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은 어디로 갔을까

생각을 쓰다

by 은지

20대의 나는 스스로 재수가 좋다고 생각했다.

생각보다 쉽게 풀리는 일들이 많았고, 그 결과가 내 능력보다 과한 것은 아닌지 하는 행복에 겨운 고민도 했다. 사람들이 좋게 평가해주면 기분이 좋다가도 이 운이 언젠가 다해버릴까 괜히 불안해지기도 했다.

30대가 되자 그 '재수 좋던 나날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할 일은 잔뜩 쌓여 있는데, 운이 따라주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예전처럼 모든 일이 술술 풀리지 않았다. 내 평생의 운을 너무 이른 나이에 소진해 버린 건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행운은 어디로 가버렸을까.

30대의 나는 책임질 것들이 많아졌고, 체력은 줄어들었다. 20대에 지나치게 불태운 열정은 조금 사그라들었다. 친구들은 여전히 내가 부지런하다고 말해주지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분명히 20대에는 더 쉽게 많은 일을 해냈다. 지금도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고 있음에도, 그때만큼 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처럼 다시 운 좋게 술술 풀리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마음이 쌓이다가 결국 번아웃이 왔다. 지쳐서, 그냥 쉬고 싶어졌다.

행운은 나에게 게임의 랜덤 아이템 상자 같았다.

무언가를 하다가 운이 좋으면, 내 레벨보다 높은 아이템이 '뿅' 하고 나오는 상자. 나는 20대에 계속해서 내 레벨보다 좋은 결과를 뽑아왔다. 그러다 그런 '뿅' 하는 아이템이 나오지 않는 시기가 오자, 이 게임이 갑자기 하기 싫어졌다.

하지만 인생은 싫증 난다고 꺼버릴 수 있는 게임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냥 꾸역꾸역, 하루의 일을 겨우 해내며 버텼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돌아보니, 20대만큼 빠르진 않아도 나는 계속 레벨 업을 하고 있었다.

인생의 랜덤 아이템 상자는 모두에게 주어진다.

운이 좋으면 내 레벨보다 두 단계쯤 높은 아이템이 나올 뿐이고, 운이 나쁘다고 해서 내 레벨보다 못한 결과가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결국 내가 한 만큼의 결과가 나올 뿐이다. 그냥 조금 천천히 경험치를 쌓아가도 레벨업은 된다. 레벨업 하다보면 좋은 아이템이 '뿅' 나타날 때가 또 찾아오지 않을까.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번아웃에 빠져 지쳐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갑자기 혼자서만 좋은 게임 아이템을 갖고 쉽게 레벨이 쑥쑥 오르는 게임 판타지물이 유행했나싶다.
난 그런 멋진 게임 판타지물의 주인공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게임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그 다음날도 천천히 경험치를 쌓아가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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