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종필 Feb 21. 2023

101진수의 『로봇청소기의 김해 마실』(2022)

뿌리가 없는 식물같은 삶이란?


101진수의 [로봇청소기의 김해 마실]은 ‘쓸모’를 이야기하면서 ‘지역’의 흔적을 꺼내 놓는다. 

 

여기서 ‘지역’은 경상남도 김해이고, ‘쓸모’는 이 만화에 등장하는 두 주인공들의 사연과 관련이 있다. 

 

로봇과 주인공은 우연히 버스정류장에서 만나게 되는데, 이들은 서서히 자신의 사연을 풀어놓는다. 그들에게는 어떤 사연이 숨겨져 있을까? 



11쪽.

먼저 텍스트에서 등장하는 ‘로봇청소기’의 사연에 대해 살펴보자. 


우선 전제해야 할 것이 있다. 로봇청소기는 만화에서 인격화된 채 등장하니, 만화의 세계관에서는 충분히 쓸모에 대해서 논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그는 인간처럼 자신의 쓸모에 대해 서술한다. 


로봇청소기는 홀로 사는 할머니 순임과 함께 생활했다. 그의 일은 태생적으로 청소를 도와주는 역할을 부여받았으니 구석구석 방을 청소해주며 순임 할머니를 돕는 것이다. 하지만 열심히 했음에도 그 일을 잘 해내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느끼는 감정이 이럴까. 아무리 잘해 주어도 후회가 남는 그런 감정? 로봇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순임이 할머니는요, 엄청 좋은 사람이에요. 나는 할머니 집에서 3년 살았는데, 할머니는 3년 동안 항상 절 돌봐줬어요. 순임이 할머니는 부스러기를 엄청 흘리고 다니거든요? 그래서 따라다니면서 치우는 게 제 일이었어요. 또 할머니는 깨소금을 정말 좋아하셔서 식사 때마다 항상 주방에 깨소금 가루가 굴러다녔어요. 근데 저는 머리가 나뻐서, 빗자루 밟았다가 걸려서 못 움직이기도 하고, 서랍장 밑에 껴서 못 나오기도 하고,(37~38)


로봇은 참 선하다. 


최선을 다해 할머니를 돕지 못한 것에 대해 미안하다. 최선을 다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를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조금 더 노력했으면 좋았을 거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런 미안함을 느끼는 이유가 무엇일까.



55쪽.


할머니는 어느 날부터 몸이 몹시 아프기 시작했다. 이런 사정으로 오랜만에 찾아온 순임의 가족은 할머니를 돌보기로 결정했다. 즉, 할머니와 함께 살기 위해 이사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하지만 이사하는 과정에서 순임 할머니는 로봇청소기를 챙기지 못했다. 아마도 몸이 많이 아파서 미처 챙기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로봇청소기 입장에서는 섭섭함과 미안함 감정이 동시에 든다. 순임 할머니 곁에 있을 때 조금이라도 더 잘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배경에는 이런 사연이 숨겨져 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이제는 홀로 남게 되고 자신의 ‘쓸모’에 대해 다시 고민하게 된다. 


다행히 이사하기 전 순임 할머니가 청소 로봇을 간절히 찾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로봇은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는다. 무엇보다도 옆집 할머니에게 로봇청소기를 찾으면 챙겨달라는 부탁을 하게 되는데, 실제로 옆집 할머니가 청소로봇과 다시 만나게 되니 로봇의 쓸모는 연장된다. 


그렇다면 주인공의 사연은 어떠한가. 주인공은 홀로 서 있던 청소로봇과 김해의 여러 장소를 함께 돌아다닌다. 갈 곳이 없어 홀로 남겨진 로봇청소기 옆에 있어 주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수로왕의 부인이었던 허황후의 무덤인 ‘허황후릉’, 김해박물관, 김해에 유명한 음식 뒷고기, 연지공원 등이 그곳이다. 주인공은 로봇과 함께 김해에 있는 여러 장소를 방문한다. 자연스럽게 이 과정에서 지역의 표정은 드러난다. 


주인공의 사연을 이야기한 장면이 흥미롭다. 유목민의 삶을 이야기하는 구절이 있는데, 이 만화에서는 유목민의 삶을 프리랜서로 명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뿌리가 없는 식물처럼, 땅에 붙어있지 않고 흘러다니면서 흐느적흐느적 살아가는 경우들이 있다고요. 그런 사람들은 자의 반, 타의 반 정처없이 이곳저곳을 떠돌게 되는데, 뿌리가 어디 달라붙을 만큼 야무지게 자라지 않은 사람이어서 그럴 때도 있고, 아예 뿌리가 잘려나가서 없는 경우도 있어요. 어디 붙박이질 않으니까 금방금방 자리에서 밀려나 미련도 없이 다른 삶을 찾아 떠나야 할 때도 있고요. 사람들이 그런 삶을 보고 정상이 아니라고 여겨요. 쉬운 삶도 아니니까, 방황하는 사람들도 이게 아닌 것 같단 생각이 자꾸 들고요. 외롭거나 지쳐서 그만두고 싶을 때도 많아요. 그런데 그런 삶에도 사는 방법이 다 있어요. 물 위에 떠다니면서 살기도 하고, 나무나 벽에 붙어서 자라기도 하고……어떤 식물들은 바람이 미는 대로 굴러다니기도 한 대요. 웃기죠? 그렇게들 살아요. 사람들도요.(45~48)


주인공은 이런 말을 로봇에게 하면서 버려진(?) 로봇에게 위로의 말을 건넨다. 


무엇보다 다행인 것은 이사하기 전 로봇을 찾으면 잘 보관해 달라는 할머니의 부탁이 현실에서 이뤄짐에 따라 로봇의 쓸모는 지속된다. 이 만화는 그렇게 흘러간다. 한마디로 해피앤딩이다.



68쪽.


버려진 로봇과 세상의 쓸모를 찾는 주인공의 삶이 오묘하게 겹쳐지는 것이 흥미롭다. 


다만 아쉬운 것은 만화가 너무 짧다는 것. 


하지만 지역의 사생활 시리즈 기획이 이러하니 어찌하겠는가. 


아무튼 만화가 101진수는 김해를 이런 방식으로 소개한다. 


그가 이야기한 “그런 사람들”에게 힘을 보태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하루 정도 결석해도 딱히 인생에 큰 지장이 없다는 것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