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이 쏟아지는 시대다. 최신 영화뿐만 아니라 매주 스트리밍(Streaming)되어 올라오는 넷플릭스 콘텐츠부터 신간 시집과 소설집, 이 지면에 소개하는 만화나 웹툰까지 더한다면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한 명의 평론가가 시의성에 맞는 좋은 작품을 선별해 소개하는 작업은 사실상 덜 객관적이다. 취향을 용기 있게 밀고 나갈 수 있지만, 취향만으로 동시대의 흐름을 모두 채울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니 그렇다. 그래서 종종 동료들로부터 추천받는다. 작년 11월에도 이런 고민을 했던 것 같다. 좋은 만화가 무엇인지 고민하다가 한 명의 지인으로부터 윤필과 재수의 공동 작품 『다리 위 차차』(2022)가 송송출판사에서 새롭게 출판되었다고 소개받은 것이다. 내게 ‘차차’는 그렇게 다가왔다.
이 작품은 간단히 말해 인간처럼 사고하는 AI 로봇 차차에 대한 이야기다. 차차는 인간처럼 진화된 로봇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그런데 인간이 아닌 로봇이 인간처럼 사고하고 판단하는 세계관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소재다. 그렇다면 로봇 ‘차차’가 동시대 AI 로봇 작품과 다른 지점은 무엇일까. 이 차이가 기존 작품과는 차별화된 즐거움을 독자들에게 선사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차차는 설계될 때부터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사람을 자살하지 못하게 막는 역할을 부여받았다. 그래서인지 “그렇게 아주 오래 움켜쥐고 있으면 쇠도 손바닥처럼 따스해”진다는 이면우 시인의 싯구절처럼 사람을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다리에 찾아온 사람들은 차차를 조롱하고 무시한다. 로봇 따위가 인간에 대해 아는 것이 무엇이 있느냐며 못마땅해 한다. 그런데 이 만화는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시선과 혐오가 값진 소재로 다뤄진다. ‘동기화’ 기능을 통해 다른 로봇이 겪었던 부조리를 대리자의 형태로 경험할 수 있었던 차차는 ‘인간’의 본모습을 연구하는 데 유용한 정보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이텍스트는결국, AI를통해 ‘인간’이란무엇인가와같은질문에대답한셈이다. 인간도로봇도아닌사이에놓인 AI 로봇을선택해 ‘인간’의옳고그름에대해질문한것이다. 너무익숙한소재와줄거리이지만, 차차가자살을방지하기위해고안 된로봇이라는점과인간에의해자행되는무례함을받아낸로봇이라는점에서새롭다. 진정한인간이무엇인지묻는이작품은구질구질하고더러운인간의모습을거울에내비친다. 인상적이었던것은만화가가『다리위차차』를기획했던의도이다. “재미나실험성이아닌의미” 자체에초점을두었다고말이다. 이처럼 ‘의미’를잘다루는것만으로도텍스트는값지게다가올수있다. 독자들도이지점을놓치지말아주었으면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