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다른 방법이 없다.

by 언더독

세상에 보이는 모든 디스플레이 속에서 자기 성공했다고 하는 이 사람 저 사람 영상이 물 밀듯이 보인다. 우리나라에 성공한 사람들이 저렇게 많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말이다. 누구보다도 성공이 간절한 나는 그러한 그들을 자의든 타의든 눈에 담게 되고, 그들 각각이 하는 말들을 한 번쯤은 귀 기울여 듣게 된다. 높은 확률로 나는 다른 이들보다 그런 내용들을 많이 접했을 것이다. 그만큼 간절하니 말이다.


실제로 이 사람 저 사람 책, 강의를 들어보기도 했다. 누구 것이 더 좋았고 누구 것이 별로였다는 말은 언급하고 싶지 않다. 그건 중요한 게 아니라는 생각에서이다. 중요한 건 '나에게 정말로 도움이 되었는가'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도 정말로 도움이 될 만한 것이었는가'이다. 종래에는 이런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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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생각해 보면 말이다. 세상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니, 지금 당장에 나오는 방법론들은 모두 outdated 된 방법론이다. 그렇지 않겠는가. (어떤 방법론이 어떤 수단으로든 몇 명에게 뿌려지게 되면, 삽시간에 퍼지게 될 것이다. 거기서 새로운 경쟁이 다시 발생한다. 방법론 전파는 약간의 부스터는 내줄 수 있으나, 커다란 해자를 형성하기는 힘들 것이다.)


결국에는, 가장 본질적인 내용으로 귀결된다. '누가 가장 꾸준히 고통을 감내하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달려들었나'이다. 클리셰이다. 전통적인 내용이다. 그 누구도 이를 부정할 수는 없다. 자기 힘으로 성공한 사람 중 저러한 히스토리를 지니지 않고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77261_17837_1622.jpg 고통을 표현한 행위 예술이라고 한다. 털보다.


오랜 시간 동안 고통을 마주하며 물러서지 않는다는 것은 말로 내뱉기는 쉬운 것이며, 행하기는 더럽게 힘든 것이다.(내가 해보고 있다. 더럽게, 드으럽게 고통스럽다.) 원하는 바를 세워두면 단 하나라도 속시원히 바로 성취해 낼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보면 된다.


언젠가부터 성공을 목표로 한 극도로 스트레스받는 환경 이외에 놓이게 되면, 망가지기 시작하는 형국을 보이게 되었다. 더 높은 곳을 조준하지 않고 살자 하면, 미쳐버릴 것 같았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경제공부를 통해 깨달은 바가 있어서도, 인생 선배들의 삶을 보고 깨달은 두려움이 있어서도, 지난 내 삶의 가난이 준 고통에 의해서도 그러하다.


고민을 하며 글을 쓰는 이 시간을 제외하면, 내게는 그것들이 굉장한 괴로움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글을 다 쓰면 푸시업을 한계까지 하거나, 턱걸이를 한계까지 하거나, 3km 이상의 구보를 온 힘을 다해 뛰고 들어온다. 그리고 한동안 지쳐 쓰러져 있다가 조금이라도 기력이 회복되면 다시 타이핑을 시작한다. 그게 나의 하루가 된 지 오래되었다.


batch_runners-802904.jpg?type=w800 가만히 있을 때의 정신적 고통보다, 몸을 고통스럽게 하는 게 덜 괴롭다.


누구든 직장에 메여 상사 밑에서 시키는 일을 한다고 치면 이렇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도 과거에는 그러한 차이를 설명하는 이들의 말을 듣고 있으면,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하지 못하곤 했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수긍이 안되니 말이다. 일은 일일 뿐이라 생각했었다.


나의 일, 나의 꿈, 나의 목표. 삼위일체를 이룬 '글쓰기'라는 것을 찾고 나서부터는 이 말이 이해가 되었다. 나는 내가 마음 저 깊숙이까지 수긍이 되지 않았다면, 그러하다고 남에게 말하는 것이 불가능한 사람이다. 내가 이해가 되었다고 말한 것이면, 정말로 그러하다는 뜻이다.


수차례의 출간 거절 메일을 받아오며 깊은 밤 지금 어렴풋이나마 드는 생각이 있다. 최악의 시나리오가 발생해 기획출판에 실패하고, 실업급여 기한이 끝이 나면 나도 다시금 직장생활을 좋든 싫든 시작하게 될 확률이 높을 것이다. 이는 나에게 대단한 굴욕감을 선사할 것이다.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직장인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나에게는 직장이 단순히 누구 밑에서 강압적으로 일을 해야만 하는 곳이 아니다.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완벽한 패배자가 되어 자기 인생을 송두리째 상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개인적으로 차라리 직장인 신분을 당당히 거부하고, 쫄쫄 굶어가며 잘 되지도 않는 자기 일을 죽자 살자 매달리고 있는 사람이 훨씬 똑똑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깨달은 정도를 남들이 모두 깨달으면 세상이 어떻게 돼버릴까 싶은 섬뜩한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나는 항상 세상을 액면가 그대로 살아왔기 때문에, 최악의 상황을 준비하는 습성이 있다. 설령, 그때가 오더라도 글쓰기는 손에서 놓지 않아야겠다. 절대로 그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글쓰기는 내 희망이 되었다.


지켜야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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