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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체대생 Jan 22. 2024

잊을 수 없는 1년. 그 시작

3화. 독학재수 이야기 (1)

야구를 그만두고 나니까 앞길이 막막했다.


앞으로 뭘 하고 살아야 할지,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동안 야구 이외의 세상은 아무것도 몰랐던 나였기에.

나는 위 질문들에 대해 아무런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일단, 어떻게 해서든지 대학을 가야 할 것 같았다.


명문 대학의 간판 학과보다는, 우선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을 찾아 훗날 나처럼 오랜 기간 해온 운동을 그만두고 똑같은 고민을 하게 될 많은 후배 선수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어주고 싶었다.

운동을 그만두더라도 이렇게 할 수 있다고.

운동이 아니더라도 너희들이 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는 길은 이렇게 다양하다고. 전해주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공부를 해야 했고, 수능을 봐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내가 고를 수 있는 재수의 선택지는 네 가지였다.

1번. 먹여주고 재워주고 공부시켜 주는 기숙학원에 내 몸을 맡긴다.

2번. 대부분 재수생들처럼 재수종합학원을 다니면서 공부한다.

3번. 나의 페이스로 공부하면서 어느 정도 관리를 시켜주는 독학재수학원을 다녀본다.

4번. 처음부터 끝까지 집 앞 도서관에서 독학한다.



이상하게 학원은 다닐 자신이 없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그 힘든 지옥철을 뚫고 다녀서인지,

학원가로 이름 있는 대치동이나 목동까지는 그리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1년 동안 공부를 한다고 통학하면서 다니고 싶지는 않았다.

학원까지 다니는 그 조금의 시간도 아깝다고 느껴졌고, 부모님에게 다시 금전적으로 부담을 드리고 싶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나는 직접 계획을 짜고, 나의 페이스에 맞춰서 스스로 부족한 것을 처음부터 채워 나가는 과정을 경험해보고 싶었다. 그래야만 더 보람을 느낄 것 같았고 후회하지 않을 1년을 보낼 것만 같았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집 앞 공립도서관에서 하는 독학재수였다.


집 앞 도서관의 문이 열리면 나의 하루도 시작되었다.


매일 아침 7시부터 저녁 10시까지 집 앞에 있는 공립도서관, 가끔 집중이 되지 않는 날에는 스터디 카페 정도만을 오가며 공부에만 매진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관리를 해주는 사람이 따로 없다는 독학재수의 특성상.

내가 나 스스로에게 가장 엄격한 관리자가 되어야 했다.

그래서 스터디 플래너도 하나 샀다.

매일 강의 듣는 시간부터 그날그날 과목별로 진도 나갈 책 페이지까지 상세하게 기록하고,

플래너에 각 과목별로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 어느 부분 강의를 더 찾아들어야 하는지 고민하는 말 그대로 수업시간에서만 듣던 이상적인 "자기주도학습"의 1년을 목표했다.


밥 먹는 시간과 식사 후 몰려오는 피곤함이 두려워 하루 한 끼이상 먹을 수도 없었다.


불필요한 SNS는 정리했다.

대학에 가거나 프로를 간 친구, 선배들의 소식을 들으면, 공허한 마음을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최소한의 인간관계만 남겨두고 모든 연락을 정리했다.


그렇게 정말 독하게 마음먹은 채로,

내 인생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1년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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