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쓴다는 것이 제가 해야 할 일이지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라는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사이좋은 노부부의 이야기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서로에게 존댓말을 쓴다. 서로를 많이 사랑하고 위하는 모습이 묻어난다.
할아버지는 장난기가 많다. 심심할 법한 시골 노후 생활에서도 할머니의 웃음을 길어다 주는 할아버지이다. 할머니는 밤에 화장실을 가고 싶으면 할아버지를 데리고 간다. 무서우니 화장실에 있을 동안 앞에서 노래를 불러달라고 한다. 할아버지는 그렇게 해준다.
다큐 말미에는 할아버지가 편찮으시게 되고, 결국에는 돌아가시게 된다. 할머니는 홀로 남는다. 할아버지 무덤 앞에서 이제 자기는 집에 간다고 말씀하시고는 가는 길에 목놓아 울던 할머니 목소리가 기억에 남는다.
나는 주로 경제와 주식, 사업이야기를 하는 작가이다. 지금 내가 머물고 있는 수준에 비해 보통의 이들의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를 일깨우려 하다 보니 다른 작가들에 비해 글에 힘을 더 주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마치 내가 돈밖에 모르는 작가처럼 비칠 수 있다.
그렇지 않다. 나는 뭐가 중요한지 잘 알고 있다.
왜 나는 부자가 되려 하는가.
궁극적인 목적은 내 부모형제와 내 사람들을 잘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돈은 수단이며 목적은 핏줄과 우방이다. 더불어, 우리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다. 세상에 태어났다면 누구나 죽는다. 사실 그렇게 오래 살지도 않는다. 기껏해야 100년 아닌가.
사람들은 이 점을 인지하지 못한다. 나는 건강에 대해 별 큰 자각을 가지고 살지 않는 사람이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나는 죽음을 코앞에 두어보았다. 그런 경험을 해보니 건강이라는 것에 대한 큰 의미를 찾지 못했다. 모든 것은 하늘의 뜻일 뿐이라는 생각으로 산다.
우리는 2분 뒤에 죽을 수도 있고, 2시간 뒤에 죽을 수도 있고, 2달 뒤에 죽을 수도 있고, 2년 뒤에 죽을 수도 있고, 20년 뒤에 죽을 수도 있다. 보장이라는 것이 어디에 있는가. 그런 건 없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간은 새벽 4시이다. 아침에 출근해야 하는 동기의 숙면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주차장 차 조수석에 앉아 쇼팽을 들으며 타이핑을 하고 있다. 나는 불안감으로 인해 잠을 잘 못 자는 편이다. 어차피 못 잘 거면 일을 더한다.
이렇게 글을 쓴다고 해서 당장 내 인생에 대단한 변화가 오지는 않겠지만 간절히 최선을 다하는 것에서 아주 미약한 덧셈이라도 될 수 있는 것이라 믿는다. 그 정도가 너무 미세해 잘 보이지도 않는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야말로 주어진 시간과 환경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해보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사는 것은 스스로에게 떳떳하기 위함이다. 부모형제와 내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했다는 명예를 치켜 보이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이 선이라고 믿고 있다. 그리고 진정한 행복이라고 믿고 있다.
다만, 이 글을 읽으며 그저 감상에만 빠지지는 않길 바란다. 핏줄과 우방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한 것이다. 수단이다. 나는 독자들에게 솔직하게 다 말하는 편이다. 내가 글을 쓰고 강의를 제작하고 책을 내려는 모든 활동은 두 가지 목적이 있다. 하나는 고객들에게 진정 실용적인 지식 전달을 통해 그들의 삶 또한 개선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둘은 그 수고비를 받아 돈을 벌기 위해서이다.
이를 숨기거나, 그렇지 않다고 애써 부정하는 것은 자연스럽지 못하다. 되려 위험한 사람이 될 소지가 다분하다. 실제로 시중에는 그런 사람들이 많다. 그렇게 감추고 아닌 척하는 것이 미덕이라도 되는 것처럼 행동하는데, 그게 맞는 것일까 싶은 생각이 든다. 참으로 실용적인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받을 건 깔끔하게 받는 게 훨씬 담백하다. 그렇게 해야 프로의식을 가지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다시 들어가도 잠에 들 것 같진 않다.
오늘 하루도 평안한 하루가 되시길 진심으로 기도드린다.
나는 나의 구독자들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애정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