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왜 작가일까요.
여기서 글을 쓰는 작가라면, 구독자 수와 글을 읽는 사람들의 머릿수를 무시할 수 없다. 늘 확인할 것이다. 인간은 인정의 동물이기 때문이다. 나 또한 신경이 쓰이고 신경을 쓰려고 한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우선시하는 가치가 있어, 대응을 하지 않는다.
나는 독자의 기분이 나아지게 만드는 글을 쓰는 작가가 아니다. 현실에서 정말로 작동이 되는, 실용적인 가치 또는 방법론을 논하려는 글을 쓰는 작가다. 그게 값을 한다고 믿는다.(독자들은 수많은 읽을 거리 중 굳이 내 글을 시간들여 읽어주는 존재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글을 쓰는 것은 그들의 시간을 존중하지 않는 무책임한 짓이다. 그들의 삶에 진정 도움이 되는 가치를 전달해야만 하는 것이 작가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돈을 받든 말든 말이다. 나는 그들의 시간을 가져가고 있다.)
기분이라는 것은 내부, 외부상황에 의해 좌우된다. 사람이 주인이 되어 컨트롤할 수 없다. 기분을 컨트롤할 수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기분을 컨트롤할 수 없다.(나도 나의 기분을 컨트롤할 수 없다.) 자기가 컨트롤할 수 있다고 말해버릇 하는 사람 치고, 실전이 닥쳤을 때 의연한 사람을 보지 못했다.
내부, 외부상황에 의해 따라오는 게 기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진실로 기분이 좋으려면 내외부 상황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현실을 개선시켜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인고의 세월과 뼈를 깎는 노력이 드는 중대한 과업이 된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 과업을 성공시키는 데에 있어 방해가 되는 요소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기분이다.
정리하자면, 진정 행복하기 위해서는 현실을 개선시켜야 하고 거기에 가장 방해되는 것이 기분이므로 기분을 처리해야 한다. 처리는 해야 하는데, 기분은 우리가 컨트롤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할 수 있는 대응방안이 무엇인고 하면.
기분이 제멋대로 날뛰게 내버려 두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철저히 무시하라는 것이다. 나는 기분을 무시하라고 있는 것이라고 여긴다. 지랄 맞은 애새끼라고 여겨라. 이건 현실에서 작동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자신 있고 강력하게 추천하는 바이다. 광광 울든가 말든가 팽개쳐 두면 제 풀에 지쳐 조용해지는 게 기분이다. 무시하면 최소한의 영향만 받고, 해야 할 일을 해내며 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다.
나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겠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모든 소득원을 정리했다. 생활지역을 부산에서 서울로 옮겼다. 며칠 전 50개의 출판사에 원고를 투고했다. 기약도, 보장도 없는 기다림을 한다. 그럼에도 매일 글을 쓰고 있다. 당신이 이 현실의 주인공이라고 하면, 꽤 쫄리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써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건지 생각해 보라.
나는 내가 실제로 해보고 작동하는 것만 말하는 작가이다.
기분은 무시하라고 있는 것이라 믿고 사는 작가가 구독자수 늘리려고, 책 팔아먹으려고 달콤한 에세이 쓰고 자빠져있으면 바로 등신 되는 것이다. 기분 나아지려고 애쓰는 독자들은 그냥 떠나보내야 한다. 멀리 나갈 생각이 없다.(대체로 젊은 여성 독자들일 것이다. 그들을 비난하거나 미워할 의도가 전혀 없다. 그냥 가셔도 아주 무방하다는 거다. 나는 글을 쓰는 데에만 에너지를 쏟아부을 것이다. 미워하는 것도 에너지 낭비다. 현명한 행동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