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필리핀.스타벅스.화장실.

맥도날드 자동소총

by 언더독

강남에 세미나를 들으러 가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나가는 사람들이 모인다. 깔끔한 차림을 하고 시간을 지켜서 모인다. 예의를 갖춘다.(서로가 개별적으로 강력하고 위험한 존재임을 알고 있다.) 생산적인 대화를 한다. 일이 끝나면 흩어져 자신의 필드로 향하며, 자신의 업에 집중한다. 군더더기가 없다.


나는 이런 곳에 스스로를 던져 넣으려고 노력한다. 그들에 비해 아직 내가 하잘것없다는 것을 반복해서 깨닫게 되면, 그것이 연료가 된다. 언젠가부터 제대로 된 고통에 나 자신을 정확히 꽂아 넣는 것을 습관화하게 되었다.(그게 좋아서 그러는 게 아니다. 알맞은 행동이라서 그렇다. 나는 사디스트가 아니다.)


0ea24e5c-4c58-4626-bc3e-3224f6375e4c-013022AFCChampionshipAC85.JPG?crop=2805,1578,x0,y0&width=1600&height=800&format=pjpg&auto=webp 세상은 나보다 덩치가 크다. 어차피 무제한급 경기다. 내가 가진건 투지 뿐이다.


나에게는 현금이 많이 없기 때문에 거주지가 서울시 슬럼가이다. 자연히 오가는 길에 인생이 제대로 골로 간 사람들을 다수 보게 된다. 강남에 다녀왔다가 집 근처에서 그런 이들을 보게 되면, 기이한 기분이 들고는 한다. 여기서 강남까지는 약 19km의 거리이다. 차 운전해서 30분 정도면 간다. 지하철은 40분 정도 걸린다.


19000m 거리 차가 이런 극명한 격차를 가져다 놓는 것이 기이하다는 것이다. 사업 이야기, 월 수입 이야기, 일 이야기, 투자 이야기를 하다가 이쪽으로 넘어오면 아버지뻘 사람들이 대낮부터 소주를 들이켜고 있다. 횡단보도를 건너며 담배를 피우고 자기들끼리 길에서 푸닥거리고 있다. 사행성 게임장과 카바레가 성업 중이다. 할줌마 뻘 되시는 분들이 짧은 치마를 입는다. 나이가 아무리 숫자에 지나지 않는다지만, 나보다 파이팅이 넘친다.(분발해야겠다.)


news-p.v1.20220530.4c74d622da544f4eb835e9c0d0621a6a_P1.jpg 필리핀 마닐라. 벌써 4년 전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를 하니 항해사 시절 마닐라에서 겪었던 일들도 기억이 난다. 필리핀은 한국보다 빈부격차가 더욱 심한 나라였다. 마닐라에도 스타벅스가 있다. 스타벅스를 가는 길을 걷다 보면 노숙자들을 너무나 자주 보게 되는데, 그중에는 갓난아기를 길에서 돗자리 깔고 키우고 있는 아줌마도 있었다. 길에서 크는 아이들은 빤쓰 한 장 안 걸치고, 신발도 없이 아스팔트 바닥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나에게 돈을 달라며 벌거벗은 몸으로 가는 길을 가로막았었다.


필리핀은 치안이 좋지 않다. 총기 규제가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그와 관련한 문제가 많았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얄짤이 없는 스타일이다. 그는 이에 대한 대응책을 냈는데, 번화가를 다니다 보면 확실히 느낄 수 있다. 모든 각각의 상가와 점포에 무장 경관 및 사설 무장 업체 인원이 산탄총과 기관총을 들고 거리를 사주경계하고 있다. 맥도날드를 들어갔는데, 카빈 자동소총을 끼고 맥모닝 세트를 먹고 있는 경찰관을 보았다. 흠칫 놀라는 나에게 'thumbs up'을 하던 그의 시커먼 얼굴을 한 미소가 기억난다. 그런 나라였다.


2021031715513415575_m.jpg 딱 이런 느낌이었다. 생각보다 중무장을 하고 있던 것에 놀랐었다.


아무튼 스타벅스로 돌아가자면, 그곳은 카지노 딸린 호텔 밑에 있던 곳이었다. 당연히 부유층들만이 있었고 나는 이방인이었다. 화장실을 갔다. 소변을 보고 있는데 말끔한 셔츠를 입은 현지인 아저씨가 문을 살짝 열고 안을 확인하더니 날 보고 'excuse me.' 하고는 그냥 다시 나갔다.(화장실 안에는 소변용 변기가 여러 개였고, 대변용 변기칸도 모두 비어있었다. 그러니까 넓은 화장실에 나만 있었다는 것이다.)


여유롭게 손을 씻고 밖으로 나갔더니만, 젠틀맨 네댓 명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들에게는 화장실은 완전한 개인의 공간이라는 인식이 있었던 것이고, 한 명이 넓은 화장실을 다 쓰고 나올 때까지는 그 누구도 들어가지 않았던 것이다.


136421135884_20130326.JPG 정말로 이렇다. 내 눈으로 보고 왔다.


그리고 스타벅스를 나서면 빨개 벗은 꼬질한 아이들이 나보고 돈 달라고 모여들었다. 그럴 때마다 무장 경관들은 '따갈로그'어를 하며 아이들을 쫓아내느라 바빴고 말이다. (그렇게 길에서 외국인 근처에 아이들이 모이기 시작하면, 소매치기나 강력범죄의 타겟이 된다고 한다.)


이런 건 기이한 경험이다. 직접 겪어보면 정말 기이하다.


당신이 한국에서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면, 감사할 일이다. 아무에게 오지 않는 행운이다. 팩트이지 않는가. 나 또한 마찬가지이고 말이다.(물론, 나는 평범하진 않았다. 그래도 객관적으로 감사할 일인 것이 맞다는 것이다.)


일요일 오후 11시에 보스 스피커로 'Space song - Beach house'를 들으며, 글을 쓰고 있을 수 있다는 것도 내 복이다. 이걸 사람들이 봐준다는 것도 복이고 말이다.


이 일을 점점 더 사랑하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