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느린 아이

아이의 언어

by JH

우리 아이의 신체적인 발달은 참으로 빨랐다. 생후 7개월 때 혼자 서서 벽 잡고 걸어 다니기 시작했고, 기어 다닐 때에도 병원에서 되물어 볼 정도였다. 돌 때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내 아이의 언어가 느릴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더구나 엄마인 나는 언어가 굉장히 빨리 트인 편이었다.

걱정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36개월 안에만 하면 된다기에,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문장으로 줄줄 트인다기에. 그래서 그런 줄로만 알았다.

하늘이는 <엄마, 아빠> 외에 다른 말은 하지 못했다. 그냥 <아> 혹은 <어>하고 소리만 낼뿐. 미련했던 나는 괜찮을 거라며 아이에게 열심히 책을 읽어주면서 기다렸다. 다른 아이들은 36개월 이전에 말이 트일 수 있어도, 내 아이는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어쩌면 내가 외면한 것일 수도.


34개월쯤, 어린이집에서 조심스럽게 언어치료를 권유하셨다. 언어치료까지 필요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나는 선생님 말에 머리가 띵해졌던 것도 잠시, 뒤늦게 부랴부랴 센터를 방문했다. 그제야 나는 내 아이의 까칠함과 폭력성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이가 하고 싶은 말은 이만큼 있는데, 아이는 그걸 표현할 줄 모르니 행동으로 나오는 것이었다. “하지 마.”라는 말 한마디보다 밀치고 때리는 행동 한 번이 더 편하고 효과적이었던 것이다. 내 아이는 자연스럽게 반 아이들과 멀어졌다.

소통을 할 줄 모르니 아이들과의 놀이에 참여할 수 없었고, 혼자 노는 시간이 많았는데 혼자 놀다 보니 다른 아이들과는 어울릴 수가 없었다. 다른 아이들이 하늘이와 같이 놀려고 다가와도 <같이>에 익숙하지 않았던 아이라 거부 반응부터 오고, 그걸 말로 표현할 줄 모르니 상대 아이를 밀치는 행동이나 소리 지르는 것으로 표현했다. 선의로 다가왔던 아이들은 하늘이가 소리를 지르니 다시 떠나가고, 하늘이는 제 영역 안에서 혼자만 있으려 했다. 아이의 사회성이 좋을 리가 없었다.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나는 아이가 기질적으로 예민하고, 내성적이며, 혼자 노는 것을 더 좋아하는 줄로만 알았다. 아직 아이가 어리기 때문에 서투른 것인 줄 알았다. 참으로 모자라고 무지한 엄마였다.


우리 아이는 한 문장을 이야기하면, 먼저 듣는 앞 단어만 남고 뒷 말들은 흘려 날리는 것 같다고 했다. 기본적으로 말에 흥미가 없고, 말을 할 줄 알아야 듣는 재미도 있는데, 할 줄 모르니 듣다가 마는 것 같다고 하셨다. 아이가 접하는 모든 말이, 우리 아이가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도 긴 말들이었다.

하늘이에게는 “옛날 옛날 어느 나라에 공주가 살고 있었어요.”도 이해할 수 없는 긴 문장이었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시 시작했다. 센터에서 배운 대로. 너무 감사하게도 어린이집에서도 함께 해주셨다. 6살을 며칠 앞두고서야 ‘노력하면 알아들을 수 있는’ 대화가 이루어졌다. 아이의 폭력성도 예민함도 자연스레 사라졌다. 나는 이대로가 끝인 줄 알았다.


하늘이는 수십 개월 동안 언어의 답답함으로 홀로 벽을 쌓아온 아이였다. 언어가 트임으로써 비교적 얇아는 졌지만 여전히 견고했다. 발음의 문제가 남아있던 것이다.

6살. 담임 선생님의 목표는 그러한 하늘이의 벽을 부수는 것이라고 하셨다. 많이 노력할 테니 믿고 기다려달라고, 그렇게 말씀하셨다.


7살. 그때의 하늘이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동생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걸 좋아했으며, 동생들도 “언니, 누나 책 읽어줘.” 하며 하늘이를 잘 따랐다. 모르는 맞춤법이 있으면 하늘이에게 물어보는 반 아이들도 있었다. 하늘이가 결석이라도 하는 날에는 반 아이들이 하늘이가 보고 싶다고 그렇게 찾았다고 했다. 6살 때의 담임선생님이 하늘이에게 가졌던 목표를 성공하신 거다.

하늘이는 반 아이들과 트러블이 생기면 이전처럼 소리 지르거나 밀치는 것이 아니라 “네가 이렇게 해서 나는 속상했어. 앞으로는 그러지 말아 줘. 이렇게 하는 대신 저렇게 해주면 좋을 것 같아.”라고 본인 기분과 의사에 대해 분명하고 단호하게 전달한다고 했다. 선생님은 하늘이처럼 본인 입장을 분명하고 똑 부러지게 전달하는 아이는 본 적 없다고 하셨다. 긴 시간 동안 하늘이를 봐왔던 어린이집이라 선생님들은 하늘이가 정말 많이 컸다고 입을 모아 말씀하셨다. 선생님들은 나에게 그동안 참 고생 많으셨다고 하셨다. 우리 아이가 한 고생에 비하면 내가 한 고생이 어디 고생이겠는가. 그럼에도 눈물이 났던 것 같다.

언어가 트이고 소통이 되는 하늘이는 예민하지 않으며, 외향적이고, 혼자 노는 것보다는 친구들과 노는 것을 더 좋아하는 아이였다.


8살. 하늘이는 여전히 언어치료를 다닌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아직 발음이 조금 부족하다. 다행스럽게도 아이는 센터를 가는 것을 참 좋아한다.




33개월. 둘째 달이도 저번 달부터 언어치료를 시작했다. 다행인 점은 달이는 단어를 많이 알고 있으며 수용 언어도 나쁘지 않다. 언어치료 한 달째. 달이는 두 단어 연결을 시작했다. 하늘이에 비하면 굉장히 빠른 셈이다. 지난 경험이 있어서인지 걱정보다는 기대가 앞선다. 달이도 제 누나처럼 잘 이겨내고 빛나는 성장을 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옳은 방향이라면 조금 느려도 괜찮다. 저마다 각기 다른 속도가 있는 것이니. 천천히 걸어갈 내 두 아이들의 성장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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