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취향

by JH

결혼 전, 나의 취미는 옷을 사는 것이었다. 옷 가게를 하는 친구들도 우리 집, 내 옷 방을 보면 “옷 장사는 내가 아니라 네가 하냐. 여기서 사면 됨?”라고 할 정도였다.

아이가 태어난 후 이러한 취미는 자연스레 아이에게로 옮겨졌다. 하늘이와 달이는 내 남편보다도, 나 보다도 많은 옷을 가졌다.

나는 샤랄라 한 공주풍의 치마보다는 편하게 입고 뛸 수 있는 옷을 선호했고, 또 박시한 핏을 좋아해서 아이들도 몸에 딱 핏 되는 것보단 살짝 박시한 옷이 하늘이의 옷장 상당수를 차지하는데 (물론 하늘이의 취향을 고려해서 치마류도 많다.), 덕분인지 혹은 때문인지는 몰라도 달이는 그런 하늘이의 옷을 많이 물려받았으며, 하늘이는 몇 년 전에 산 옷을 아직도 입는다.

여기에선 달이는 또래보다 큰 편이며, 하늘이는 또래보다 작은 편인 것도 한몫한다.


그래도 일 년에 한 번씩은 아이들 옷장을 뒤집어엎고 정리를 하는 편인데, 바로 그때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그날은 하늘이의 치마류를 정리하던 날이었다. 작아진 하늘이의 치마를 한쪽에 모아뒀었는데, 그것을 본 하늘이가 “엄마. 저건 왜 저렇게 뒀어요?”라고 물었다.

너에게 작아진 옷들이라 더 이상 입을 수 없어서 빼놨다고 했더니 하늘이는 그럼 달이에게 주자고 답했다.

그 말에 나는 “안돼. 달이는 남자아이잖아. 달이는 못 입어.”라고 했다.

하늘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응? 아니야 엄마. 남자도 치마 입을 수 있어. 세상에 남자만 입을 수 있는 옷, 여자만 입을 수 있는 옷은 없어. 입고 싶으면 다 입을 수 있어. 몸에만 맞으면 얼마든지 입고 싶은 대로 입을 수 있어. 그러니까 달이한테 물어보자.”라고 했다.

머리가 한 대 맞은 듯 띵한 느낌을 받았다. 불과 옷 정리하기 얼마 전 나는 배우 봉태규의 스커트에, 가수 조권의 하이힐에, 가수 카이의 크롭티에 기립박수를 쳤었다. 특히나 봉태규의 스커트 사진을 보고 남자가 왜 치마를 입느냐고 물었던 하늘이에게 “남자도 입을 수 있어. 남자만 입는 옷, 여자만 입는 옷은 없어. 취향 차이일 뿐이야.”라고 설명했던 나였다. 그랬던 내가 아이에게는 ‘남자는 입을 수 없는 옷’이라며 단정 짓고 말한 것이다. 그 순간 나는 내가 얼마나 모순적인 인간인지 깨달았고, 한 없이 부끄러워졌다.


달이는 그날 신을 제 양말 하나도, 제 신발 하나도 꼭 제 손으로 직접 골라야 하는 아이다. 하늘이는 그런 달이에게 선택권을 주었다. 달이는 하늘이가 보여준 치마 더미를 보고선 한달음에 품에 안았다. 최종적으로 선택되어 남은 치마는 단 세 벌이었다. 달이가 직접 고른 옷이다. 어린이집 활동에 불편할까 봐 등원할 때에는 치마를 입히진 않지만(이건 하늘이도 마찬가지였다.) 하원 후에는, 그리고 주말에는 종종 치마를 입곤 한다. 역시나 달이의 선택이다.

치마를 입은 달이의 손을 꼭 잡고 슈퍼라도 나가면 동네 어르신들의 시선이나 말이 곱지는 않다. 달이를 아는 동네 어르신들은 왜 아들에게 치마를 입히느냐고 한 마디씩 하신다. 어쩌겠는가 아이의 선택인 것을. 옷은 누구나 입을 수 있다. 너무나도 이 당연한 사실을 아이들을 통해 또다시 깨달았다.

훗날, 남자아이인 달이가 자신이 치마를 입은 사진을 보면 뭐라고 할까? 본인의 흑역사라고 할까? 아니면 그때쯤이면 그것이 이상하지 않는 세상일까? 나는 후자이길 바란다. 옷은 개인의 취향이며, 누구나 입을 수 있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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