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에 대하여
"xx아, 나 육아 휴직 썼어. 4월부터는 안 나올 거야"
나의 리더가 육아 휴직에 들어가면서 팀에 갑작스러운 공백이 생겼다.
떠나면서 "네가 리더가 되었으면 좋겠어"라는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저 휴직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사전에 담담하게 이야기했을 뿐이다. 어딘가 모르게 씁쓸해 보였다. 이후 프로젝트 총괄 리더에게 내가 그 자리를 대체하라는 말을 들었다. 설명도, 준비도 없었다. 자리가 비어 있었고, 마침 그 업무를 하던 사람 중 비슷한 연차였고 그 빈자리와 업무를 별말 없이 수행하고 어느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이 나였을 뿐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리더가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바지 리더가 되었다.
권한은 없었지만 책임은 분명히 남아 있었다. 결정해야 했지만 결정권자는 아니었고, 판단은 필요했지만 보호받지는 못하는 위치였다. 진심으로 나는 단 한 번도 리더의 자리를 원한 적이 없었다. 남들 앞에 나서는 것도 싫었고, 누군가를 이끌어야 한다는 상황도 싫었다. '리더'라는 명함은 오히려 나를 짓누르는 업보에 가까웠다.
왠지 모르게 시지프스가 떠올랐다. 정상에 닿기도 전에 다시 굴러 떨어지는 돌. 완수라는 개념은 없고, 멈추는 것도 허락되지 않는 노동. 누가 시켜서라기보다는, 이미 굴러가고 있으니 계속 밀고 있을 수밖에. 내가 느낀 리더십이 딱 그랬다. 올라가고 있다는 감각도, 끝이 보인다는 확신도 없이 그저 오늘의 돌을 밀고, 내일 같은 자리에 서서 또다시 돌을 밀고 있는 일.
한마디로 말하면,
쫄.았.다.
나의 리더는 나와 동기였다.
석사 출신이라 나보다 연차가 높았고, 과장급임에도 불구하고 팀을 이끌고 있었다.
당시 팀의 다른 리더들은 모두 부장급이었다. 그 가운데서 유일한 과장이자 여성 리더였던 그녀는 눈에 띄는 존재였다. 정치가 아니라 실력으로 인정받은 사람이었다. 냉철했고, 합리적이었고, 일을 정확히 끊어낼 줄 아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런 리더가 내 동기라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동경했다.
그녀는 리더이면서도 실무를 놓지 않았다. 마이크로매니징에 능했고, 중요한 판단은 늘 본인이 했다.
후배들은 그 부분이 불만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봤을 때 그건 리더보다는 나를 포함한 후배들의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부족하다기 보다는 가진 것보다 부풀려진 자아를 가지고 있었다. 적어도 기술적으로는 나의 리더가 압도적으로 훌륭했다 . 그런 와중에 나의 리더는 늘 결정해 주었고 판단에 대한 책임을 졌다. 단 한 번도 "좀 생각해 보자"라는 말이 없었다. 나와 달리.
나는 서브 리더처럼 곁에 있었지만 후배들을 적극적으로 끌어안고 매니징하고 드라이빙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나의 성향을 잘 알고 있어서 인지 그녀도 특별히 나를 채찍질하지 않았다. 지켜보고, 대신 판단을 떠안았다. 나의 리더는 나를 자주 치켜세워 주었고 걱정했고, 조언했다.
"너 자신을 너무 과소평가하지 말아라. 네 생각보다 너는 훨씬 잘하고 있고 이런 점이 장점이다. 그런 걸 후배들이 너한테 배울 수 있게 알려줘라. 후배들에게도 기회를 줘야 한다. 네가 다 떠안아서 하지 말아라. 일을 나눠주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
나는 타인의 비난이나 평가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지만 누군가의 칭찬 또한 쉽게 믿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내가 납득이 되어야 하고 내가 만족스럽지 않은 상태에서의 칭찬은 의심부터 한다. 그런데 묘하게 나의 리더의 말은 진심으로 느껴졌고 내가 잘 못 생각하고 있나라는 되뇜을 만들었다. 그 정도로 난 나의 리더가 좋았고 리스팩했다.
다만 팀에서 불편해했던 건 내가 아니라 나의 리더였다. 정확히는 후배들에게.
특정 대리급 중심으로 파벌이 있었고, '리더가 리더답지 않다'는 험담이 돌았다.
과장급이 리더라고 나댄다느니, 리더가 리딩은 하지 않고 실무에 신경 쓴다느니, 잘 알지도 못하면서 태클을 건다느니. 그들은 팀 내 여론을 조장했고, 리더를 포함한 다양한 사람들에게 자기들 유리한 프레임을 씌우는 데 능숙했다. 신입이나 저년차들에게는 가까운 선배이고 술자리를 함께하는 친구인 그들에게 그러한 선입견은 쉽게 전염되었고, 행여 다른 의견이 있어도 감히 반기를 들지 못할 정도로 그 무리는 확장되어 있었다. 심지어 특정 리더는 인기 관리를 위해서 오히려 그들의 눈치를 보며 알아서 슬슬 기었다.
그 와중에 나는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맞든 틀리든 아무 말도 크게 하지 않았고, 앞장서서 누굴 끌고 가는 타입도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팀에서는 오히려 “좋은 사람” 쪽으로 분류되었다. 지들에게 싫은 소리 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일 것이다. 누군가의 호불호를 살 만큼 존재감을 드러내지도 않았고, 정치판에 들어갈 생각도 없었다. 기본적으로 타인에 대한 관심이 없던 나는 누가 내 욕을 해도 상관없었다. 나에게 중요한 건 내 스스로가 납득할 수 있느냐였지, 타인의 판단은 애초에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그래서 회사에서도 자발적 아웃사이더였고, 팀에서 돌고 있는 가십이나 정치적인 소문들에 무뎠다. 심지어 우리 팀원이 결혼하는 것도, 그 대상이 우리 팀 C.C였다는 것도 청첩장을 받을 때야 알았을 정도로 가장 정보가 느린 늙은이 중 한 명이었다. 그런 내가 내 리더의 험담을 뒤늦게 전해 들었을 때 즈음이라면 얼마나 큰 여론이 이미 만들어져 있었겠는가.
정말 미안했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녀는 이미 불필요한 비난과 함께 판단과 조직의 무게를 혼자서 오롯이 감당하고 있었다. 나는 정치도 하지 않았고, 편도 들지 않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게 중심을 지키는 태도라고 착각했다.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옆에 있었으면서도 나는 그 무게를 같이 들지 않은 비겁한 방관자였다.
나는 리더를 사석에서는 "누나"라고 불렀고, 집에서 함께 식사도 할 정도였고 그녀의 남편 역시 형님이라 부르라며 살갑게 대해주었다. 육아 휴직 중인 와중에도 얼마 전 내 미국 출장 스케줄을 어떻게 알고 전화를 해서 안부인사와 함께 네슈빌로 놀러 오라고 했다. 형님도 지금쯤 내가 미국 출장 왔을 때이지 않냐고 초대하라고 했다고 한다. 그녀는 한결같이 같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챙겨주었다. 그리고 내 죄책감은 그 온정을 못내 불편하게 받아들이게 했다. 여전히 부끄러웠다.
나의 리더도 리더가 처음이었다. 그녀 역시 갑작스러운 자리였을 것이다. 마음 편히 이야기할 주변인이 필요했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더욱 분명해졌다. 관계가 없어서가 아니라, 관계가 있었음에도 나는 그 자리에 같이 서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나는 판단을 유예하는 데 익숙한 사람이었다. 결정하지 않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믿었고, 그 안전함을 겸손이라 착각했던 것 같다. 아무튼 나는 판단을 배우기 시작한 게 아니라, 판단을 넘겨받았다. 그리고 리더가 된 뒤 처음 알게 된 것은 판단이 언제나 결과보다 먼저 사람을 고립시킨다는 것이다. 나의 리더처럼 결정을 내리기만 하는 게 아니라 결정 때문에 혼자 남는 사람이 된다는 무게를 처음으로 생각해 보았다. 생각만 해 보았다.
P.S. 지금 와서 내가 리더 역할을 잘하고 있냐면 아니올시다. 회사에서 나 같은 사람이 많은지는 모르겠지만 업무 역량 평가에 나는 나 스스로를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하위고과를 배정했다. 내 연봉과 고과에 대한 문제이지만 나는 당당하고 싶었기에 내가 못한 만큼 냉정하게 깎아내렸다. 상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우리 팀은 올해 꽤나 대단했다. 힘든 만큼 성과도 있었다. 저 높은 곳 누군가들을 위한 데일리, 위클리 보고를 주기적으로 뿌려야 했다. 실질적으로 나에게 도움 되는 것은 없었다. 오히려 그것들 때문에 내 본업의 우선순위가 밀리기도 했다. 이 실적에 너도 나도 숟가락을 올리려 불필요한 요청이 늘어난 것만 봐도 대단히 대단했다. 다만 KPI는 팀에서 달성한 실적에 나 역시 편승했을 뿐 내가 잘했거나 결정적인 기여가 없었다. 후배들을 잘 이끌었나. 이끌려는 노력은 했지만 회사에서 결과물이 없다면 열심히 한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래서 나는 나에게 하위 고과를 주었고 아이러니하게도 최종 결정은 상위 고과를 받았다. 그게 나를 더욱 부끄럽게 했다. 겸손한 척하는 위선적 실리주의자. 마치 나는 회사에서 왕좌의 게임의 '리틀핑거'이자 오셀로의 '이아고'만 같았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