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 맞는 내용을 받아들이고, 현실을 사는 겁니다.
오늘 출판사 40개 가량에 추가 투고했다. 역시나 검토에 4주 정도가 소요된다고 한다. 이때까지의 투고량을 도합 하면 120군데 정도 되지 않을까 싶다. 언더독의 발버둥과 기다림은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 어떤 분야든 약자와 강자가 있고, 약자는 언제나 고통스러운 법이다.
브런치에서도, 원고에서도, 첫 출간작에서도 언급했듯 나는 동기부여란 말이 엉터리라고 생각한다. 기분은 무시하라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수많은 출판사에 투고를 하고, 수차례 거절을 당하고, 2주 이상 답변 메일을 기다리고 있으면 자동으로 우울감이 밀려온다. 나는 터미네이터가 아니다. 사람이기에 내 기분도 남들과 똑같이 걸레짝이다. (정말 힘들기는 하지만 이걸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대단한 의지가 있어서 그런 것도 아니다. 그냥 논리를 따르는 것이다. 관두면 뭘 할 것인가. 유튜브에 고양이 발작하는 영상이나 보고 있을 건가?)
잠이 들기 직전에도 우울감에 시달리며, 깨어나 눈을 뜰 때도 우울감에 시달린다. 그럼에도 나의 행동 퍼포먼스는 큰 변화가 없다. 하루를 그냥 살지 않는다. 의도를 지니고 끊임없이 생산적인 활동을 한다. 투고 메일을 더 보내본다던지, 여기에 글을 더 쓴다던지 한다. 하다 못해 운동을 한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것이 현재 목표다. 온종일 우울감에 시달리면서도 무언가를 계속 생산하는 것에는 동기부여가 없다. 동기부여 같은 거 없어도 이렇게 할 수 있다. 내가 직접 해보고 있으니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이다. 동기부여는 의심의 여지없이, 완벽한 엉터리다.(동기부여 관련 된 자기 계발 책과 강의에 돈 쓰는 것은 멍청한 짓이다. 그 시간에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활동을 하는 게 논리적으로 현명한 행동이다. 주식 구매를 한다던지 말이다.)
누군가는 나에게 독한 놈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건 독한 게 아니다. 순전히 논리를 따지는 것일 뿐이다. 핵심은 생산물을 내어 놓는 것이고, 거기에서 긍정적인 일들이 발생할 여지가 있다. 아무것도 안 하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 이게 다다. 그래서 생산한다. 긍정적인 일들이 일어나 현실이 물리적으로 변화해야 우울감도 사라진다. 내적인 컨트롤로 우울감을 상쇄 또는 치환시킬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데, 나는 그냥 내 갈길 가련다. (그런 건 법정스님이나 이소룡 정도는 되어야 가능한 것이다.)
이런 현상을 오래간 지속해서, 성공하는 결실을 취하는 것이 작가로서 내가 가야 할 길이다. 이 과정을 여과 없이 대중에게 보여줌으로써 내가 주장하는 방식을 증명하는 것이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가장 빠르고 확실하다.(말 많아서 좋을 것 없다. 사람 우스워 질뿐이다.)
출판시장을 이야기하는 블로그나 유튜브 등을 찾아보면 심심찮게 등장하는 주제가 있다. 베스트셀러 작가되는 건 하늘의 별따기라는 소리이다. 사람들이 책을 잘 안 사본다는 말을 한다. 책을 내고자 하는 사람들은 너무 많은데, 소화가 안된다는 둥의 말을 한다. 맞는 말이긴 하다.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다른 필드로 가면 다 좋은가? 똑같다. 어딘들 힘들고 어렵고 가능성이 낮으며 무모하다는 말을 할 것이다. 이런 마인드를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금은 그냥 한 우물 팔 생각이다. 그런 말을 듣고 내빼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기에, 미련하게 남아있는 나의 성공 확률은 더 올라갈 것이다.
인내심, 동기부여(별로 믿지는 않지만), 고통, 끈기, 성공에 관련한 여러 가지 내용을 탐구해 보았다. 대부분은 별로 와닿지 않아 언급하고 싶지 않으나, 한 가지 확실히 수긍이 되는 책이 있어 공유하고자 한다.
우울감이 심한 사람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혹여나 주변에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죽을 때 죽더라도 이 책 읽고 죽어라고 해라.(자살 방지는 이렇게 하는 것이다. 어설프게 죽지 말라고 하면 더 죽으려고 발악을 할 것이다. 원래 하지 말라 하면 더 하고 싶은 게 인간 심리다.)
프랑스 철학자 '알베르 카뮈'가 쓴 '시지프 신화'라는 책이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인물 '시지프'를 모티브로 만든 장편 소설이다. 시지프는 신들을 기만했다. 그에 사후 형벌을 받았는데, 산꼭대기로 바위를 굴려 올리는 벌이었다. 문제는 그 산꼭대기가 뾰족하게 생겼다는 것에 있다. 올려놓으면 바위가 반대쪽으로 다시 굴러 떨어진다. 그래서 다시 처음부터 굴려 올려야 했다. 끝날 수 없는, 무의미한 형벌이 영원토록 지속되는 것이다.
카뮈는 우리 인생이 '시지프의 형벌'과 같다고 말한다. 삶은 본래 무의미하며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카뮈는 이런 말을 했다.
"살아야 할 뚜렷한 이유를 찾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늘 죽어야 할 이유도 딱히 없다."
'오늘 죽어야 할 이유도 딱히 없다.'는 말을 이렇게 이해하면 된다. 어차피 인생은 무의미하고 가치 없는 일이니, 우리에게 일어나는 부조리와 불행들조차 덧없는 것이다. 신경 쓰기에 하찮은 것들이라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삶을 바라보라는 것이다.
알베르 카뮈는 1960년 1월 4일, 46세의 나이에 교통사고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