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 아이가 자라는 온도-4>

부끄러움이라는 낯선 손님, 그리고 나의 그림자

by lena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거치며 수많은 참관 수업을 다녀왔습니다.

그때마다 아이는 자신감의 결정체였습니다.

엄마가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허리를 더 꼿꼿이 세우고, 반짝이는 눈으로 선생님을 바라보던 아이.

손을 번쩍 들고 큰 목소리로 발표하며 타인의 시선을 기꺼이 즐기던 아이였습니다.


사실 저는 실수를 극도로 꺼리는 완벽주의 성향이라, 아이가 손을 들 때마다 '틀린 말을 하면 어쩌나' 조마조마하기도 했지만 아이는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틀려도 배시시 웃으며 넘기던 그 단단한 자존감이 내심 부러울 정도였지요.



변화의 징조가 보인 건 작년 유치원 졸업 공연 즈음이었습니다.

평소 제스처도 풍부하고 전달력도 좋던 아이가 공연 날 유독 대사를 서둘러 처리했습니다.

다른 학부모들은 눈치채지 못할 미세한 긴장감.

무대 경험이 많고 외향적인 아이였기에 그저 '조금 떨리나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습니다.




그리고 지난 4월, 초등학교 1학년 첫 참관 수업 날이었습니다.


맨 뒷자리에 앉은 아이는 엄마 아빠를 발견하고 세상에서 가장 밝은 미소를 지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수업이 시작되자 낯선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발표 기회가 수차례 주어지고 반 친구들이 앞다투어 손을 들었지만, 아이는 단 한 번도 손을 들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안 해본 친구들을 배려해 명단을 체크하며 기회를 주셨지만, 평소 학교에서 발표를 잘한다고 알려진 우리 아이의 침묵은 선생님조차 눈치채지 못하신 듯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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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모두가 한 마디씩 해야 하는 순서가 왔습니다.

아주 짧고 쉬운 대답이었지만, 아이는 차례가 돌아오자 말을 떼지 못하고 우물쭈물했습니다. 순식간에 얼굴이 붉어지는 아이를 보며 제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쉬운 듯 문 앞까지 따라 나와 손을 흔드는 아이를 뒤로하고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습니다.

'워킹맘이라 동네 엄마들과 어울리지 못해 아이가 기가 죽었나?', '학교 생활에 적응을 못한 걸까?' 자책 섞인 고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습니다.


그날 저녁, 아이에게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우리 딸, 오늘 왜 손들고 발표 안 했어?" 아이가 내뱉은 대답은 제 가슴을 더 깊게 찔렀습니다.

"내가 발표했을 때 틀려서 사람들이 비웃으면 창피해서 싫어."


충격이었습니다. 그것은 정확히 저의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타인의 시선을 예민하게 의식하고, 조금이라도 부끄러운 실수를 하면 며칠을 잠 못 이루며 괴로워하는 저의 성격.

아빠의 대범한 성격을 닮았다고 믿으며 안도해 왔는데, 아이는 어느새 제가 가장 감추고 싶어 했던 '불안'이라는 그림자를 닮아가고 있었습니다.


"00아, 너는 아직 어린아이잖아. 틀려도 괜찮아. 사람들은 네가 귀여워서 웃는 거지 비웃는 게 아니야."

위로의 말을 건넸지만, 사실 그 말은 저 자신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부끄러움이 생겨나는 발달의 과정이라기엔, 아이의 목소리가 너무나도 간절하고 신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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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실에서 수많은 아이를 마주하며 이런 성향의 아이들을 지도하는 방법들을 수없이 읊어왔습니다.

하지만 정작 내 딸아이 앞에서 저는 정답을 잃어버린 채 백지장이 됩니다.

아이가 저처럼 타인의 시선에 갇혀 마음이 힘든 어른으로 자라지 않게 하려면, 저는 어떤 환경을 만들어주고 어떤 문법으로 대화해야 할까요.

오늘 밤은 상담가가 아닌, 상처받은 어린 시절의 나와 마주한 한 엄마로서 깊은 고민에 잠깁니다.


그래도 여전히 사랑스러운 내 딸아. 너의 침묵이 단지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세상을 더 깊고 신중하게 관찰하려는 너만의 속도이기를 믿어본다. 타인의 시선이라는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너의 앞길을 당당하게 헤엄쳐 나가는 아이가 되기를 엄마는 온 마음을 다해 응원해.


"느릿하지만 씩씩하게 자라는 아이를 보며, 엄마로서 기록하고 싶었던 마음들을 이곳에 하나씩 꺼내 놓으려 합니다. 아이의 1학년 생활과 저의 마음을 담은 연재, 이제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