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장사를 서서히 정리하는 과정을 가지면서 며칠간 책을 읽었다. 운동으로 몸을 서서히 회복시키듯, 정신도 회복시키고 있다. 주언규님의 '슈퍼노멀' 그리고 '명상록'을 읽었다. 다음은 '명상록'에서 기억에 남았던 내용이다.
어떤 사람들이 네가 바른 이성의 길을 따라 나아가는 것을 방해할지라도, 너로 하여금 바른 행동에서 벗어나 빗나가게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네가 그들에게 질려서 그들에 대한 너의 선의를 거두게 하는 것도 할 수 없게 하라.
너는 이 두가지 방향에서 네 자신을 철저하게 지켜서, 한편으로는 바른 길을 따라 나아가고자 하는 너의 판단과 행동이 변함이 없게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너의 길을 방해하거나 어떤 식으로 너를 훼방하고자 하는 자들을 선의로 대하는 것에서 변함이 없게하라.
그들에 대한 선의를 거두고 그들에게 분노하는 것은 그들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압력에 굴복해서 바른 행동을 그만두는 것만큼이나 너의 나약함을 공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자는 본성을 따라 동족이자 친구인 사람들과 불화하는 것이고, 후자는 겁을 집어먹고 도망친 것이기 때문에, 전자나 후자를 행하는 자는 똑같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지 않은 탈영병이라는 것은 마찬가지다.
나또한 감정을 다스리는 능력이 없는 것은 아니나, 대단한 편은 아니기 때문에 때때로 호전적인 성미가 역효과를 낳았던 적이 있었다. 명상록에서 발췌한 이 내용은 나에게 필요한 지식이고, 그 서사가 상당히 마음에 와닿았다. 와닿은 것에는 이 문장이 대단히 논리적이었기 때문이다.
남에게 분노하는 것은 나의 나약함을 공표하는 것이라는 말. 그렇게 하는 것은 이성을 지키지 않은, 자리를 지키지 않은 탈영병이라는 말에 공감했다.
명상록은 스토아 철학을 대표하는 책이다. 나는 이 철학을 읽고 남이 어떻다 저떻다 판단하는 일을 아주 관두기로 했다. 판단은 나의 감정을 소용돌이치게 할 뿐이다. 남이 악을 행하고 있는 것은 그 사람이 신경써야할 문제고, 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내 안에는 외부의 상황을 내가 원하는대로 받아들이고 생각할 수 있는 자주적인 힘이 있기에, 이 힘을 선용하기로 했다. 오직 이성을 살려 선과 미덕을 실천하면, 내 안에는 신이 깃들게 된다. 이성은 신이 인간에게 떼어준, 신이 가진 능력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여러분들도 이를 본인의 삶에 채용하면, 삶이 훨씬 아름다워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작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미덕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봤다. 제대로된 책이 아니고서야 또는 제대로된 글이 아니고서야, 강의 또는 코칭 같은 것들은 아예 생각을 하지 않기로 했다.
현재의 내가 글을 쓰는 최대의 목적은 가난에 처한, 희망이 안보이는 어린 친구들에게 선한 영향을 주기 위함이다. 그들 또한 자신들의 공동체를 위한 미덕을 실천하게끔 만들려는 것이다.
가난한 친구들은 강의 또는 코칭에 돈을 쓰기가 힘들다. 책 정도는 사볼 수 있고, 그럴 돈도 없다면 도서관에서 빌릴 수도 있다. 또는 지금 내가 이곳에 쓰는 글을 공짜로 볼 수 있다.(나는 친부의 사업이 쓰러진 고등학생 때, 차비도 없었다. 학교 걸어다녔다.)
그래서 그것이 나의 구독자들, 내 공동체를 위한 선이고 미덕이라는 결론에 다다랐으며, 행운이 따라 내가 이후에 작가로서 어떠한 수고비를 받게 된다면 그것은 오직 글을 통한 것이어야만 한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1년 전의 나의 모습을 보니, 스스로가 부끄러워진 것이다.
나는 사업을 해보며 고통을 정면으로 뒤집어썼고, 그 고통은 나를 철학으로 이끌었으며, 나는 보다 현명한 사람이 되었다. 이제는 모든 면에서 돈을 초월한 것들만을 추구하게 된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영혼이 더욱 명예로워졌음을 느낀다.
23년 10월 19일을 기점으로, 나는 선과 미덕만을 추구하는 이성의 작가가 될 것을 글을 통해 약속드린다.
명예로운 삶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