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행복은.
하고자 하는 일 그리고 해야만 하는 일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렇지 않은 사람이다. 사람마다 뇌의 연산 체계가 확연히 다른 것 같다. 내 주변에 있는 이들 또한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한 번은 이런 적이 있었다. 구체적인 예시가 정확한 이해를 도울 것이다.
그리 친하지도, 그리 멀지도 않은 사람이 있었다. 남들이 보기에 좋다고 생각되는 회사에서 일을 하다, 자기 발로 나왔다고 한다. 힘들었다고 한다. 일이 힘들었는지 사람이 힘들었는지는 모르겠다. 나와서 자기 일들을 시도해 보았다고 했다.(스마트 스토어 같은 것들을 말한다.) 그것도 잘 안 되었다고 했다.
그 사람은 제주도 한 달 살기를 가겠다고 했다. 이에 나는 왜 그것을 하려는 지에 대한 이유를 물었다.
그 사람의 대답은 젊을 때 즐겁게 누려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 늙으면 불행해지겠다는 말인가?"
그는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나는 그의 눈을 쳐다보며 아주 아주 천천히 말해주었다.
지금 하려는 제주도 플랜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이 아니라, 도망치는 방향이라는 점을 정확하게 말해주었다.
'말해주었다.'라고 썼다.
그가 내 말을 '받아들였다.'가 아니다.
그는 실제로 제주도로 갔으며,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굳이 궁금하지 않아 모른다.
내가 목표한 바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포기를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걸 잘 풀어서 설명할 필요가 있다. 생물에게는 역치라는 게 있다. 인간은 외부에서 인식되는 자극이 각자가 지니고 있는 기준을 넘으면 행복을 느끼는데, 그 기준을 역치라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행을 가거나, 좋은 호텔에 묵거나, 비싸고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하면 행복을 느낀다고 말한다. 나는, 그리고 우리는 그런 것에 행복을 그닦 느끼지 못한다.(지난 일주일간 바닷가에 있는 호텔에 묵으며 나와 같은 부류의 사람과 같이 있었다. 나는 호텔방, 로비, 옥상에서 카페인과 니코틴을 달고 글만 썼으며, 일행도 자기 일밖에 안 하다 왔다. 밥은 근처에 백반집에서 생태탕과 뚝배기불고기를 먹었고, 바다 짠내 살짝 맡은 게 다였다. 거기가 바닷가라는 것에, 또는 호텔 인테리어에 둘다 별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다.)
내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역치는 돈 얼마 주고 즐길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큰돈에 의해 사람들의 운명이 바뀌는, 비교적 거대한 변혁들을 보았을 때 행복을 느낀다. 예컨대 과거 먼 바다에서 일하며 목숨값으로 받은 돈으로 집안의 절대 빈곤과 폭력적인 상황을 잠재우고, 법적 무력을 동원해 질서를 확립했을 때가 그러했다.(실제로 변호사의 상담을 받았었다. 민사 소송을 준비했었다.)
그렇다 보니, 나는 정말로 행복할 만한 감정을 느끼려면 또 한 번의 대찬 변혁을 일으켜야만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시 술자리를 찾고, 다시 소확행을 찾고, 다시 명품을 찾는 것처럼 말이다. 나도 똑같은 인간이지만 그런 사이즈로는 내 역치가 흡족이 안된다는 것이다.(이러니 맨날 츄리닝만 입고 다닌다.)
다음의 내 역치를 넘기려면, 나의 경제적 자유를 넘어 부모형제의 것까지 그렇게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래서 포기하지를 않는 게 아니라, 못하는 것이다. 어쩔 때는 이게 저주인가 싶을 때도 있다. 차라리 나도 보통의 사람들처럼 그냥 명품 샀다고, 여행 간다고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한때, 나는 사람들이 여행을 가서 행복하다고 말하는 게 100% 행복하다는 뜻이 아니라 생각했었다. 그들 인생의 중요한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아 있던 것들이 다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삶을 살다 보니 깨달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정말로 완전히 행복해하고 있었다. 여기서 나는 이들과 확실히 다른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때까지 쓴 것들이 주된 이유다. 하나를 더 곁들이자면, 포기하고나면 어떤 활동을 할 것인가. 침대에 누워 있나. 유튜브 보나. 영화 보나. 그런 것도 한계가 있다. 남아도는 시간 동안 어떤 행위를 하고 있을 것이냐는 뜻이다. 사람은 뭔가 추구하는 걸 잃고 쉬운 쾌락에만 시간을 쓰다 보면 종래에 자폭하게 되어있다.
결론은, 나는 살려면 포기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제는 내가 글을 그만 쓸 방도가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