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 빈 Sohnbin Oct 25. 2022

럭셔리 이야기

샤넬의 첫 부띡(한국,그리고 갤러리아)

2017년 샤넬의 국내 최고 VIP의 연간 구매액은 45억 원이었다. 대략 그 언지리의 두 사람이 파리에서 개최된 컬렉션 쇼에 초대받았는데 1등석 비행기에 다이애나 황태자비가 마지막으로 묵은 방돔 광장의 리츠호텔에서  환대를 받았다. 물론 지금은 훨씬 더 개별 구매 실적이 늘어났을 것이다.

국내에 처음 소개한 갤러리아백화점의 점이 1997년 봄이었으니 20년 동안 급격히 성장했고 모든 소비자가 선망하는 브랜드로 자리 잡았으며 우월적인 위치에서 국내 소비자들을 좌지우지해왔다. 지금도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핸드백 제품을 필두로 우리나라에서만 수시로 더 높은 가격을 붙이는 일이 다반사다. 결국 줄 세우기와 오픈런 상황을 만드는 슬픈 현실을 뉴스에서 다룰 정도고 리세일 가격이 정상품보다 높은 경우도 있다니 정상이 아니다. 보고 있다. 그만한 사랑을 받고 있음에도 그들의 기업행태는 국내에서 사회공헌에 기여한 일은 전무하다시피 하고 기부한 일도 거의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더구나 유한회사의 형태를 유지해 기업 매출이나 이익 등 여타 기업 정보를 한동안 비공개해 왔다.    

1995년부터 시작한 샤넬 부틱 입점을 위한 협의는 1년 반 동안 지루하게 때로 치열하게 진행됐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 샤넬 회장을 맡은 Mr.Vogel은 60대의 노회한 책략가라 하겠다.

유태인의 상술에 대해 익히 들어오던 바지만 그의 전략은 치밀하고 다소 야비한 면도 있었다.

당시 갤러리아는 해외 럭셔리의 메카로 자리매김 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유럽식 외관을 갖춘 명품 이미지 건물을 준비하고 있었고 다른 유통업체를 앞서는 hi-end 전문점을 만들어가는 도정이었다. 당시  명품관 점장을 맡아 책입자로 명품관 체 MD와 zoning 계획을 세우고 merchandising을 직접 진행하며 많은 어려움에 봉착했다.

대표를 비롯 럭셔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회사의 경영진을 이해시키는 노력을 해야 하는 한편 샤넬 측과 협상을 하는 이중고에 놓여있었다.

하나 추가하면 삼중고로는 이웃한 백화점과 여타 유수의 백화점들과 잠재적 유치 경쟁에 있었으니 사면초가에 놓인 장수의 처지였다.

최초의 명품관을 만든다는 자부심으로 고군분투하는 심정으로 샤넬 측을 설득해서 최종 의사결정을 앞두고 대표이사와 마주하는 자리를 만들고 마무리하고자 하는데 이런 조건으로 해야 하냐고 손을 놓을 때는 다시 아득한 출발선이 되고 마는 도돌이표의 연속이었다.

최종 합의 사인의 순간 샤넬은 일어서서 모든 협상을 거두고 철수하겠다는 선언을 하고, 1년여를 협의해온 나로서는 허탈한 순간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 계약 조건은 나름 만족할만한 상태였는데 대표이사의 유통업 경험이 부족한 상황과 맞물려있었다.

걸핏하면 인근 백화점으로 갈 수 있다고 저울질 겸 유리한 국면을 만들려는 샤넬이 맘 편하지만은 않았으나 이미 루이뷔통을 최초 유치하는 결실을 거둔 상태라 미완의 모습을 만드는 것은 매우 아쉬운 일이었다.

비행 중인 샤넬 측 수뇌를 행해 메일을 보내고, 출장 중인 대표이사에게 재고해야 할 당위성을 일깨우고 이래저래 고단한 시기였다.

누구나 자기 방어기제가 있으므로 자신의 지식 범위에 있지 않은 사실은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열린 마음으로 지식의 범위를 넓혀가며 이해하는 사람이 흔치 않으니 최대한 상대의 이해 범위 안에서 조금씩 확장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근대에 신지식인이 목적으로 봉건시대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대중을 일깨우려 할 때 얼마나 어려움이 많았을지 짐작하는 심정이 되곤 했다.

당시 협상 파트너 Mr.Vogel 회장은 수차례 협의를 진두지휘하고 중요한 국면에는 직접 협상에 임했으며 매 회 이어지는 협의 내용을 메모해서 다음 협상 때 기본으로 삼고 추가 조건을 내세워 유리하게 이끌고자 하던 일이 숨차게 했다. 협상 과정의 대화 하나하나를 국면마다 활용하던 태도는 이후 후배들 교육 때 늘 강조하는 포인트가 되었다. 대기업에서 협상의 기술 교육이 자주 이뤄지긴 하지만 현장에서 노회한 유태계 오너쉽이 있는 경영자에게서 확실히 배운 셈이다. 우리는 늘 윈윈 전략을 말한다. 한쪽의 절대 승리는 성립할 수 없는 일이다. 국가 간의 FTA 협상, 특히 한미간의 협상은 초기 국내 여론이 부정적이었다가 이후 우리나라가 더 유리한 결과가 나오니 트럼프 시대 재협상을 요구한 사례도 있었던 것처럼 꾸준한 협상은 사인후부터 다시 시작한다고 봐야 하며 긴장을 놓을 수 없다.

당시의 꼼꼼한 메모와 샤넬 측의 마진 제안 등 각종 기록과 계약서를 종종 들여다보며 메모의 중요성과 회의 결과의 공유하는 절차의 중요성을 다시금 떠올린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