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 '고자장'의 내용이다.
하늘이 장차 큰 임무를 사람에게 내리려 하면
반드시 먼저 그 마음과 뜻을 괴롭히고
뼈마디가 꺾어지는 고난을 당하게 하며
그 몸과 살을 굶주리게 하고
그 생활을 빈궁에 빠뜨려
하는 일마다 어지럽게 한다.
이는 그의 마음을 두들겨서 참을성을 길러주어
지금까지 할 수 없었던 일도 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니라.
이게 무슨 말인지 생각해 보는 하루이다. 마음과 뜻을 괴롭히고 고난을 당하게 하고 굶주리게 하고 빈궁에 빠뜨리고 하는 일마다 어지럽게 한다는 저 내용을 나는 겪고 있다. 일을 하면 일을 해서 고통스러우며, 쉬고 있으면 쉬고 있어서 고통스러운 이 삶은 나의 만족 역치가 상당히 높은 곳에 책정되어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이게 당최 무슨 소리인가 싶을 것이다.
만약, 여러분이 최근을 사는데 정말 진실로 그 무엇도 당신을 '락(樂)'하게 만드는 요소가 단 하나라도 없다면 어떨 것 같은가. 나는 맛있는 음식, 비싼 자동차, 섹시한 여자, 명품, 여행, 퇴폐성 향락 등에 정말로 즐거움을 1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의 이상한 인간이다.
내가 조금이라도 기별을 느끼는 순간은 내 공동체(가족을 포함한 우방)에게 선향 영향력을 끼칠 때, 그리고 평소에 이러한 고통스러운 마음에 특이한 자극점을 줄 수 있는 비범한 철학적 내용을 읽거나 들었을 때, 스스로의 자유를 충실히 누릴 때이다. 이런 경우를 부족함 없이 누리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돈을 필요로 한다. 대단한 사치제인 것이다.
매일을 일해오다가 몸이 퍼졌고, 식은땀을 흘려가며 글을 쓰고 있다. 요즘 글을 계속 쓰는 것은 정신적 고통을 생산적인 방향으로 승화시키기 위한 뜻이 가장 크다. 가만히 있는 것은 나를 무한한 고통 속에 빠지게 만든다.
Diploma는 대학 졸업장을 말한다. 있으나 마나 한 종이짝으로 전락한 이것들은 이제는 별 가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개념을 하나 만들어 냈다. Life Diploma라는 개념이다. 인생 졸업장이라고 보면 된다. 유난스러운 의미는 없다. 정답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일맥을 가지는 철학은 있다.
인간이 스스로의 삶이 fulfill 되었다고 느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해 보면, 그것은 남들의 인정이다. 어떠한 방식으로든 말이다. 그러한 인정은 순전히 다른 이들의 자발적인 심상에서 나온 것이어야만 효용성이 있다. 다른 사람 머리에 총부리를 겨누고 나를 칭송하게 만든다고 해서 우리가 만족감을 느낄 수는 없는 것이니까.
타인의 자발성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요소는 나 자신이 '신'이 되는 것이다. 내 영혼의 파워가 너무나 강력하여 속세의 시공간을 모두 뒤틀어 버릴 수 있다면, 이는 비범한 것으로 인식된다. 이걸 더 쉽게 말하자면, 내가 추구하는 이상이 아주 구체적이고 정교하며 정확함과 동시에 모든 현실에서의 언행이 그것과 일치되는 것을 말한다.
처음에는 사람이 이렇게 되면 미친놈 취급을 받는다. 왜냐하면 융통성이나 인간미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나는 내 인생 초반기에 겪었던 하드코어한 가난으로 경제에 대한 공부를 했다. 거기서부터 스스로 판단한 것은 정규 교육 시스템을 따르는 것보다 빠르게 돈부터 모아 투자에 진입시켜놔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이외에 돈이 새는 것은 파멸로 가는 길임을 깨달았다. 가능한 한 빨리 급여 생활을 이탈해야 한다는 점도 안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대항력이 없고, 원천징수를 피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죽으러 가는 길임을 알았다. 그래서 사업과 투자에 관심을 둔다.(이걸 강요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그저 역사적 데이터를 공부했다.)
나는 일정 규모의 시드를 마련한 뒤, 과감히 중견 기업에서 이탈했다. 그리고 자산의 대부분은 나스닥에 있다. 소규모 자본으로 장사를 시도하기도 했다. SNS를 활용해보았기도 했고, 이처럼 브런치에 글도 쓴다. 여자에 별 관심이 없으며, 차를 굴리지도 않는다. 옷도 안 사고 신발도 안 산다. 그냥 먹고 마셔서 생명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만 돈을 쓴다. 이외의 시간에는 혼자 멍하니 무슨 생각을 하고 있거나 중얼댄다. 가끔은 혼자 큰 분노에 사로잡힌 모습을 하고 있기도 하다.
만약 이런 사람이 여러분의 주변에 있다고 생각해 보라. 내막을 모른 채, 이런 사람의 겉모습만 본다면 미친 사람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연유가 되었든 내가 입을 열고 나에 대해, 그리고 나의 계획과 시스템, 철학에 대해 설명하고 나면 어느 정도의 아비투스를 갖춘 사람들은 나를 인정하고 좋아해줌을 느낄 수 있다. 여기 모인 소수의 구독자분들 또한 그런 분들이라고 보인다. 대부분 그들은 사회경험 만렙의 50-60대가 많으며, 자영업 사장님, 기업 활동을 하고 있으신 분, 투자자 등이 많다. 뭐가 되었든 자신을 위해 일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다시금 말하지만, 아무리 내가 그들에게 나에게 관심을 주세요, 구독해 주세요, 한다고 해봐야 그렇게 되는 일이 아니다. 나는 나의 길을 가장 고통스럽게 감내하고 있을 뿐이며, 그런 타협하지 않는 갑갑한 인생이 '신'이 되는 프로세스이다.
평범한 이들은 부자가 되고 싶어 한다. 부모님에게 얼른 효도하고 싶다고 말한다. 예를 들면 차를 한 대 해드린다거나, 집을 해드린다거나 하는 일 따위 등을 말한다. 지금의 시대에 부모가 병들기 전 그런 행동을 해내려면 모든 생산 자원을 자산 증식에 올인해도 될까 말까인 것이 측정값이다. 그러나 그들은 남자, 여자를 만나 데이트를 하며 자원 손실을 일으키며, 차를 굴리고 명품을 산다. 별생각 없이 결혼을 하고 이혼을 하며, 하한가를 보름 이상 연발로 맞은 만큼의 금전적 손실을 발생시키기도 한다. 그것이 평범한 이들을 관찰한 값이다.
이들을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짚으려고 하는 포인트는 이들은 영혼의 파워가 약해 일치성을 보이지 못한다는 점이다. 내가 만약 이런 글을 대중들에게 써보이면서, 저들과 똑같은 삶을 양식을 살고 있다면 여러분들은 내 글을 볼 것인가?
왜 보나. 나 같아도 안 본다. 그저 돌팔이 키보드 워리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것이 내가 말하고자 하는 Life Diploma의 핵심이다. 인생 졸업장은 재산의 크기, 가진 권력의 정도에 비례하기보다는 영혼과 언행의 일치하는 정도에 비례하여 생기는 것이다.
Life Diploma는 좋은 개념이다. 정답이 없으며, 삶의 모든 부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진리적 성질 때문이다. 맞고 틀림도 없다. 꼭 경제적인 면만이 아니더라도, 삶에서 채택할 수 있는 철학적 방향은 다양하다. 영혼의 방향과 육신의 방향이 얼마나 일치하는 것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사람은 부자가 될 수 있고, 성공적인 경제적 삶을 살수는 있지만,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는 없다. 남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불쌍한 인간으로 끝나버릴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누가 그런 사람을 인정하겠는가. 콧방귀나 뀌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