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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종필 Mar 27. 2021

물웅덩이에  떨어지는  빗방울



“나는 행복한 흡연가입니다. 내가 지내고 있는 브리들링턴은 돈이 사라져가는 것을 보기에 적당한 장소입니다. 나는 욕심이 많다고 생각하지만 돈에 대해서는 욕심을 내지 않습니다. 돈은 짐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흥미진진한 삶에 대해서는 욕심을 냅니다. 나는 삶이 항상 신나기를 바라고 실제로 그런 삶을 살고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나는 물웅덩이에 떨어지는 빗방울에서도 재미를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지요. 나는 쓰러지는 날까지 신나는 삶을 살 작정입니다.”1)



  


 


바람이 분다. 


멋진 남자들과 여성들이 활짝 웃으며 지나간다. 모두들 자신감이 있어 보이고 생기가 넘친다. 걷는 보폭도 나처럼 짧지 않다. 내 옷차림이 이상한 것 같아서 괜스레 부끄러움이 느껴진다. 다른 별에 온 것 같다. 


데이비드 호크니의 전시회를 보러 가기 위해 서울시립미술관으로 향한다. 미술관으로 향하는 산책길이 산뜻한 봄을 품고 있어서 여유가 느껴진다. 이런 기분 정말로 오랜만이다. 오늘 같은 날은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것 같다.


미술관에 들어간다. 


한쪽 귀퉁이에는 데이비드 호크니와 관련 있는 기념품을 팔고 있었고 복도 중앙에는 젊은 작가들이 옹기종기 모여 실험적인 예술을 펼친다. 카페에는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로 붐빈다. 가장 먼저 눈길이 가는 곳은 기하학적으로 펼쳐진 공간이 아니라, 보관함 옆에 있는 혈압 기계다. 


호크니의 그림을 감상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비집고 안으로 들어간다. 그림을 그려본 적이 없었기에 디테일한 차이를 섬세하게 만져보진 못했지만, 자신 스스로를 끊임없이 갱신한 예술가가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을 수 없었다. 머리카락을 끌어 올리고 기름기 묻은 코를 문지르고, 다시 그 손으로 얼굴을 닦으며 그림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호크니의 전시회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2007년 작품 「‘와터 근처의 더 큰 나무들 또는 새로운 포스트 —사진 시대를 위한 야외에서 그린 회화’」와 1998년 작품 「‘좀 더 가까워진 그랜드캐니언’」이었다. 둘 다 엄청나게 큰 그림이었는데 이국땅의 풍경을 색다르게 경험할 수 있어서 좋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호크니가 밀고 나간 예술적 행위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는 노장임에도 불구하고 어린아이처럼 실험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새로운 매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자신의 예술을 창조적으로 선보였다. 이런 모습을 보니 건강하지 않은 나와 내 주변 동료들이 자극을 받을 필요가 있음을 상기하게 되었다. 


정체되어 있는 답답한 문단 현실 속에서 전혀 다른 세대의 출현이나, 모든 것을 생애체험으로 느낄 수 있는 진정한 예술가가 등장하길 희망한다. 하지만 나의 이러한 몽상은 몽상일 뿐이다. 이 지면에서는 역설적으로 호크니(1937~)와 같은 젊은 예술가가 등장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늙음’이라는 주제와 관련이 있는 시집 몇 권을 소개할 뿐이다. 



자유2)   



김형영 씨의 시집 『화살 시편』은 절박하게 죽음을 응시하지 않는다. 죽음을 기다리는 한 인간의 모습을 그럭저럭 넉넉하게 잘 그려냈을 뿐이다. 이러한 ‘넉넉함’을 치열하지 않다고 누군가는 코웃음을 칠 수 있다. 이 정도가 죽음을 응시한 시집이냐고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이곳은 치열한 삶과 넉넉한 삶이 동시에 존재한다. ‘더’와 ‘덜’의 차이가 있을 뿐, 좋고 나쁨을 논하기가 쉽지 않다. 개별적인 피부에 스며든 사연을 헤아려야 하는 이유다. 


이 시집에선 죽음을 응시하는 에너지가 존재하는 동시에 역행하는 힘도 존재한다. ‘삶-죽음’이 그것이다. 이 힘은 직접적으로 발화되거나, 생기발랄한 대상과 접촉한 상태에서 비유적으로 표현되는데 시인으로 하여금 능동적인 삶을 지향하게 만들고 지치지 않는 시작(詩作)을 쫓게 만든다. 시집에 수록된 첫 번째 시에 해당되는 「서시」는 이러한 측면을 상징적으로 잘 보여준다.





바닷가 모래밭에 

한 아이 구덩이를 파서

바다를 담고 있네.

조개껍데기로 퍼 담고 있네. 


거기서 뭐 하느냐 물으면 

“바닷물을 다 담으려고요.”

“그건 불가능하단다.” 일러주어도 

아이는 계속해서 퍼 담고 있네. 


                        「서시」 전문 




한 아이가 바닷가 모래밭에 앉아서 구덩이를 파 바닷물을 담는다. 바다를 담기 위해서다. 화자는 아이의 이러한 행동을 어리석다고 생각한다. “바닷물을 다 담으려고요”라는 아이의 목소리에 “그건 불가능하단다”로 응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계속해서 바닷물을 퍼 담는다. 오염된 개념을 간직하지 않은 아이의 이런 모습은 세상의 이치를 너무나 빨리 깨달은 어른의 모습과 대조된다. 「시」3)에서 등장하는 ‘아이’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아이’는 좋은 시의 기준을 제시한다. 그만큼 시인에게 있어서 ‘아이’는 삶의 원동력이다.


자신의 예술을 아이의 형식으로 바꾸려는 의지는 ‘죽음’을 응시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죽음을 의식한다는 것은 이곳의 삶을 긍정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이 시집을 읽으며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흔들리는 자신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시집에서 마음에 들었던 것은 이러한 경계의 흔들림이 아니다. 다음의 구절이 더 진지하게 다가왔다. 





공초 오상순 선생은 

“자유가 날 구속했다”는 

명대사를 남기고 떠나가셨다 


꽁초 연기 붙잡고 



                       「화살시편 12―자유」 전문 




이 구절을 읽으면서 ‘자유’ 자체도 치명적인 모순을 품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자유’의 미덕을 전적으로 동의했던 터라, 아차 했다. 자유 또한 집착이고 더러운 욕망의 한 모습일 수도 있는 것이다. 김형영의 시집은 넉넉해서 가벼워 보이지만, 이처럼 삶의 귀중한 자산들을 곳곳에 숨겨 놓고 있다. 



고독4)  



시인은 “실오라기에 매달려”(「Na, na」) 낮은 목소리로 노래한다. 



그녀가 운용하는 시•공간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시•공간과는 차원이 다르다. 백년이고, 백만년이다. 이러한 태도가 시작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 독자들은 이 시집을 읽는 과정에서 고독한 내면이 만들어낸 시적 형식과 어렵지 않게 만나게 될 것이다. 어쩌면 독자들은 그녀의 삶을 답습하면서 작은 미래 하나를 점쳐 볼 수 있다. 





나는 젊고 아릅답다

너는 젊고 웃는다

너는 젊고 웃지 않는다


언제부터 너는 젊고 시작되었다

언제부터 너는 웃고 아름답지 않는다

언제부터 너는 웃지 않고 아름답지 않는다


그리고

너의 칠요일은 온다


아침이 오지 않는다 저녁이 오지 않는다

저녁만 시작된다 아침만 시작될 것처럼


더듬더듬

한 이파리씩 


                       「장미」 전문 




그녀는 이 시집에서 반복될 수밖에 없는 한 인간의 모습을 그린다. 한 인간이 태어나 웃고 울고 아프고 그리워하는 모습이 반복되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모든 인간은 같은 감정을 쏟아내며 죽음에 다다르게 될 것이라고 속삭인다. 시적 화자는 천 년 동안 죽지 않는 생물이 되어 세상을 내다본다. 죽지 못하니 100년도 살지 못하는 인간의 모습이 초라하기 짝이 없다. 시집 제목이 ‘급! 고독’인 이유다.   


비가5) 




이 시집에는 60편의 시가 실려 있다. 그래서 시집 제목이 ‘60조각의 비가’로 지워졌나보다. 시집을 넘겨본다. 직접적으로 ‘비가’와 관련된 연작시가 펼쳐진다. 시적 소재는 감나무, 이불, 피아노, 주머니, 남현동, 4월, 구름과 같은 일상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대상이다. 물론 「4월 비가」는 세월호의 아픔을 다룬 시편이어서 색이 다르다고 볼 수 있으나, 시인은 우리가 평범하게 생각하는 사고의 틀을 비틀어 즐거움을 선사한다. 비틀어진 공간 속에는 한 편의 시가 생글생글 웃는다. 이 웃음을 발견하는 일이 이 시집을 읽는 즐거움 중에 하나다.





지금 변변히 울리지 못한다고 해서

울렸던 그의 지난날조차 잊혀져야 한다는 말이 답이 될 수는 없다

모든 피아노가 갈채의 무대를 꿈꾸는 것만은 아니듯이

제 소리만큼의 울림과 결절을 껴안으며 피아노가 된다 

저 검다란 피아노가 먼지를 벗 삼아 내려앉은 자리는

그가 찾았거나 아직 찾고 있는 중인

온갖 답들을 향한 질문으로 뜨거울 게다



                       「피아노 비가」 부분 




독자들은 시집 제목이 ‘60조각의 비가’ 이어서 우울한 기운만을 담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위에 인용된 「피아노 비가」처럼 힘차고 당당한 경우도 있다. 마음껏 울고 난 후, 눈물을 닦고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난생처음 종이로가 아닌 

몸으로 낳은 詩


글씨는 내 글씨로되 

오려 두기하거나 잘라 내거나 붙이기할 수 없는 詩


내가 살아 보지 못한,

그리고 살아 주지 못할 나의 詩


                     「딸, 스무 살」 부분




이 시집의 또 다른 특징은 시인의 시론적인 생각을 여러 편의 시를 통해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 대목을 읽는 과정에서 우리는 이선영 시인의 시 쓰는 삶을 훔쳐볼 수 있다. 독자들은 이 광경을 목격하면서 시인의 삶을 몽상할 수 있다. 모든 시인이 이선영 시인과 동일하진 않겠지만, 시 쓰는 삶에 대해 일정 부분 공감할 수 있다. 이것도 즐거움 중에 하나겠다. 


여름



여름이다. 


한 시인이 태어나 시를 발표하고 시집을 묶어 내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적이 있다. 어느 시집이건 무게가 가볍지 않다는 것을 잘 안다. 


이번 여름은 부끄러울 따름이다. 





*



1) 마틴 게이퍼드(Martin Gayford), 「기억으로 그리기」, 『다시, 그림이다』, 주은정 옮김, design house, 2018,101쪽. 

2) 김형영, 『화살시편』, 문학과지성사, 2019. 

3) “엄마 젖가슴에 안겨 / 옹알거리는 아기, // 눈을 감아도 수호천사를 만나 / 무슨 생각을 나누는지 / 연신 하늘에 웃음을 보내는 아기, // 보이는 것 중에서 가장 신성한 / 이제 막 태어나는 아가말, // 좋은 시인의 시도 / 태어난 지 세이레쯤 된 / 아기 옹알이 같은 / 눈에 보이는 음악이어라.”(김형영, 위의 시집, 22쪽.)

4)  이경림, 『급! 고독』, 창작과 비평, 2019. 

5) 이선영, 『60조각의 비가』, 민음사, 2019. 

6) 이에 해당되는 작품은 「나는 쓴다, 싼다」, 「딸, 스무 살」, 「시 읽어 주는 시인」, 「시 쓰는 여자」, 「팬의 이중생활」, 「매미의 詩」, 「나의 시어사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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