리 주저리 하는 것은 시간낭비일 뿐이다. '막시무스' 또한 남루한 옷차림에 칼 한 자루 달랑 들고 덮쳐오는 고난을 직시하며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응을 보여준다. 덤덤히, 흔들리지 않고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말이 있다.
Suck it up & Perform anyway.
삼켜내고 어찌 됐든 해내자는 것이다. 모든 언더독은 자유를 되찾기 전에 이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이치가 그렇다. 유튜브 광고처럼 스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나는 가난 속에서 성공 여정을 해오며 이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편법을 쓰지 않는다. 부질없는 짓임을 알고 있다.
북부군 총사령관이자 장군이었던 '막시무스'의 측근에는 군인, 정치인, 귀족, 노예들이 있었다. 그중 끝까지 그의 곁에 남아 명예를 지키던 이가 있었던 반면, 그러지 않았던 인물들도 있었다. 명예의 대가는 대부분 죽음이었다. 그러니 실세를 향해 등 돌린 인물들이 다수였다.(마냥 욕하기는 어렵다. 그네들 처자식 목숨까지 딸린 일이니 말이다. 그럴 수도 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이득과 이기심에 의해 움직인다. 소수의 의리 있는 인간 그리고 소수의 명예를 아는 이들이 있다. 금수저냐 흙수저냐의 문제도 아니다. 출신과는 관계없이 그러한 소수의 인간이 있다. 그런 사람들을 알아보는 것은 그러한 사람이 알아본다. 서로가 알아보는 것이다.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는 삶을 살다 보면, 이런 이들이 가뭄에 콩 나듯 나타난다. 이들은 뭉친다. 그래서 더욱 강해진다. 단, 나 스스로가 명예를 지키고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먼저 보여야 한다. 서로 간 신뢰의 근본이다. 그렇지 못하면 웃음거리에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될 뿐이다.
이런 인간 무리는 때가 되면 함께 일어나고, 죽음의 순간까지 서로를 놓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