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안전한 선택
회의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날이 있다.
발언할 기회가 없어서도 아니고, 의견이 없어서도 아니었다.
그냥 말을 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회의의 쟁점은 분명했다. 기술적으로는 설명할 수 있었고, 왜 그 방향이 위험한 지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설명이 누군가의 결정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회의도 평가도 이미 정해진 일정과 방향을 향해 흘러가고 있었고, 내 말은 그 흐름을 늦출 뿐이다. 그래서 나는 말하지 않았다.
회의는 큰 마찰 없이 끝났다. 누군가는 안도했고, 누군가는 다음 일정을 확인했으리라. 회의록에는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채 'TBD'만 남았다.
엔지니어가 기술에 대해서 자기 의견이 있어야 한다고 물러서지 말아라는 조언을 들었다. 하지만 그 조언을 하던 사람조차 일정이 먼저라는 이유로 의견을 묵살하는 것을 보았다. 특히 회사에서 "위에서 결정한 일이니까 해야 한다"는 그 어떤 기술적인 이유도 모두 뛰어넘는 '슈퍼 패스'였다.
"말해도 바뀌지 않을 것 같아서"라는 대답은 내가 듣기에도 변명처럼 들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비슷한 상황에서 자주 침묵했다. 말을 하면 설명할 게 너무 많았고, 그 설명이 오해로 바뀌는 경우도 많았다. 말을 하지 않으면 적어도 기록에는 남지 않았다. 그 침묵은 회의록 어디에도 적히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침묵은 가장 안전한 선택처럼 보였다. 틀린 말을 하지도 않았고, 누군가를 곤란하게 만들지도 않았으며, 결정의 주인이 되지도 않았다.
하지만 침묵에는 후유증이 남았다. 회의가 끝난 뒤에도 머릿속에서는 하지 않은 말들이 계속 반복됐다. 그 말이 정말 쓸모없었는지, 아니면 그냥 해도 소용없으니 꺼내기 귀찮았던 건지 구분이 잘 되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침묵이 편하지만 편하지 않게 되었다. 그 침묵조차 나의 선택이니 그 또한 내가 책임져야 한다. 회의에서는 침묵했지만, 회의가 끝난 뒤에는 계속 그 장면을 떠올린다. 말하지 않은 이유를 내 판단이라고 부르기에는 애매했고, 도망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많은 생각이 남았다. 말하지 않았던 그 판단이 정말 쓸모없었는지, 아니면 애초에 받아들여질 수 없던 것이었는지.
그 답은 다음 회의에서가 아니라,
그 이후의 결정에서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