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의 지역의 사생활 99 시리즈 〈외계인 투어〉는 지역 ‘전주’를 다룬다. 지역 전주가 다뤄지는 방식은 외계인에게 납치된 주인공이 자신이 살던 ‘전주’를 관광시켜 준다는 설정이다. 납치라는 말이 다소 위협적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익살스럽고 장난스러운 ‘납치’이니 유익한 만화로 이해하면 좋다.
외계인들은 지구인의 도움을 받아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2박 3일 전주를 여행한다. 인간 가이드의 도움을 받아 전주콩나물국밥, 옛정 막걸리, 덕진공원, 객리단길, 전주국제영화제, 전동성당, 벽화마을, 저녁의 한옥마을 등을 산책하고 관광하게 된다. 여기까지가 지역의 사생활 99시리즈 〈외계인 투어〉 내용의 골자다.
하지만 이 텍스트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만화가 개인의 심리를 담아낸다. 작가는 ‘전주’를 즐거운 공간으로 기억하지 못하는데 그 이유는 과거 사랑했던 애인과 다투고 싸웠던 기억을 지역 전주가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지역이 잊고 싶은 장소로만 기억되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걔랑은 늘 다툰 기억뿐”(49)이었지만, “좋은 기억도” 분명히 존재했다. 여기서 반전이 일어난다.
‘미국’ 여행 때, 외계인을 도와주었던 사람이 주인공의 애인이었음이 밝혀진 것이다. 외계인이 ““지구 가이드북에 따르면 한국에서는 전라도가 미식 여행에서 빠지지 않는 모양”이라고 말한 것인데, 여기서 ‘가이드북’의 지침은 현재 외계인을 관광시켜 주는 지구인의 애인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이 말은 애인 역시 다투고 싸우고 서로를 미워했지만, 그와의 추억을 공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공간과 장소는 짠 한 것인지도 모른다.
애인은 외계인에게 전주를 자랑하면서 그와의 각별했던 순간들도 떠올렸을 테지만, 구체적인 사연은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부끄럽고 너무나 사적인 내용이니까. 우리도 그렇지 않은가.
이러한 맥락에서 이 작품은 여러 생각을 품게 한다. 어느 한 ‘장소’는 멈춰 있는데, 각자 고유한 사정을 품고 있는 사람에 의해 수동적으로 적힐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생명체 같은 도시 전주는 한 개인에 의해 밝은 표정을 짓기도 화난 표정을 짓기도 하는 셈이다. 이러한 진리를 이 만화는 깜찍하고 귀여운 캐릭터로 말한다.
리뷰를 쓰면서 드는 생각은 ‘만화’적인 것이 이런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문학이라면 진지하고 성찰적인 태도로 임했을 텐데, 만화는 진지한 형식과 내용도 이렇게 해학적으로 그려내는 것이다. 이것이 만화의 힘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역의 사생활 99 시리즈 〈외계인 투어〉 편은 작가 이름이 비공개처리 되었다. 그는 어떤 이름을 지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