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 굴러들어 온 야구
어느덧 n연차의 회사생활에 접어들었다.
바닥에 떨어지지도 못하면서 늘 자유를 갈망하는 모순된 나에겐 회사생활은 쉽지 않았다.
머릿속에 물음표가 가득하던 일상은 빠른 포기와 순응으로 바뀌었고 그저 무탈한 하루가 되길 바라는 나날이 되었다. 회사에서 이제 진땀 날 일의 빈도는 많이 줄었지만 그만큼 삶의 무료함은 더 강하게 밀려들어왔다. 언제쯤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내 하루를 채울 수 있을까. 언제쯤 이곳을 벗어나 내 의지와 선택으로 하루를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은 너무 멀게만 느껴졌다. 원하는 현실과 닥친 현실의 괴리 속에 마음속이 말라갈 때쯤 야구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날 때부터 롯데자이언츠로 임명받고 태어났기에 지지하는 응원팀이 바뀐 적은 없지만 꾸준하게 응원하는 골수팬은 아니었다. 아빠랑 오빠가 골수팬이라 둘이서 야구 틀어놓을 때 같이 보는 정도였다. 직관도 그 유명한 롯데의 로이스터시즌일 때 한번 정도 가본 게 다였다. 그런 나에게 야구가 작년부터 서서히 스며들더니 올해는 일주일을 꽉꽉 야구로 채우게 되었다. 월요일은 불꽃야구 화~일은 롯데경기 비 오거나 경기안 할 때는 유튜브. 갑자기 이렇게까지 빠지게 된 시작은 알 수 없으나 무료하고 불안한 삶에 도파민이 된 것은 분명했다.
내 인생에 그렇게 굴러들어 온 야구는 보통 18:30에 시작된다. 야구는 공격, 수비로 총 9이닝(회)이 진행되는데 퇴근하면 1이닝은 보통 볼 수 없다. 가끔 우리 팀이 1회부터 공격이 좀 터져서 경기가 길어지면 볼 수 있는데.. 지금 이 문장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그런 일이 있었던가 의문이 든다. 분명 있었을 수도 있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보통은 공격이 터지는 경우보다 수비가 1-2이닝부터 위기를 맞이해서 체감 20분 정도를 보게 된다. 수비만 30분을 보다가 공격이 3분 만에 끝날 때의 허탈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럼 여기서 회사생활의 X 같음을 야구로 이겨낼 수 있는 게 맞나? 의문이 들 수 있다. 100% 가능합니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야구 보면서 스트레스받는 사람들이 분명 있고, 야구에 빠지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도 분명 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이렇게 말하는 이들조차도 모두 18:30만 되면 습관처럼 야구를 틀거나 안 본 날 하이라이트를 보거나 둘 다 안 보면 스코어라도 확인하고 있을 거 안다. 이미 마음속에 야구방 하나 만들었다면 그건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다.
내가 야구에 빠진 첫 매력은 영원한 일등도 영원한 꼴찌도 없는 점이었다. 작년 우승팀이 올해 우승할 수도 있지만 꼴찌를 할 수도 있다. 그리고 매해 리그 순위상의 꼴찌팀이 1등 팀을 꺽지 못한다는 보장도 없다. 현실에서 가끔 보이지 않는 인생 스코어에 과연 저 벽을 넘을 수 있을까 하는 좌절감을 맛볼 때
"야 인생에 영원한 1등도 영원한 꼴찌도 없어. 봐봐. 오늘은 우리가 이겼잖아."
하고 야구가 말해주는 것 같아 위로를 받을 때가 있다. 이렇게 야구를 보다 보면 내 맘대로 해석해서 얻는 자기 위안 같은 것들이 있는데 그런 점들이 내가 야구에 빠진 계기가 아닐까 싶다.
배가 고픈 이 감정이 너무 싫어서 이런 삶을 계속해서 살아가는 게 이유가 있을까? 하는 어둠의 감정이 올라올 때, 다음날 먹을 빵이 있다면. 그럼 내일 빵만 일단 먹어볼까? 하는 마음이 삶을 지속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큰 가치가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그것이 야구였고 마음이 배고플 때 나름 도움이 된다고 추천해주고 싶다. 물론 그 배고픔이 분노로 바뀔 수도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