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수의『도사의 계절』
2017년 오석균 시인의 시집 <기린을 만나는 법>에 대한 해설을 쓰고, 오석균 선생님이 교편을 잡고 있는 속초에 방문한 적이 있다. 이때 당시 영랑호를 걷고 또 걸었다. 가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던 시절이었다. 오석균 선생님께서는 '문예반' 특강을 준비해 주었고, 여고생 4명과 담소를 나누었다. 그 친구들 이제는 어엿한 대학생들이겠다. 그 당시 뭔가 열심히 말했던 것 같은데, 말을 많이 하기보다는 작은 이야기를 천천히 느리게 했어야 했다. 아무튼, 그 당시 내 기억이 속초를 조금은 더 가깝게 다가가게 만든다.
최지수의 『도사의 계절』은 2199년 미래의 어느 날 ‘도사’라는 특정한 직업을 가진 인물이 “지네에게 독이 되는 형벌을 대신 이행”(22)해 주는 역할을 의뢰받아 실행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지네가 형벌 받는 이유는 만화적이다.
영물로 타고 났지만. 요물로 자리 잡았습니다.
화산 줄기를 받고 자라 태생이 드세고 운이 밝았습니다.
하지만 탐욕스럽고 질투가 심한 성격으로
눈에 걸리는 족족 시비를 걸거나
다른 영물들의 기운을 잡아먹는 짓을 일삼아
지상에 정착하지 못하고
요물로 떠돌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얼마 전,
동해 용왕님께서 100년간 애지중지 기른 거북 선생님이
잠시 제주 물에 올라오셨습니다.
하지만 화산 지네의 눈에 띄어...
기력을 모두 빼앗긴 나머지 그만...
다시 생후
1개월 생 거북이가
되셨습니다.
여기서 형벌은 속초로 지네를 유배시키는 것으로 이 과정에서 ‘오징어 난전’, ‘영랑호’, ‘대포항 수산시장’이 호명된다. 결과론적으로 도사의 임무는 실패하지만,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지역 ‘속초’가 재현된다.
개인적인 생각일 수 있으나, SF 판타지 형식으로 그려서 그런지 ‘지역’성을 온전히 느낄수 없었다. 이것이 만화라면 만화인지는 모르겠으나, 아쉬움을 피할 수 없다. 뭔가 지역 자체를 꿰뚫는 것이기보다는 ‘전시’ 차원에서 소비된다. 다만, 속초에 머물고 있는 사람이라면 앞서 내가 이야기한 감각이 조금은 수정될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