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혀놔 Jul 25. 2023

나에게 의문점만 안겨준 6월의 앵두

맛에 한해서는 입바른 말을 내뱉기 힘든 너란 녀석, 앵두

6월 초, 해남 밭에 갔다. 밭에 한 그루 심긴 앵두나무가 있었는데, 내 키 정도에 불과한 아담한 나무에 열매는 어찌나 그리도 많이 달려 있던지. 그리고 색깔은 어쩜 탐스러운지.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빨간 열매가 땡글땡글 맺혀 있는 그 모습을 처음 봤을 때의 벅차오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이건 무조건 따야 한다.


 

앵두나무에 파묻힌 할머니

그리고 여기, 따지 않으면 성에 차지 않는 사람이 한 명 더 있다. 우리 할머니. 아침 산책을 다녀오고 기운이 없다고 마루에 드러누우셨던 우리 할머니는 앵두 따자는 나의 말 한마디에 금세 이불을 박차고 나오셨다. 그렇게 우리 둘은 나무에 먹히는 듯 파묻혀 열매를 땄다. 낮은 나무 높이는 우리에게 더할 나위 없이 안성맞춤이었다. 



발에 차여 대야의 절반이 땅에 떨어졌다

정신없이 따다 보면 발을 헛디뎌 대야에 애써 담은 앵두를 땅에 쏟기도 한다. 한숨 한 번 에효 쉬며 다시 주워본다. 떨어진 모습도 땡글땡글 예쁘다.



다시 쓸어 모아 가보자

힘차게 쓸어 모아 묵직해진 대야를 안고 뿌듯하게 발걸음을 옮겨본다. 어떻게 먹어야 좋을지 뾰족한 수가 서질 않는다. 일단 집으로 갖고 가 보자. 



그 길로 엄마에게 가져다 드렸다. 한 며칠 방치되었던 앵두는 어느 날 퇴근하고 집으로 가보니 뚝-딱 앵두청으로 완성되어 있었다. 앵두-설탕-앵두-설탕을 반복하며 켜켜이 쌓고 기다린 지 딱 한 달. 설탕을 잔뜩 머금은 앵두가 퉁퉁 불어 선홍빛 물을 내뱉는다. 



별 특색이 느껴지지 않는 설탕물 맛이다.

뚜껑을 따자마자 치익-하는 탄산 소리가 난다. 발효가 잘 되었군. 한 알을 똑 올려 원액 그대로의 맛을 봐본다. '오...? 그냥 설탕물 맛이다.' 한 달을 기다릴만한 맛은 결코 아니다. 초여름날에 땀을 뻘뻘 흘려가며 딸만한 맛은 더더욱 아니다. 



조금만 따른 이유는 사실 별 기대가 되지 않았기... 때문....

포기하지 않고 탄산수를 섞어보았다. 자몽맛 탄산수를 섞었다. 달달하니 맛있다. 근데 특별하진 않다. 



안뇽
굳게 잠근 뚜껑

다시 입구를 봉했다. 엄마 말이 한 1년이 지나야 맛이 들 것이라고 한다. 후기는 1년 뒤, 2024년에 돌아오겠다.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난 잘 모르겠다... 1년 뒤가 그리 기대되지 않아... 미안하다 앵두쓰.




앵두인 듯 보이지만 이 친구는 보리수 열매다

먹을 때의 즐거움보다 수확할 때의 즐거움이 큰 작물을 고르라면 단연코 앵두를 꼽겠다. 피처럼 새빨간 색깔, 열 개를 한꺼번에 따도 손에 다 잡히는 앙증맞음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애가 타게 하는 매력이 있다. 


하지만 너란 녀석... 빛좋은 개살구... 단맛보다는 새콤한 맛에 가까운 맛인데(그렇다고 맛깔스러운 산미도 아니었다) 화려한 외양 대비 특별한 맛은 아니다. 웬만하면 좋게 말해주고 싶지만 맛에 한해서는 입바른 말을 내뱉기 힘든 너란 녀석, 앵두.... 


끝으로, 앵두 맛있게 먹는 팁이 있다면 누구든 알려주길. 잘해먹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따스한 봄에 사용하는 포근한 뜨개소품의 맛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