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같은 데이터를 보고 우리는 왜 다른 결정을 하나

문제는 데이터가 아니라 책임의 위치다

by 오줌보

같은 데이터를 두고 서로 다른 회의가 열린다.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 숫자, 이미 공유된 계측값과 검증 결과. 그럼에도 결론은 달랐다.

한쪽은 "기술적으로 문제 없다" 였고 다른 쪽은 "조금 더 보자"였다.

같은 자료를 보고, 같은 설명을 들었는데도 말이다.


도대체 왜?

누군가는 보수적이고, 누군가는 공격적이어서. 혹은 경험이나 지식의 깊이가 다르고 성향이 다르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의외로 많은 경우 이건 개인의 판단 문제가 아니었다. 조직의 판단이다.

조직은 데이터를 해석하지 않는다. 책임을 배치한다.


같은 데이터를 가지고, 어디에 서 있느냐에 따라 먼저 떠올리는 질문이 달라질 수 밖에 없다.

개발팀은 기술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양산팀은 일정과 안정성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품질팀은 신뢰성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고객 대응 팀은 설명 가능성을 먼저 본다.


"이게 맞는가"

"이걸 할 수 있는가"

"문제가 생기면 누가 감당하는가"

이 질문의 순서가 곧, 조직의 판단 기준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조직의 결정은 늘 기술보다 느릴 수 밖에 없다.

더 많은 데이터, 더 많은 검증을 요구하고, 때로는 이미 충분해 보이는 결정을 미룬다.

답답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왜 이렇게 소극적인 걸까? 왜 이렇게 미루는 걸까?


조직은 옳은 결정보다, 감당 가능한 결정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이 선택에는 정답이란게 없다. 대신 조건이 있다.

일정이 바뀌는지, 책임이 정리되었는지, 설명이 준비되었는지

이 것들이 맞물리면 비로소 조직은 결정을 내린다. 데이터가 그 결정을 대신해 줄 수 없다.


그래서 같은 데이터를 보고도 우리는 같은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그건 누군가가 틀렸기 때문이 아니라 조직이 서로 다른 것을 감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게 그 조직의 성격이고 존재 이유다.

이 차이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으면 회의는 반복되고 결정은 미뤄진다.


*현실에서는 이 차이가 항상 존중되지는 않았다. 조직의 판단 구조보다, 힘의 논리가 먼저 작동하는 경우가 많다. 그럴수록 회의는 더 반복되고, 결정은 늦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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