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히 기록하지 못할 바에는 아예 기록을 안 해버린 여행
9박 12일의 이탈리아 여행을 지난 11월 말에 다녀왔다. 로마 in 해서 4박 하고 이딸로 기차 타고 피렌체 가서 3박 하고 다시 이딸로 기차 타고 밀라노에서 2박 후 out 하는 일정이었다.
자유여행이어서 출발 6개월부터 열심히 정보를 찾고 공부하고 비행기표와 호텔을 미리 예약했다.
유럽여행은 특히 이탈리아 여행은 사전 정보와 사전예약이 필수인 곳이 많았다. 콜로세움만 해도 입장권이 한 달 전, 특정 시간에 오픈돼서 한 달 후 내가 원하는 입장시간의 티켓을 예약해야 했다. 물론 내가 원하는 옵션의 티켓은 오픈되자마자 1초 안에 매진되고 말았다. 그래도 차선의 옵션으로 입장권을 예약할 수 있었다.
미리미리 미술관도 예약했지만 모든 걸 미리 다 예약할 수는 없어서 여행 중에 아들과 남편이 유튜브를 보며 침대에서 쉴 때 나는 로마에서 피렌체의 식당을 예약하거나 피렌체에서 밀라노 성당을 예약하거나 밀라노에서 공항 가는 버스티켓 등을 예약하며 여행을 하는 동시에 가이드로서의 임무도 짬짬이 이어갔다.
나도 처음인데 내가 가이드하는 이탈리아 여행이라니. 나 원 참…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너무너무 좋았다. 어느 정도로 좋았냐면 소위 사람들이 말하는 ‘이제 여한이 없다 ‘ 는 문장이 내 입에서 튀어나왔을 정도로 좋았다.
로마는 도시 자체가 유적지이다 보니 걷는 골목골목 사이에 불쑥 유적지가 나타났다. 지하철 공사를 하려다가 발견된 유적지 때문에 공사가 중단된 곳도 많다던데 실제로 내 눈으로 그것을 보니 정말 신기했다. 나는 로마에서 시간여행자가 된 기분이었다. 어느 공간에서는 과거의 그들이 내 옆을 스치고 걸어가는 느낌도 받았다.
이탈리아 여행에서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첫 번째는 음식 두 번째는 숙소였다.
그 둘 다 모두 실패가 없었다. 딱 한 군데. 너무 맛있어서 다음날 다시 가서 같은 메뉴들을 시켰는데 비주얼과 맛이 모두 달라지고 질이 떨어진 음식이 나와서 매우 당황스러웠다. 어쩐지 전날 가득 찬 레스토랑과 웨이팅이 길었던 상황과 달리 식당에 손님들이 없었다. 주방장이 쉬는 날이 분명했다. 안 그러고는 같은 메뉴가 그렇게 다르게 나올 수가 없었다. 두 번 간 그 식당을 빼고는 모든 식당들이 좋았다.
애초에 가보고 싶은 식당들을 미리 다 찾아두었었다. 식당을 한 군데 찾으면 세 곳의 리뷰를 찾아보았다.
1. 트립어드바이저 2. 구글 3. 네이버
그래도 혹시나 싶으면 reddit에서도 어떻게 언급되는지 찾아보았다.
짜다거나 불친절하다고 언급된 곳은 제외시켰다. 그래서 그런지 여행 중 모든 식당들의 음식들이 맛있었다.
밀라노 어느 식당에서…
눈으로 담고 순간을 즐기기로 작정했다 보니 사진기록이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다. 그래도 몇 장이 있으니 이를테면 이런 사진.
아카데미아 미술관에서 만난 다비드 조각상. 오랫동안 전시실을 떠날 수 없었다.
이탈리아 여행의 목적이기도 했던 피렌체의 두오모 성당. 오랜 꿈이었는데 실제로 보니... 좋았지만 생각했던 것과는 좀 달랐다.
반대로 큰 기대 없었던 밀라노 대성당은 이 성당 하나만으로도 밀라노를 방문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판테온이 너무 좋았다. 사진으로 봤을 때부터. 그래서 숙소도 판테온 바로 옆으로 잡았는데 너무 잘한 선택이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쓰는 진짜 이유. 나도 정보를 모을 때 여러 사이트에서 도움을 받았기에 경험으로 알게 된 정보를 공유한다.
1. 기차 : 듣던 대로 연착이 된다. 전광판(?)에 내가 타야 할 기차 맨 오른쪽에 몇 분 지연이라고 지연시간이 나와있지만 그것도 딱히 정확한 것도 아니었다. 타야 할 플랫폼이 몇 번인지는 출발시간이 지나도 뜨지 않았다. 나 혼자 낙오되는 거 아닌가 하는 불안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나라처럼 역무원들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내 주위에 서있던 승객들은 모두 내가 타야 할 기차를 타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기다리다 보니 출발 (departure) 전광판 말고 도착(arrival) 전광판이 눈에 들어왔다. 차라리 도착 전광판을 보면서 내가 탈 기차가 아직 역에 도착했는지 안 했는지 확인하는 편이 나았다. 출발시간이 20분을 넘기니 그제야 전광판에 내가 타야 할 기차의 플랫폼 번호가 떴다.
2. 피렌체에서 밀라노 중앙역 오는 기차: 여행 캐리어들을 두는 공간에 다른 캐리어들이 가득 차 있어서 내 좌석 머리 위에 그 큰 캐리어들을 올려놓았다. 가로로 놓으니 대형 사이즈 캐리어가 올려졌다.
구글맵을 보며 밀라노를 향해 가는 기차 노선을 간간히 보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방심하고 유튜브도 보고 창밖도 보고 간식도 먹으며 마음을 놓고 있다가 밀라노라는 안내방송이 나와서 허겁지겁 내렸다. 머리 위에 캐리어도 내리고 남편은 테이블에 꺼내 놓은 아이패드며 해드폰이며 챙기느라 바빴고 간신히 내려서 보니 밀라노 중앙역이 아니었다. 어쩐지 시골 느낌이 물씬 난다 했다. 서울역에 내려야 하는데 천안이나 대전에 내렸나 그 정도인가 싶었는데 다행히 그 정도는 아니었다. 구글맵을 보니 우리는 메트로가 다니는 기차역에 있었다. 노란색 메트로 3번 comasina 방향의 메트로를 타고 20여분쯤 가니 두오모 성당역도 지나고 숙소가 있는 밀라노 중앙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3. 밀라노 중앙역 치안: 로마, 피렌체는 예술의 도시였다. 밀라노는 대도시. 중앙역엔 확실히 이상해 보이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낮에도 밤에도. 밀라노 공항으로 가는 버스가 중앙역 바로 앞에 있어서 마지막 날 호텔을 밀라노 중앙역으로 잡았는데 다시 간다면 중앙역에 호텔을 잡지는 않을 것 같다.
밀라노에서 처음으로 트램이나 메트로를 타고 다니며 관광을 하다 보니 소매치기들을 만났다. 트램에는 소매치기들이 없었는데 들은 대로 메트로역 특히 두오모 역은 워낙 관광객들이 몰리는 역이다 보니 소매치기들이 있었다. 나를 노린 건지 남편을 노린 건지 전철문이 열리고 우리 가족이 타는 순간 어딘가에 숨어 있던 꼬마 여자애들 네다섯 명이 순식간에 나와 남편 사이를 갈라놓으며 에워쌓았다. 그 순간 감이 와서 재빨리 그들을 밀치고 남편 옆으로 갔다. 그들은 포기하고 전철문이 닫히기 전에 재빨리 내렸다. 남편이 황당한 듯 말했다.
“진짜네. 소매치기들. “
4. 밀라노 중앙역에서 밀라노 말펜사 공항으로 가는 버스: 여러 버스가 있다고 하는데 말펜사 익스프레스가 아닌 오토스트라데일(autostradale)에서 티켓을 살 것을 추천한다. 실은 처음에 말펜사 익스프레스 사이트에서 티켓을 사고 이메일로 티켓을 받았는데 뭔가 이상했다. 예약자들 이름도 없고 버스 출발 시간도 나오지 않고 큐알코드 하나 왔는데 뭔가 불안했다. 예약할 때부터 카드번호도 잘 입력이 안 돼서 힘들었었다. 그 버스회사에서 티켓을 샀다가 가짜 티켓이라고 해서 현장에서 다시 티켓을 구매했다는 리뷰를 읽고 확신이 섰다. 불안한 마음으로 출국날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느니 3명의 티켓값, 30유로를 날리는 걸 아까워하지 말고 마음의 평화와 확신을 돈을 주고 사는 편을 택하기로 했다.
오토스트라데일 사이트에서 예약을 하는데 30분마다 있다는 버스시간이 예약 화면에서는 매시 정각만 보였다.
6시를 누르니 아래처럼 30분 단위 버스 스케줄이 보이고 원하는 시간을 누르면 되는 시스템이었다.
이메일로 티켓이 왔는데 정확히 예약한 사람들 3명의 이름과 버스 출발 시간 그리고 큐알코드가 있었다.
여행의 동행자들인 가족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p인 아들과 만사태평 남편이 알았다면 돈 낭비 말고 믿으라고, 만약 예약이 안된 거면 현장에서 다시 티켓 사면 되지 않겠냐고 할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사람이 많으면 예약한 사람들 우선순위로 버스를 태우고 예약 안 한 사람들은 다음 버스를 타야 하는 것을 알기에 가이드 입장인 나로서는 일 퍼센트의 불상사가 생기는 것을 예방해야 했다. 30유로 날렸지만 남편과 아들이 아무것도 모르고 평화롭게 버스에 타서 부족한 잠을 보충하는 것을 보니 후회 없는 선택이었다는 확신이 들었다.
5. 택스리펀
밀라노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짐을 부쳤다.
글로벌블루 키오스크를 찾아 택스환급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짐 부치는 곳에 키오스크가 있는 줄은 몰랐다. 보안, 세관검색대를 다 지나서 게이트 쪽으로 와서 여유로운 마음으로 세금환급 기계를 찾아보니 기계도 안 보이고 택스 리펀드 오피스도 안보였다. 키오스크로 세금환급을 받을 작정이어서 환급서류와 영수증만 잘 챙기면 되지 구매한 물건을 보여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서 짐부터 부친 것이 실수였다. 글로벌블루에 전화하니 이미 세관을 통과했으면 자신들도 도와줄 방법이 없다고 했다.
성급한 성격에 대해 아들에게 잔소리를 좀 듣고 이내 포기한 남편을 카페에 두고 공항 직원을 찾아갔다. 사정을 설명하니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킨다. 복도 어떤 문 위에 매우 작게 쓰인 custom이라는 글자가 보였다.
세관직원은 내 서류를 본 후 구매한 물건을 보여달라고 했다. 이미 짐으로 부쳤다고 하니 자기한테 구매한 물건도 안보여주고 세금환급 신청을 하냐고 반문한다. 키오스크로 환급신청을 하려고 했다, 키오스크에서는 영수증과 환급 서류만 필요하지 실물은 필요 없지 않으냐고 하니 짜증 난 표정을 짓는다. 서류를 확인하더니 밖에 있는 통에 서류를 넣으라고 알려주었다. 글로벌블루 환급신청을 할 때 내 계좌번호를 입력해 둔 것이 있었다. 5일 안에 환급액이 호주의 내 계좌로 입금되었다.
아들은 말했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우리가 많이 성장했다고. 맞는 말이다. 태국, 발리, 싱가포르, 일본을 자유여행으로 플랜을 짜서 다녔었는데 확실히 유럽, 이탈리아는 자유여행을 하기에 만만한 나라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다른 여행들보다 훨씬 좋았다. 그림, 문화, 역사에 대해 너무 많이 배울 수 있었고 매일매일 우리가 성장하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J이지만 침착한 J가 아니고 우당탕탕 J이다. 그러다 보니 실수도 생긴다.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는 그런 실수가 짜증이나 스트레스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뿌듯함과 경험과 추억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다음에는 패키지를 한번 가고 싶다. 나도 내리라면 내리고 타라면 타고 먹으라면 먹는 그런 여행에 넋놓고 실려가고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