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의 생각.

by 언더독

Angel Canales - Nostalgia

https://youtu.be/XiPD_LVSTM8?si=igXSqkOo42wdJUfQ


글 쓰는게 참 좋다.


내가 생각하는 글쓰기의 가장 큰 장점 두가지는 다음과 같다.


1. 돈이 안든다.

2.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자유를 누린다는 것은 어떠한 외압으로부터도 자유롭다는 의미이다. 이 지면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내가 추구하는 방식으로 쏟아도 밥줄이 끊기거나 누가 잡아가지 않는다. 이것도 어찌보면 감사할 일이다.


나처럼 글쓰는 사람은 반세기 전에만 태어났어도 검열 비슷한 것에 걸려 잡혀갔을 것이다.


당연히 누릴 수 있는게 아니다. 감사해야하는게 맞다.


스스로 재미를 느끼고 있으니 이게 해야할 일이라 생각이 드는 것도 아니다.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글을 쓰면 늘 바람직한 방향으로 해소되곤 한다. 자연히 실력은 는다. 자연히 구독자도 는다. 아주 느리지만 는다.


내가 가진 캐릭터, 추구하는 방향이 대중적이지 않기 때문에 다른 작가들처럼 빠르지는 않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나의 색체를 보존한다. 그렇게 해야겠다는 거창한 신조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그냥 나는 이렇게 생겨먹었다.


일전에 '흙수저 매뉴얼'이라는 책을 자가출판했다. 인생 첫 책이었다. 그때는 지금보다도 구독자가 없는 상태였기때문에 출판사에서 흥미도 없었을뿐 아니라 나또한 그들을 경계했었다.


출판업계에도 아주 질 나쁜 출판사들이 있다. 책을 만든다고해서 모두가 기본소양을 갖춘 것은 아니다. 어떻게 하면 열정 가득하고 아는 것 없는 초짜 작가들의 지갑을 털어서 자기 호주머니에 넣어볼까 짱구를 굴리는 양아치같은 출판사가 연락이 온적이 있었다. (미리 조사했다. 아니나 다를까 나타났었다.)


내가 글쓰기를 좋아하는 것은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인데, 이 점을 훼손시키고 싶지도 않았다. 출판사는 영리기업이기에 돈이 되는 책을 만들어야 한다. 이에 대해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나, 아무튼 작가에게는 그것이 외압이 된다.


첫 책은 주로 유년기에 주식투자를 시작하는 내용과 전략을 담은 책이었다. 주식은 경험이 있었고 사업은 경험이 없었기에 '사업에 대한 부분은 직접 경험해보고 글에 담겠다.' 라는 언급을 책에서 했었다.


요즘, 사업을 하고 있다. 장사수준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그에 대한 글을 자주 쓴다.


가장 근원적인 생각을 공유해볼까 한다.


왜 사람은 돈을 버는가


정상적인 사람의 경우, 가장 궁극적인 이유는 자신의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이다. 최대한 풍족하게 만들어주기 위해서이다. 스스로를 윤택하게하는 것에도 목적이 있지만, 저것에 더 큰 목적이 있다. 보통은 그러하다. 자신이 고통받는 것보다 핏줄이 고통받는 모습을 보는게 더욱 안타깝기 때문이다.


인류의 문명이 지금처럼 고도화되기 이전, 초창기의 모습을 생각해보자.


정글로 사냥을 떠나 가장 크고 튼실한 먹을거리를 잡아오는 것이 최대 목적이었다. 처자식을 배불리 먹이기 위함이었다.


사냥은 사냥꾼 스스로의 시행착오, 경험, 동물적 감각, 주관적 판단을 통해 진행된다. 여기에 누군가가 이래라 저래라 하는 사람이 없었다. 간섭은 없으며 결과에 대한 책임이 있었다.


그러니까 사업과 투자라는 것은 가장 초창기, 인간이 가장 인간다울 때의 사냥꾼 속성과 유사하다. 인간이 살아있는 인간임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사냥을 하다 포식자를 만나면 생명이 촌각에 달렸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며 내가 살아있는 인간임을 느낄 수 있다. 사업과 투자를 하다가 위기를 만나면 그와 비슷한 느낌을 갖는다.


스스로의 힘으로 먹을 것 많은 토실한 멧돼지를 잡았다 치면, 자신감이 붙고 사람들의 존경을 살 것이다. 내가 내 힘으로 이뤄내었다는 자부심을 누릴 것이며, 처자식 또한 풍족해질 것이다. 사업과 투자를 하다가 이익이 나면 그와 비슷한 느낌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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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여기서 생각해보자.


피고용자의 삶에 저러한 속성이 온전히 있는가?


없다.


인간이 인간답지 못하게 살게 된다. 연차가 쌓이며 할당되는 몫이 조금씩 늘수는 있다. 그러나 그걸로는 인생이 변할 수 없고 굴레는 이어진다. 과거에는 그러한 삶의 양식을 지칭하는 단어가 머슴, 종, 노예, 포로 등이었다. 중간급 인사 책임자 이상으로 진급하면 노예상 쯤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이 인간답지 못하게 살게 되면, 느끼게 되는 고통의 정도와 상관없이 삶이 소모된다고 느낄 수 밖에 없다. 보통의 사람들이 여행을 그렇게 좋아라하는 것도 그들 마음속 저변에는 앞서 언급한 인간의 자유 추구 본성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보통의 사람은 그게 뭔지 잘 모른다. 정상적으로 꺼내볼 생각도 하지 않는다. 다뤄볼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들이 보는 것은 자신과 비슷한 주변의 사람들뿐이며, 그들의 부모 형제도 같은 삶을 살기 때문이다. 이들은 무리지어다니는 초식동물군과 같이 고착된다.


그렇게 대대손손 골로가는 것이다.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산다는 것에는 본래 위험을 감내하는 속성이 있다. 그것이 정상적인 대가이며 누릴 수 있는 자유는 해당하는 보상이 된다.


DF-18459.jpg 인생을 비굴하게 살지 말자. 명예롭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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