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 시동(始動)
아직 어둠이 남은 새벽이었다. 울산 북쪽의 오래된 아파트 단지에서 강석은 느릿하게 눈을
떴다. 알람이 울리기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하는 건, 버스를 몬 지 15년째인 사람의
습관이었다. 천장의 미세한 진동, 냉장고의 콤프레서가 돌아가는 소리까지도 그는 몸으로
들었다. 그의 아침은 늘 정해진 순서를 따라 흘렀다. 뜨거운 물로 얼굴을 적시며 거울을
본다. 면도 후에는 꼭 손바닥으로 뺨을 한 번 쓸어내린다. “오늘도 무사히.” 그는 말하지
않고 속으로만 중얼거린다. 식탁에는 어젯밤 미리 끓여둔 미역국이 있었다. 국에 김치 한
조각을 얹어 먹으며 그는 버스 운행 시간을 떠올린다. 05시 10분 첫 출차. 그는 시간을
헛되이 쓰지 않는 사람이다. 식사 후 신발을 신기 전, 꼭 창문을 열어 바깥 공기를
들이킨다. 새벽의 공기에는 바다 냄새와 철 냄새가 동시에 묻어 있었다. 버스 기사들은
흔히 “기름 냄새가 피 냄새 같다”고 말한다. 강석에게 그건 단순한 비유가 아니었다.
도시는 그 냄새로 피를 돌린다. 오늘도 그 피가 잘 순환하길, 그는 무언의 기도를 드린다.
차고지는 아직 어둠 속에 있었다.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버스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엔진도 끄고, 불도 끈 채로 있는 그 모습은 마치 잠든 코끼리 무리 같았다. 708번 버스는
줄의 가장 왼쪽에 있었다. 강석은 가까이 다가가며 차체를 한 번 쓰다듬었다. “오늘도
부탁한다.” 그는 버스에 인사를 건넸다. 타이어, 라이트, 사이드미러, 계기판까지 천천히
점검한다. 그의 손끝은 무심한 듯 섬세하다. 차를 확인하는 동안, 멀리서 동료 기사들이
담배를 피우며 잡담을 나눴다. “강 기사님, 오늘도 첫차?” “네, 그게 제 체질이죠.”
“그 나이에 아직 첫차라니 대단하네.” 강석은 웃었다. “도시가 깨어나는 걸 바로
옆에서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그 말에 몇몇이 피식 웃었다. 그는 늘 그렇게 답했다.
누구에게나 일상이지만, 강석에게 이 시간은 도시의 맥박이 가장 또렷하게 들리는
순간이었다. 시동을 걸기 전, 강석은 잠시 눈을 감았다. 그 순간의 공기가 중요했다. 공단
쪽에서 미세하게 피어오르는 열기, 기계들이 숨 쉬기 시작하는 소리. “오늘은 공기가 좀
묵직하네.” 그는 창문을 반쯤 내리고, 천천히 시동을 걸었다. “드르르륵.” 엔진이 두
번에 걸쳐 깨어났다. 그는 시동음 속에서 미세한 차이를 듣는다. 오늘은 평소보다 0.5초
정도 늦게 박동이 왔다. 마치 도시가 잠에서 덜 깬 것처럼. 708번은 강변을 지나
산업단지로 들어가는 노선이다. 울산의 아침은 언제나 공단의 불빛에서 시작된다. 불빛은
해보다 먼저 뜬다. 강석은 매일 그 빛을 본다. 지금 시각 05시 07분. 하늘은 아직
푸르지도, 검지도 않았다. 강석은 차창 너머의 풍경을 바라봤다. 공장 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가 강바람을 타고 길게 흘러가고 있었다. 붉은 경광등이 천천히 깜빡이는
리듬은 도시의 심장박동처럼 규칙적이었다. “708, 이상 무.” 무전기에서 들려오는
관리소의 목소리가 익숙했다. 강석은 간단히 응답했다. “708, 출발합니다.” 그리고
운전대를 천천히 돌리며 차고지를 나섰다. 도로 위에는 트럭 몇 대와 청소차가 있었다.
그들 모두 도시의 첫 움직임을 담당하는 존재들이다. 이 시간대의 도시는 사람보다 기계가
먼저 깨어 있었다. 공단의 불빛, 컨베이어벨트의 금속성 소음, 그리고 공기 중의 진동이
미묘하게 일렁였다. 그는 순간적으로 핸들에 손을 얹은 채 멈칫했다. 운전석 바닥에서
느껴지는 아주 가벼운 떨림. 지진도, 노면의 불량도 아닌, 더 깊은 어딘가에서 오는
진동이었다. 그는 눈썹을 찌푸리며 계기판을 확인했다. 모두 정상. ‘그럼 도로인가?’
하지만 그의 감각은 말하고 있었다. ‘이건 도시의 숨이다.’ 첫 정류장은 강변 아파트
단지 앞이었다. 늘 보던 사람들이었다. 조깅을 마친 중년 남자, 시청 구내식당으로
출근하는 여성, 야간 근무를 마치고 돌아가는 청년. “아침입니다.” 그가 인사하자,
남자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오늘은 공기가 좀 눅눅하네요.” 강석은 짧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도 곧 맑아질 겁니다.” 그는 대화 길이를 승객에 맞췄다. 말수가 적은
사람에게는 한마디만, 말이 많은 사람에게는 웃음으로 답했다. 그건 오랜 경험에서 나온,
일종의 ‘온도 조절’이었다. 버스가 태화강 다리를 건너며 강석은 창밖을 흘깃 봤다. 물
위로 안개가 희미하게 깔려 있었고, 그 사이로 새 한 마리가 낮게 스쳤다. 새벽의 울산은
공장과 바다와 산이 동시에 존재하는 도시였다. 그 모든 것이 오늘도 일정한 리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 리듬을 강석은 운전대 너머로 느꼈다. 성남동 교차로에 다다랐을
때였다. 평소라면 신호가 바뀌는 순간, 반대편 차량이 빠르게 움직였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파란불이 켜지고도 반대편 차들이 1초 정도 늦게 출발했다. 도로 전체가
잠시 숨을 멈춘 듯한 정적. 그 1초 동안, 강석은 몸으로 ‘이상함’을 느꼈다. 버스 바닥이
미세하게 떨렸다. 노면과 타이어가 어긋나는 느낌. 그는 라디오를 잠시 껐다. “도시가
피곤하네…” 그가 낮게 중얼거렸다. 그의 오른손이 무의식적으로 운행기록장을 폈다.
05:32 – 성남동 교차로 신호 0.7초 지연. 버스 진동, 도로와 불일치. 공기, 차갑고
눅눅함. 그는 펜을 내려놓고 잠시 눈을 감았다. 어쩌면 이건 단순한 도로 문제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오늘의 떨림은 도시 전체의 리듬이 어긋난
결과라는 걸. 라디오에서 울산대교 제어센터의 짧은 뉴스가 흘러나왔다. “…오늘 새벽,
북단 신호 전송이 일시적으로 지연되었습니다…” 강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이게 그거였군.” 그는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햇빛이 서서히 도로를 비추기 시작했다.
버스 유리창을 타고 들어온 빛이 계기판 위로 번졌다. 그 순간, 강석은 느꼈다. 버스와
도시와 자신이, 아주 얇은 막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완벽한 교통은 없다. 완벽한
연결만이 있을 뿐.” 그는 마음속으로 그 문장을 조용히 새겼다. 그리고 버스는 다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