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밥생각도 안 난다.
가장 큰 영광은 한 번도 실패하지 않는 게 아니라
실패할 때마다 다시 일어서는 데에 있다. - 공자
나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가난에 의해 고통받는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것을 개선시키기 위해 '돈'이 뭔지부터 공부하기 시작했다. 아주 고전서부터 대표적인 인물 일대기, 정치 시스템, 현대 시대에 돈이 돌아가는 과정, 여러 자산, 투자 원리 등을 보았다. 10년가량 그래왔다.
이에 대해 가닥을 잡게 되자, 일반적인 직장 생활을 하는 이들의 양식에 머물 수가 없었다. 평범한 이들은 남들 따라가는 것 보고 똑같이 가고는 하는데, (인간의 본능이다. 밴드 웨건 효과라고 한다.) 나는 그조차 불가능했다.(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여서 대세를 벗어나는 것과 / 뇌 안에서 근본적인 연산 시스템이 변해버려서 호환이 안 되는 건 극명한 차이가 있다. 애를 써서 이렇게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밤에 잠을 잘 못 자고, 대인 기피증이 갈수록 심화되는 정도였다. 그렇게 나는 별난 놈이 되었다. 내가 나 스스로를 돌연변이라고 칭하는 것에는 이런 이유가 있다.
다만, 당장 가진 것 없는 거렁뱅이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노예생활을 시작해야 했고, 그래서 최소한의 시드머니를 모을 때까지는 직장인 신분으로 살았다. 수모와 고통, 불명예의 시간이었다. 단순히 일이 힘들고 상사가 꺼려져서 싫은 게 아니었다. 거대한 시스템 밑에 깔려 맥을 못 추고 있다는 것을 거시적으로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업의 몸통 하부에서 톱니바퀴 일을 하고 있노라면, 정부 위에 있는 거대 기업들이 생각났다. 그리고 그 위에 있는 미국의 연방준비위원회가 생각이 났다. 그들이 윤전기로 종이짝을 찍어내는 게 생각났다. 실물과 전혀 연계되어 있지 않은, 그저 종이짝에 불과했고 나는 그 종이를 얻어내려고 이 염병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심지어, 나는 그런 종이짝도 없는 노예에 불과했고 그렇게 벌었어도 매년 인플레이션에 의해 내 삶의 살점들이 잘려나가고 있는 것도 인지했다. 한마디로 미친 짓이었다. (이 말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소수이고 그 소수 중에서도 이 원리를 인지하고 행동을 개시하는 이들은 더욱 극소수이며, 그중에서도 행동을 꾸준히 이어나가 유의미한 성과를 이뤄내는 사람은 더더욱 극소수이다.)
사람은 가진 걸 빼앗기고 상해를 입어도 희망이 있으면 다시 움직이게 된다. 그러나 한 사람에게 희망을 빼앗아 버리면, 그 사람은 범죄자가 되거나 자기 스스로를 파괴시켜 버린다. 다크나이트의 '조커'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나는 직장생활을 하면 '조커'가 돼버리고 말 것이다.
나는 죽지 않으려면, 나의 일을 해야 했다. 이게 '일론 머스크'의 '무조건 해야겠다는 느낌을 받았다면'에 해당된다. 많은 일들 중 굳이 '글쓰기'라는 일을 선택한 것에도 이유가 있는데, 내가 생각하는 모든 내용들은 남들이 이해하기 어렵거나 처음에는 수긍이 잘 안 되는 내용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종종 내게 난쟁이들이 질문을 할 때가 있다. 왜 희한한 길을 가려고 하느냐는 질문인데, 나는 한마디도 안 한다. 뱉어내면 금방 사라질 말로 설명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글을 써놓으면 차분히 두고 읽어볼 수 있는 일이기에 가망이라도 있는 것이라 보았다. 그래서 시작하게 된 것이다.
글에는 진정성을 담을 수 있었다.(돈과 조직의 힘에 의해 내가 생각하는 바, 내가 행동하고자 하는 바 모두 조작되고 삭제당한 삶이었다.) 그렇게 나는 글에서나마 자유를 쟁취할 수 있었으며, 그런 나의 진실된 모습에 반응해 주는 독자들이 늘기 시작했다. 이게 노력해서 이렇게 된 거라기보다는, 세상에 내 본모습을 드러내서 이렇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이게 '일론 머스크'의 '운명처럼 연결되어 꼭 해야 한다면'에 해당된다.
정리하자면, 자신의 일을 한다는 것에 있어서 제대로 된 완주를 해내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지금처럼 살다 간 곧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생존욕이 발동해야 한다. 내가 당장 죽겠구나 싶은데 어떻게 포기할 수 있는가. 당신 집이 15층이고 집에 가스가 터져 활활 불타고 있다면, 발코니 밖으로 뛰어내릴 것이다. 그렇게라도 하면 적어도 살 수 있는 가능성이라도 있으니 말이다.
남들은 클리셰를 '좋은 말'로 받아들이고 그를 행하기 위해 '노력'을 하겠지만. 나는 클리셰를 오로지 내가 실제로 경험해 본 바에 근거해서 이해한다. 말이 아니라 현실 행동 데이터에 기반해서 이해한다.(그렇지 않으면 쉽사리 수긍이 안된다.) 그래서 매일매일 글을 쓸 수 있는 것이다.
점점 독자들의 관심이 늘고 있는 것을 느끼고 있다. 이게 가끔은 겁이 날 때도 있는데, 아무렴 계속 가보려 한다. 오늘도 별난 놈의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