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쓰다
내 일기장에는 슬픈 날만 있다.
기쁜 날에는 좀처럼 일기를 쓰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이상하게도 슬픈 날에는 꼭 무언가를 적어 내려가고 싶어진다.
올해는 월간 자수를 놓고 있다.
그달에 있었던 일들을 작은 아이콘으로 새기는 기록이다.
천 위에 한 땀 한 땀 그달의 시간을 남긴다.
2월까지의 기록을 자수 놓고 문득 일기장 옆에 두었다.
그제야 알게 되었다.
일기장에는 슬픔을 남겼고
자수에는 기쁨을 남겼다는 것을.
일기장을 넘겨보면
그날 속상했던 일, 마음에 걸렸던 말, 괜히 작아진 것만 같은 기분 따위가 쓰여져있다.
어떤 슬픔은 평생이 가도록 아프기도 하지만
내 일기장 속 슬픔은 사소하다.
그날 일기장에 터트리고 나면
다음날 조금, 그다음 날 더 조금 그 슬픔이 옅어진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몇 달이 지나고 다시 읽어보면 왜 저렇게 슬펐지? 싶은 마음이 든다.
그래서 슬픈 날에는 일기를 쓰는 것 같다.
마음속에 걸려있는 무언가를 일기장에 꺼내어 놓는다.
사실 그간 기쁜 날을 글로 남기려는 노력은 나름대로 했었다.
작은 학종이에 그날의 기뻤던 일을 적어 유리병에 담아놓는 시도도 해보았으며, 기쁜 날만 적는 노트를 따로 사기도 했다.
그런데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도록 기쁜 날의 기록은 채워지지 않았다.
슬픈 기록은 너무 잘 쌓여갔다.
문득 슬픈 기록만 가득한 일기장을 보며, 내가 이렇게 기쁜 날이 없는 사람인가 생각도 했다.
월간 자수는 기쁨의 기록을 남기기 위해 시작한 일은 아니었다. 그저 심심할 때 생각 없이 손을 쓰기 위한 취미였다.
월말이 되고 한 달을 되돌아보며 그달에 있었던 기억에 남는 것들을 자수 놓았다. 2월까지의 자수를 모두 새기고 뿌듯한 마음으로 자수를 들여다봤다.
그러자 지금까지 내가 애써 기록하려다 실패했던 모든 기쁜 순간이 남아있었다.
일기 속에 슬픔을 털어 넣고, 한 달 단위로 되돌아보면서 나에게는 기쁜 기억만 남아있었다.
천에 한 땀 한 땀 기록해야 하는 자수에는 기쁜 일만 새기고 싶은 내 무의식일까. 아니면 일기에 슬픔을 털어 넣고 남은 것은 기쁜 기억들뿐인 걸까.
그게 뭐든 자수에는 하루하루의 행복이 새겨져 있다.
나는 생각보다 괜찮은 나날을 많이 살고 있었다.
나는 매일 조금씩 기쁨을 느끼며 살고 있었다.
일기장엔
그날의 슬픔이 남아있고
자수에는
내가 고른 기쁨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