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 아니라 현실과의 타협
타협은 보통 결정의 순간에 일어나지 않는다. 회의실에서는 이미 결정이 내려져 있다. 타협은 그보다 앞에서, 말을 준비하는 단계에서 시작된다.
회의 전에 슬라이드를 다시 열어본다. 리스크를 설명하는 페이지를 조금 뒤로 미루자. 겁부터 줄 필요 없지. 그래도 충분히 검토했다는 느낌을 줘야 한다. 표현을 완화한다. 이 단어가 적합한지 사전을 뒤져본다. 단정적인 문장을 조건부로 바꾼다. 간트 차트의 일정을 도전적이면서도 마진이 있도록 수정한다. 너무 느슨하면 설득하는데 무리가 있고 너무 타이트하면 설득을 하기도 전에 거절당한다. 이 정도면 말해도 괜찮겠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는 과정도 추가된다. 그 판단이 틀려서가 아니라, 끝까지 밀어붙이기에는 남을 사람이 너무 적어 보일 때가 있다.
한 번의 타협은 대개 합리적으로 보인다. 일정을 고려했고, 조직의 상황을 이해했고, 현실적인 선택을 했다는 느낌도 든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다음 회의에서도 비슷한 계산을 하게 된다.
이번에도 조금만 낮춘다. 조금만 늦춘다. 조금만 덜 말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타협은 예외가 아니라 기본값이 된다. 회의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최선의 해법이 아니라, 무리 없이 통과할 수 있는 안이다. 이 선택이 가장 맞는가가 아니라, 가장 덜 흔들리는가를 생각한다. 그 계산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다. 누가 이 말을 받아줄 수 있는지, 누가 이 판단을 감당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이후에도 내가 이 자리에 남아 있을 수 있는지. 타협은 그 질문들 사이에서 만들어진다.
어느 순간 리스크를 줄이는 방법보다 효과적으로 리스크를 말하지 않거나 없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에 더 익숙해진다. 그건 비겁함이라는 습관에 가깝다. 계속 판단을 하려면 계속 회의실에 있어야 하고, 계속 회의실에 있으려면 모든 판단을 끝까지 밀어붙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타협은 판단을 포기하는 선택이 아니라, 판단을 계속하기 위해 스스로를 조정하는 방식이 된다. 하지만 그 조정이 반복되면 반복될수록 어디까지가 판단이었고, 어디부터가 타협이었는지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회의가 끝난 뒤, 남는 건 통과된 안이 아니라 말하지 않은 문장들이다. 그 문장들을 마음에 챙겨 들고 다시 다음 회의에 들어간다. 그리고 또 한 번 조금 덜 말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