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돔 앤 고모라
저녁에 턱걸이 운동을 한 뒤, 대학 동기와 산책을 나섰다.(이 동기는 나와 비슷한 목표를 지닌, 전략적 동지이다. 항해사 시절 같은 선박에서 근무했다.) 글 쓸거리가 생길까 싶어 평소에 잘 안 가는 곳을 가고자 했다. 술집거리였다. 사람들이 버글버글했다. 남녀 성비를 보았을 때, 7:3 정도 돼 보였다. 20대 초중반이 가장 많이 보였고, 20대 후반 그리고 30대 초반 정도 돼 보이는 사람들도 몇 보였다.
5분 정도 네온사인 번쩍이는 술집거리를 산책했는데,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장면은 모자를 푹 눌러쓴 20대 남자 한 명이었다. 내가 이 사람을 주목한 이유는, 나 스스로와도 같이 이 맵에 어울리지 않는 외관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와 내 동기는 운동복 차림으로 산책을 나갔는데, 술집거리다 보니 그런 편한 복장을 입고 나온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수많은 인파 속에 모자를 푹 눌러쓰고 빠른 걸음으로 지나가던 그 남자가 눈에 쉽사리 띈 것도 그래서였다. 그는 운동화에 목긴 양말, 나이키 반바지에 반팔 면티 그리고 운동 가방을 메고 있었다. 나도 운동을 꾸준히 다니던 사람이다. 이 사람은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모양새를 지니고 있었다.
밤거리에 오래 머무는 이들 중 현자는 없다. 우리들은 지나친다. 또는 관찰하러 간다. 관찰하러 가는 이유는 가끔 나태해지거나 지칠 무렵, 반면교사가 되어 많은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위기감이 날카롭고 강하게 느껴지곤 한다. (가끔 조용한 바는 간다. 돈이 많아서 또는 폼 잡으려고 가는 게 아니라 기본적으로 조용해서 간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존경할 수 있는 중년의 바텐더 분이 계신다. 그분에게 인생 선배로서 배울 수 있는 점이 있어 간다. 가게가 30년 이상 되었는데, 젊을 때에는 알바로 화장실 변기 청소부터 하시다가 그 가게를 인수해서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셨다고 했다. 나는 이런 분에게 자연히 정이 간다.)
나는 저런 술집거리나 클럽, 펍 등을 '소돔 & 고모라'라고 칭한다. 구약성서와 창세기에 기록되어 있는 악덕과 퇴폐의 도시 이름이다. 신의 노여움을 받아 유황과 불에 의하여 멸망했다. 나는 '발할라'로 갈 것이다. 전장에서 싸우다 명예롭게 죽은 전사들이 가는 아스가르드의 천국이다. 전투의 여신 '발키리'와 연회를 벌일 것이다.
명예라는 게 사실 참 중요한 개념인데, 요즘에는 고리타분한 소재가 되어 뒤로 밀려난 느낌이 많이 든다.
자기의 도덕적, 인격적 존엄에 대한 자각 및 타인의 그것에 대한 승인, 존경, 칭찬.
이게 명예의 사전적 정의이다. 나는 명예라는 것을 죽음과 연관해 보는 타입이다. 죽을 때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자기 삶에 대한 자부심이 전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정도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행복한 죽음이 있고 불행한 죽음이 있다고 본다.
삶에 대한 자부심이라는 것은 명예와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사전적 정의만 보아도 그렇지 않는가. 명예를 지키며 살면, 삶은 양지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수밖에 없다.(명예만을 쫓는다는 뉘앙스가 아니다. 명예를 지키자는 것이다.) 그렇게 핏줄과 자기 사람들을 지켜낼 수 있게 된다. 행복이라는 건 그렇게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것이지,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경험해 보았기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러니, 고통을 찾아 떠나자.
마주하여 너 죽고 나 죽자 하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