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어리숙한 이방인의 생존 패션
혹시 당신은 오늘 아침 출근할 때 속옷을 바깥에 입고 출근할 용기가 있는가? 만약 없다면, 당신은 아직 슈퍼맨이 아니다. 우리가 ‘슈퍼맨’ 하면 떠올리는 트레이드마크는 가슴의 S자 마크도, 휘날리는 빨간 망토도 아니다.
누가 뭐래도 쨍한 빨간색 팬티다.
이 재미있는 패션에는 나름의 역사적 콘텍스트가 있다. 1930년대 강력한 남성성의 전형이었던 서커스 차력사(Strongman)의 복장을 이식해 온 것으로, 조악한 인쇄 기술 속에서 상·하체를 시각적으로 분리하기 위한 디자인적 고육지책이었다. 어쩌면 외계에서 온 이민자에게는 이 패션이 고향 크립톤의 고결한 예복이었을지도 모른다.
여기에는 전체와 부분의 논리가 있다. 철학적으로 전체는 단순히 부분들의 산술적 합계가 아니다. 부분들이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개별 요소에는 존재하지 않은 새로운 차원의 의미를 창출할 때 비로소 전체성은 완성된다. 우리는 흔히 영화 속 슈퍼맨이 보여주는 화려한 초능력과 권선징악의 서사가 영웅의 전부라고 믿지만, 그것은 시각적으로 돌출된 일부분일 뿐이다.
슈퍼맨의 화려한 패션과 승리의 쾌감에만 매몰된다면, 진짜 중요한 점을 놓친 것이다.
영웅은 본질적으로 결함이다.
이 조각을 맞춰 보아야 영웅의 진면목이 보인다.
슈퍼맨의 본질은 스트롱(Strong)이 아닌 험블(Humble)이다. 그가 슈퍼맨다운 순간은 완벽할 때가 아니다. 빨간 팬티를 입고 어색하게 서 있을 때, 혹은 클라크 켄트라는 이름으로 안경을 쓰고 군중 속에서 우왕좌왕할 때, 그는 비로소 우리 곁의 영웅이 된다.
그는 구부정한 자세를 유지하고 일부러 큰 양복을 입어 어리버리하게 보인다. 소심한 목소리와 어수룩한 몸짓, 의도적인 실수들은 완벽한 슈퍼맨으로부터 시선을 돌리는 가장 강력한 방어기제다.
클라크 켄트의 일상은 주변에 흔히 있을 법한, 별로 딱히 존재감 없는 남자의 모습이다.
사실 슈퍼맨은 크립톤 행성에서 지구라는 낯선 곳으로 떠밀려온 ‘도시로 온 이민자’다. 고향의 예복이 이곳에선 조롱 섞인 속옷 노출이 되어버리는 문화적 이질성이 있다.
거대한 메트로폴리스에서 이방인이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방식은 역설적이게도 자신의 완벽함을 가리는 허점을 노출시키는 것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영웅에게는 하마르티아(Hamartia), 즉 비극적 결함이 있음을 짚어냈다.
햄릿의 우유부단함, 불사의 몸을 가진 아킬레우스의 발뒤꿈치처럼, 영웅을 영웅답게 만드는 장점은 특정 상황에서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다. 오이디푸스의 비극은 그가 무능해서가 아니라, 너무나 유능했기에 시작되었다. 지략을 삼킨 오만함, 지적 오만(Hubris)이 결국 오이디푸스 파멸로 이끄는 치명적인 급소가 된다.
슈퍼맨에게 빨간 팬티는 일종의 시각적 하마르티아다. 신과 다름없는 능력을 갖춘 그가 스스로를 우스꽝스럽게 만듦으로써 지상으로 내려오는 장치다.
허점이 없는 영웅은 숭배의 대상일 뿐이지만,
결함이 있는 영웅은 철학적 공간을 만들어 낸다.
핵심은 약점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영웅이 된 것이 아니라, 약점을 ‘통해’ 영웅성이 완성된다는 것이다.
결국 영웅의 서사는 신이 되려는 오만을 꺾고 자신의 하마르티아를 한 겹 벗겨보는 인간되기의 과정에서 완성된다. 영웅의 여정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영웅은 괴물을 무찌르러 가는 게 아니라 자신의 그림자와 마주하러 간다.
그러니 당신도 오늘 누군가에게 비웃음을 샀다면 너무 낙담하지 마시라.
어쩌면 당신은 그저 지구라는 행성에 너무 일찍 도착해,
아직은 낯설기만 한 당신만의 빨간 팬티를
남들보다 조금 빨리 드러냈을 뿐이다.
#1화: 슈퍼맨의 빨간 팬티, 도시로 온 이민자 - 어느 이방인의 어리숙한 생존 패션(2월 14일 토, 연재완료)
#2화: 원더우먼의 뷔스티에_ 속옷인가? 갑옷인가?(2월 21일 토 오전 8시, 연재 예정)
#3화: 헐크의 보라색 바지_ 포기 못한 자존심(2월 28일 토 오전 8시, 연제 예정)
#4화: 아이언맨의 쫄쫄이_ 영웅마저 외주화(3월 27일 토, 시리즈 마지막 회, 연제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