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불완전한 데이터 앞에서

정답 없는 선택의 기록

by 오줌보

결정은 언제나 데이터가 충분한 뒤에 내려지지 않는다.

오히려 중요한 결정일수록 데이터는 늘 부족하다. 모든 수치가 정렬되고, 모든 리스크를 검토하고 검증된 뒤에 완벽한 상황에서 판단을 요구받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 불완전한 정보 앞에서 엔지니어에게 주어지는 선택지는 많지 않다. 그리고 대부분 그 선택지는 크게 세 가지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위험을 감수하고 진행하거나, 보수적으로 판단하여 중단하거나, 결정을 미루는 것.

문제는 이 셋 중 어느 것도 '정답'이라고 확언하기 어렵다는 부분이다.

그리고 그보다 더 큰 문제는 틀린 결정보다, 아무도 결정하지 않으려는 순간에 시작된다.


엔지니어에게 기술적인 계산과 평가 데이터에 대한 분석과 판단은 매우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게다가 그걸 수행할 나보다 훌륭한 엔지니어는 수두룩하다. 그래서 나는 결정을 앞두고 항상 기술 외적인 질문을 먼저 던지기로 했다. 이 선택에 대한 리스크는 누가 감당하고, 지금 이 불확실성은 구조적인 문제인가 일시적인 문제인가, 그리고 누구에게 이 결정에 대한 설명을 해야 하는가.


대부분의 갈등은 기술이 아니라 판단 기준의 차이에서 발생한다. 동일한 데이터를 보고도 서로 다른 결론에 도달하는 이유는 각자가 감당해야 할 책임의 형태와 무게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때로 결정은 개인의 판단이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그 조직의 성격을 보여주기도 한다.


결과가 좋은지 나쁜지는 나중의 일이다.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결정 당시의 과정이다. 어떤 가정을 했고, 무엇을 배제했으며, 어떤 리스크를 인지한 상태에서 선택했고, 이 과정이 설명 가능하다면, 결과와 무관하게 그 결정은 마땅히 존중받아야 한다.


어쩌면 엔지니어의 일은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함 속에 설명 가능한 선택을 만드는 일이다.


나는 그 일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