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너희를 하나하나 기록하고 싶어
육아에는 여러 형태의 기록이 있다. 여기에 내가 검색해서 결론 내린 가장 좋고, 동시에 별거 아닌, 대표적인 두 개의 아이템이 있다. 바로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대표하는 원탑. 먹놀잠 패턴을 적을 수 있는 수유노트와 그것을 한눈에 보기 쉽게 어플로 만든 베이비타임이다. 인스타나 블로그에 보기 좋게 아이들의 패턴을 모아 올린 사진과 성장일기를 보면 나도 이렇게 예쁘게 기록해서 남기고 싶은 욕망이 끓어오른다. 아기브이로그는 또 어떤가. 아기 얼굴 공개라는 심각한 문제를 차치하고 생각해 보자. 육아예능을 보면 '아 나도 우리 아기의 사랑스럽고 소중한 순간을 누가 남겨주면 얼마나 좋을까'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한 적이 있지 않을까? 그것을 스스로 하는 거지. 얼마나 의미 있고 생산적인 일인가.
육아 일기 같은 기록이 아니어도 아이를 키우려면 기록이 필요하다. 아기가 언제 얼마나 먹고 언제 자는지를 알아야 하고 기억력이 무에 가까운 산모는 기록이 있어야 ‘기억’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다면 공동 양육자와 그 정보도 공유를 해야 하기 때문에 이쯤 되면 기록은 선택사항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아이를 낳을 때쯤 된 예비 엄마는 급하게 주변에 ‘뭐가 좋아?’ 물어보고 각각의 플랫폼에 검색도 한다. 나 역시 유튜브에 비교 영상을 찾아보기도 하고, 블로그를 뒤져보기도 하고, 날 것의 정보가 많은 육아카페에서 질문과 댓글을 살펴보기도 했다. 아기 어플 추천, 육아 기록, 수유일지, 등등 생각나는 대로 검색창에 쳐본다. 사실 기록 이게 뭐라고.. 그냥 이면지나 리걸패드에 끄적여도 될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나는 정신없던 신생아 때는 그렇게 했다. 한 아이를 니큐에 보내고 몸을 전혀 회복하지 못 한 채 둥이육아를 시작한 나에게 그럴싸한 기록은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둥이는 현실적인 장벽이 좀 더 높다. 단순한 조작으로 되어있는 어플을 쓰려고 해도 '진짜 기록'으로 가기까지는 몇 겹의 행위가 추가되어야 된다. 나의 경우에도 막상 아기가 태어나자 베이비타임 어플을 켜고 ‘아이 별’로 페이지를 왔다 갔다 기록할 정신이 없었다. 물론 정신을 차릴 때 (한차례의 아기들 돌봄 사이클이 지나고 아기가 잠든 후 내가 먼저 기절하지 않는다면) 기록을 시도하기는 했다. 베이비타임이 만들어주는 예쁜 그래프를 갖고 싶었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군데군데 비어있는 물 웅덩이 같은 그래프를 갖게 되었다. 어찌 되었든 이런 작은 것조차 제대로 된 것으로 하고 싶다는 엄마의 열망이 반영된 것이리라. 결론은? 역시 아날로그가 최고다. 육아 시작과 함께 나에게 핸드폰은 그저 카메라와 검색용으로 사용되었다.
후둥이가 니큐에서 무사 출소하고 우리 네 가족은 새해에 조리원에 입소했다. 제대로 된 수유일지는 조리원에서 출소하며 받은 용지가 첫 시작이었다. 조리원에서 나오고부터는 산후도우미 생활을 한 달 반 동안 했는데, 아이도 둘, 산후도우미도 두 분이라 기록 공유가 필요했기에 결국 종이에 쓰게 되었다. 급하게 조리원에서 준 수유일지를 복사해서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동안 쓰다가 이모님 추천으로 쿠팡에서 비슷한 양식의 깔끔하고 예쁜 노트를 하나 사게 되었다. 아기의 컨디션을 적고 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모님과 공유하고, 작은 소중한 기억할 만한 일들은 육아노트 끄트머리에 적었다. 육아 일기를 쓰고 싶었지만 수유일지 구석에 적는 게 최선이었다. 아직 그 정도의 여유는 허락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베이비타임은 필요했다. 출산 전에 주변에 물어보면 백이면 백 다 베이비타임을 추천했다. 역시.. 1등 어플은 다 이유가 있었다. 베이비타임은 오로지 나를 위한 기록이었다. 둥이였기 때문에 나는 필히 수면, 수유시간, 수유량 패턴을 잡아야 했다. 어플은 내가 계산하지 않아도 입력만으로 총수유량을 한눈에 보여주기 때문에 편했다. 도우미 분들이 오시면 쉬는 시간을 쪼개 어플에 옮겨 기록했다. 그렇게 패턴이 정착되는 100일 무렵까지 잘 사용했다. 이후 풀타임 이모님 생활이 끝나게 되면서 더 여유가 없어진 나는 베이비타임은 거의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대신 그동안 몇 권의 수유일지를 재주문해서 사용했다. 그러다 아이들이 좀 더 크고 수유량 수유시간을 매번 적는 게 의미 없어진 순간이 왔다. 차라리 육아일기를 쓰는 게 어떨까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하루 몇 문장씩 적을 수 있는 ‘10년 메모’라는 다이어리가 눈에 들어왔다. 어차피 장문의 글을 쓸 여력은 없었기에 이런 나에게 딱이었다. 나중에 한눈에 보기에도 좋았다. (둥이맘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백일의 기적이 온 어느 날 나와 아이에게 주는 선물로 야심 차게 10년 메모를 주문했다. 아이들에게 편지처럼 하루하루 내가 느끼고 보는 경이로운 순간들을 적어줘야지 다짐했다.
그리고 몇 개월 후 포장도 뜯지 않은 10년 메모를 바라보며 나는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렇다. 앞서 말한 것처럼 기다렸던 '백일의 기적'은 오지 않았다. 오히려 그 무렵부터 몰아치기 시작한 다양한 이벤트 때문에 고상하게 매일 새벽 다이어리를 꺼내 적고 있을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없었다. 아이들을 재우고 차분하게 앉아 하루를 돌아볼 체력 또한 없었다. 신체적 고통과 물리적인 한계, 매일매일 생기는 사건들, 돌림노래처럼 번갈아 돌아오는 둥이 육아의 세계는 생각보다 혹독했다. 그렇게 우당탕탕 현실육아에 치여 다시 몇 개월을 달려왔다. 그리고 지금, 여전히 새 책인 채로 있는 다이어리를 마주한다. 돌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 그래도 사놔서 다행이지? 이제 진짜 펼쳐야겠다. 더 늦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