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소뇌, 균형이 무너지다
1. 현실 - 평평한 길에서도 휘청이다
“어...?”
은서는 분명히 평평한 보도블록 위를 걷고 있었는데,
발끝이 비틀렸다.
중심을 잡으려다
한 발을 헛디뎠고,
어깨로 벽을 짚었다.
갑작스러운 현기증,
마치 세상이 기울어진 느낌.
눈은 제대로 떠 있지만
시야가 미세하게 흔들린다.
몸은 느리게,
하지만 확실하게 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왜 이래...
지금 뭐가... 잘못된 거지?”
그녀는 자신이 취한 것도, 힘을 뺀 것도 아닌데
몸이 지 멋대로 움직이는 느낌에
오싹해졌다.
2. 내부 - 소뇌, 감각 통제 센터 패닉
“조정실, 균형 좌표 흔들림 감지!”
“중심축 불안정, 걸음 정보 재정렬 실패!”
소뇌 중앙제어소, CBL-7은
끊임없이 신호를 받아 움직임을 조율하는
정밀한 수학자이자 지휘자였다.
하지만 요즘, 입력되는 정보는
뒤엉켜 있었다.
시신경에서 들어오는 영상이 떨리고,
반고리관에서 올라오는 균형 정보가 비틀리며,
발바닥 감각도 시차가 생겼다.
CBL-7은 명령을 내리려 했다.
“좌측 둔부 하강. 우측 경사 보정. 전방 집중...”
그러나 명령은 무효 처리되었다.
산소 부족.
에너지 전달 지연.
혈류 불균형.
“무언가... 안에서 잘못되고 있다.
이건 단순한 입력 오류가 아니다.
내가,
내가 제어를 못 하고 있어...”
소뇌는 경고를 울렸다.
하지만 대뇌는 여전히 응답하지 않았다.
3. 현실 - 사람들 속, 은서의 고립
지하철 안.
사람들은 바쁘게 움직이고,
누군가는 전화 중이고,
누군가는 이어폰을 꽂고 있었다.
은서는 두 손으로 손잡이를 움켜쥐고 있었다.
숨을 참으며 중심을 잡으려 애썼다.
“넘어지진 말자.
넘어지면,
이상한 사람처럼 보일 거야.”
그녀는 스스로를 억지로 중심에 세우며
몸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조심스레 통제했다.
그 자체가 사투였다.
하지만 누구도
그녀가 지금
소뇌에서 조난 중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4. 내부 - 조난 신호
소뇌는 비상 신호를 울렸다.
“우린 지금
‘움직이지 않으면 쓰러지는 상태’에 진입했다.”
전기 신호는 점점 흐릿해졌고,
각 감각의 응답 속도는 점점 느려졌다.
청신경 통신소에서 또다시
이명과 울림을 전송했고,
척추감각 통로(SPC)가
‘다리에 힘이 풀린다’는 경고를 보냈지만...
아무도,
받아주지 않았다.
추골동맥 수송대는
갈수록 붉은 피의 압력이 낮아지는 걸 느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소뇌도... 끝이 다가오고 있다.”
5. 현실 - 넘어지기 직전
계단 앞.
은서는 고개를 들었다.
가볍게 내려가는 계단인데,
오늘은 이상하게 멀게 느껴졌다.
발을 내딛으려는 순간...
몸이 한쪽으로 쏠렸다.
은서는 겨우 벽을 붙잡았다.
누군가가 스쳐 지나가며 말했다.
“와, 저 사람 술 마셨나?”
그 말에,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누구도,
그녀의 몸 안에서 울리는 비명을 듣지 못했으니까.
에필로그 - 균형은 무너지고, 세상은 모른다
소뇌는 균형을 잃었고,
그 신호는 대뇌에 닿지 못했다.
피는 줄어들었고,
감각은 왜곡되었으며,
몸은 혼란에 빠졌다.
그런데도
세상은, 단 한 마디로 정리한다.
“살짝 피곤한가 봐요.”
다음 화 예고
제5화 - “척추감각 통로, 저림의 지도”
다리 저림, 발끝의 이상 신호.
피부 밑에서부터 기어오는 감각의 지도.
척수 뒤쪽에서 올라오는 통증 신호의 연쇄.
그리고 은서가 처음 느끼는 진짜 공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