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박스가 이긴 날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진실이 있다. 고양이는 비싼 것에 감동받지 않는다는 것.
르노와르가 처음 집에 왔던 날, 잔뜩 흥분한 집사는 인터넷 쇼핑을 했다. 수제 원목 밥그릇 받침대, 유기농 면 소재의 쿠션. 총금액은 차마 여기 적지 않겠다.
이태리 브랜드의 캣타워—나무 프레임에 패브릭 마감, 미니멀한 디자인으로 '인테리어를 해치지 않는' 고양이 가구라는 설명이 집사의 마음에 들었다.
생각해 보면 이상한 말이다.
고양이를 위한 가구인데,
고양이가 아니라 인테리어를 먼저 걱정하고 있으니.
집사는 르노와르의 만족을 사고 싶었던 것인지,
아니면 르노와르를 들인 뒤에도 흐트러지지 않는
자신의 취향을 사고 싶었던 것인지.
집사에게 미니멀은 덜어냄이 아니라 합리화다.
욕망을 숨기는 가장 세련된 방법은, 욕망을 절제처럼 포장하는 것이다.
르노와르의 반응은 냉정했다. 캣타워는 한 번 올라가 보고는 더 이상 관심을 주지 않았다. 원목 밥그릇 받침대는 그 옆을 지나칠 때마다 무심하게 스쳐 지나갔다. 유기농 쿠션은 지금 집사가 쓰고 있다.
봄이 왔다. 집사는 노트를 펼쳤다. 정확히는 새로 산 A5 사이즈 도트 노트였는데, 그것 자체가 이미 새 출발의 상징이었다.
거기에 적었다. '3월 셋째 주: 서재 재정비.' 밑줄까지 그었다. 형광펜도 칠했다. 완벽했다. 계획은 단순하고 아름다웠다.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정수라 불리는 '덜어냄의 철학'을 실천하는 것. 쓰지 않는 물건은 버리고, 남은 것들은 제자리에, 눈에 띄는 것은 최소한으로, 공간에는 여백을.
유튜브에서 미니멀리스트 인테리어 영상을 예닐곱 개쯤 보았고, 핀터레스트 보드를 만들었으며, 심지어 '정리의 여왕' 곤도 마리에의 책을 책장에서 꺼내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꺼내 두었다는 것이 포인트다.
읽지는 않았다.
어쩌면 그것으로 충분했인지도 모른다.
책을 읽는다는 것과 책을 곁에 둔다는 것은
엄연히 다른 행위이지만,
인간은 종종 후자에서 전자의 위안을 찾는다.
서가를 가득 채운 책들 중 절반쯤은 그런 식으로 존재한다.
읽혔다기보다는, 소유되었다고 해야 할 것들. 움베르토 에코는 그런 책들을 '안티라이브러리'라고 불렀다. 아직 읽지 않은 책들이야말로 진짜 도서관이라고. 그러니 정리의 신 곤도 마리에의 책은 제 역할을 다하고 있었던 셈이다. 펼쳐지지 않은 채로.
그래도 의지는 충만했다. 문제는 이틀 전에 도착한 택배 상자였다. 상자 안에 들어 있던 물건—아마도 주방용품이었던 것 같은데, 솔직히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을 꺼낸 뒤, 상자를 아직 버리지 못하고 거실 한켠에 두었던 것이 문제였다.
'나중에 버려야지' 하고 생각한 그 찰나, 세상에서 가장 결정적인 순간들이 그렇듯, 타이밍이 어긋났다.
르노와르가 들어갔다. 코리안 숏헤어, 세 살, 성격은 도도하되 호기심은 왕성한 르노와르가, 지금 이 순간, 갈색 골판지 박스 안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 집사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눈빛은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이건 내 거야." 집사는 잠시 르노와르를 바라보았다. 르노와르도 집사를 바라보았다. 둘은 한동안 그렇게 서로를 보았다. 집사는 노트를 다시 펼쳐 적었다. '박스 버리기: 보류.'
르노와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들의 목록은 이렇다.
배송 왔을 때 구겨진 포장지. 서랍 속 영수증들.
세탁소에서 옷을 씌워 돌아온 비닐봉지. 그리고 물론, 택배 박스.
처음에는 이것이 단순한 변덕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고양이란 원래 그런 동물이 아닌가. 예측 불가하고, 일관성 없고, 비합리적인.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어쩌면 르노와르 쪽이 더 본질에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
이탈리아산 캣타워는 아름다웠다. 그러나 그것은 처음부터 '바라보는 것'이었다. 올라가야 한다는 것을 르노와르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앎은 르노와르의 필요에서 온 것이 아니라, 집사의 기대에서 온 것이었다. 캣타워는 르노와르의 공간이 아니라 집사의 인테리어였다.
반면 택배 박스는 달랐다. 설명이 필요 없었다. 올라가야 하는 이유도, 좋아해야 하는 이유도,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한 매뉴얼도 없었다. 그냥 거기 있었고, 르노와르는 그냥 들어갔다. 완벽하게 몸에 맞았고, 아늑했고, 자신의 것이 되었다.
사물의 가치란 어쩌면 그런 식으로 결정되는 것일지 모른다. 그것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가 아니라, 그것이 나에게 실제로 무엇이 되는지.
인간은 오랫동안 사물에 이름을 붙이고 등급을 매기고 가격표를 달아왔다. 하지만 그 사물을 진짜 자기 것으로 만드는 순간은 언제나 더 조용하고 더 우연한 방식으로 찾아온다.
르노와르가 박스 안으로 걸어 들어간 순간처럼. 그 어떤 브랜드 철학도, 디자이너의 의도도 개입하지 않은 그 순간 비로소 공간은 공간이 되었다.
결국 박스는 버려지지 않았다. 가장자리를 약간 정리하고, 안에 르노와르가 좋아하는 낡은 티셔츠를 깔아주었다. 거실 한켠, 집사가 애지중지하는 월넛 사이드 테이블 옆에, 갈색 골판지 박스가 자리를 잡았다.
르노와르는 지금 그 안에서 자고 있다. 앞발을 가지런히 모으고, 눈을 가늘게 뜬 채로, 어쩌면 꿈을 꾸고 있을지도 모른다. 더 큰 박스가 나오는 꿈을. 집사는 노트에 마지막으로 한 줄을 추가했다.
미니멀리즘은 다음 기회에 하는 걸로...
"이 내용을 귀여운 르노와르의 사진이 담긴 카드뉴스로도 만나보세요! [인스타그램 @beyond.juri_]"
연결할 주소: https://www.instagram.com/beyond.juri_
#1화_ 이태리 가구보다 골판지 한 칸- 택배 박스가 이긴 날(2월 25일, 연재 완료)
#2화_ 책장의 질서와 꼬리의 무질서- 플라톤보다 무거운 고양이(3월 4일, 연재 예정)
#3화_ 고양이는 시계를 보지 않는다- 오전 11시, 사막의 시간(3월 11일, 연재 예정)
#4화_ 낙서와 고양이의 사인(Sign)- 벽지에 남긴 명품 로고(3월 18일, 연재 예정)
#에필로그_ 꼬리가 기록한 선형적 무질서(3월 25일, 연재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