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려고 했을 뿐인데
나는 INFP다.
유행 지난 MBTI 타령이 우습기도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런 분류를 좋아한다. INFP는 '차분하고 창의적이며 낭만적인 성향이지만 내면은 내적 신념이 깊은 열정적 중재자인 잔다르크 형'이라는 표현을 보았다.
잔다르크라... 너무 거창하지 않나?
적어도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 INFP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좋았다. 내가 특별한 사람인 것처럼 느끼게 해 주었으니까. 일종의 '홍대병'도 INFP의 특징일지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았다. 그냥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다들 본래의 유형에서 멀어진다. 각자가 터득한 생존 방식에 맞춘 학습된 성향을 하나씩 장착해 간다.
"나는 왜 잘하려고 했는데, 점점 나 자신을 잃어갔을까?"
주니어 엔지니어 시절, INFP로서 내가 가장 강하게 느꼈던 장점은 의미에 대한 집착이었다.
왜 지금인가, 왜 이 공정인가, 이전에는 무엇이 있었고, 우리는 왜 이런 데이터를 기대하는가. WHY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배경이 연결되어 하나의 그림이 그려지기 전까지는 쉽사리 실행하지 못했다. 암기력은 좋지 않았다. 그래서 기록 말고는 믿을 게 없었다. 나만의 공정 불량 백서, 공정 변경 히스토리 아카이브. 그때 쌓아둔 기록들은 시간이 지나 ‘아 그거? 쟤가 알아'의 쟤가 되었고, 그게 나의 무기가 되었다.
하지만 회사는 지적 유희의 공간이 아니다. 회사는 돈을 벌어야 하고, 조직의 오더에 따라 빠르게 실행되고 결과를 내야 한다. WHY에 집착하는 순간, 나는 결정에 제동을 거는 사람이 되었고 ‘시키는 걸 제대로 안 하는 애’가 되기 십상이었다.
나는 방해 없이 몰입할 수 있는 구조에서 생산성이 높았다. 그래서 자리에 오래 앉아 있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테이블 미팅, 메신저, 전화, 선배들의 질문, 심지어 커피 한 잔, 담배 한 대까지. 도무지 나 스스로 생각할 틈이 없었다. 그래서 불량 시료를 만들고, 매뉴얼 DC를 찍고, Lot을 가져오고,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한 모든 시간을 활용했다. 온전히 나 혼자 있는 시간을 업무를 하면서도 확보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고 사무실로 복귀하는 시간이 점점 늦어졌다. 그리고 ‘뭐 하나 시키면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 애’가 되었다.
그때 쓴 노트들은 지금도 가끔 펼쳐본다.
아, 이게 이런 거였지.
주니어 시절, 가장 큰 압박은 단 하나였다.
사고 치면 안된다.
반도체 공정에서 작은 실수 하나는 FAB 전체를 넘어 다른 제품까지 영향을 준다. 그 피해액은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차원이 아니다. 내가 그때 얼마 해 먹었지 같은 무용담이 있을 정도였다. 랏 하나 말아먹어서 그랜저 한대값 날렸다? 그 정도는 사고 축에도 못 끼었다. 그래서 굳이 지름길을 택할 이유도, 명분도 없었다. SOP를 따랐고, 선배들도 강요하지 않았다. 그저 사고만 치지 않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래도 사고는 났다. 나도 강남 아파트 몇 채는 해 먹었다.
리더가 되자 질문이 바뀌기 시작했다. 데이터는 충분한가. 이걸 이 팀원이 감당할 수 있는가. 무리한 결정은 내 선에서 제동을 걸었다. 팀원을 방패로 쓰고 싶지 않았다. 회의에서 조용한 사람, 표정이 굳은 사람, 같은 질문을 반복하는 사람. 말하지 못하는 신호에 민감해졌다. 내가 납득하지 못한 걸 팀원에게 시킬 수 없었다.
그래서 리더로서 가장 치명적인 단점이 생겼다.
결정이 느려졌다.
정확히는 느려졌다기보다,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기술적 타당성, 팀원의 부담, 장기적인 후폭풍. 고려할 것이 너무 많아졌다. 피드백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 말을 하면 상처받지 않을까가 먼저 떠올랐다. 결국 피드백 타이밍을 놓치거나, 표현은 지나치게 완곡해졌다. “이건 내가 욕먹자.”, “내 팀이니까 내가 책임지자.” 방패 역할을 과도하게 떠안았고, 그 결과 팀원의 성장 기회를 빼앗고, 나는 번아웃에 가까워졌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항상 계산하고 있었다.
이 싸움이 의미가 있는가.
그래서 말할 수 있는데 말하지 않는 순간이 늘어났다. 이걸 밀어붙여도 바뀌는 게 있나? 내가 책임질 수 있나? 내 팀이 감당할 수 있나? 그렇게 나는 점점 더 조용한 사람이 되었다. 이미 결정된 방향에 합리성만 덧칠하는 회의, 일정을 우선으로 강요받는 게임. 기술이 싫어진다기보다, 이 게임 자체가 싫어졌다.
성과 포장은 여전히 어렵다. 내가 이걸 했고, 이게 얼마나 대단한지 말하는 일은 불편하다. 하지만 리더가 된 순간, 이 문제는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팀 전체의 평가로 이어진다. 그래서 나는 모든 판단을 말로 하지 말고, 문서로 남기기로 선택했다. 말하지 않아도 남아 있는 흔적을 만들고자 했다. 확실히 나는 방향을 바꾸는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망가지는 걸 막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여전히 느리고, 여전히 고민이 많다. 대신 쉽게 망가지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