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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절 Jul 18. 2023

연봉 7200만 원 포기하고 강릉행

젊은이가 어쩌다 강릉에 왔드래요?



여의도 증권가 홍보팀에서 근무하던 나는 3년 5개월 차에 사직서를 냈다. 마지막 연봉은 7,180만 원. 26살이 받기에는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퇴사 6개월 차에 살던 집을 내놨다. 십여 분 걸으면 한강 공원이 있는, 지은 지 오래된 빌라지만 좋은 컨디션에 시세 대비 저렴하게 구한 집이었다. 집은 내놓자마자 바로 나갔고, 곧 1t 트럭을 꽉 채운 이삿짐과 함께 네 시간을 달려 강릉에 도착했다. 이제 나는 서울시민이 아닌 강릉시민이다!


2년간 살아갈 40년 된 아파트는 도시가스가 아닌 기름보일러를 쓴다. 초반엔 기름 냄새에 적응하느라 고생 좀 했다. 녹물 때문에 샤워기 필터는 필수. 세탁기는 찬물 세탁만 가능하며, LPG 가스레인지를 설치하지 않아 가스버너로 요리를 해야 한다. 

강릉에 오면서 포기한 건 고연봉, 좋은 집만이 아니다. 지방대 출신으로 졸업 전에 대기업에 들어갔다고 좋아하던 부모님, 초중고를 같이 나와 함께 상경해 넘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살던 소꿉친구들, 백화점, H&M, 타코벨, 수많은 미술 갤러리들, 각종 페스티벌, 서울이라는 도시가 줄 수 있는 수많은 기회와 편리한 인프라 등. 많은 것을 놓아야 했다.



그럼에도 연고도 없는 이 도시 '강릉'에 온 이유는 단출하다.

'아름다워서'


나는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했다. 중학생 때부터 사진촬영이 취미였다. 스무 살에 반수 실패 후 또 한 번 재수를 해 사진학과에 갔다. 청소년기부터 서른을 앞둔 지금까지 좋아해 온 '사진'은 인생의 일부가 되었다. 그토록 좋아하는 사진으로 돈도 벌고, 마음껏 작업도 해보고 싶었다. 30대가 되면 도전하는 것이 두려워질 거 같아 20대가 끝나기 전에 도전한 것이다. 그래서 사진 하기 좋은, 아름다운 이 도시로 왔다.


많은 걸 포기하고 선택한 이 도전이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사업 아이템을 구상하고, 실행하고, 수정하는 것. 마케팅. 홍보. 디자인. 트렌드. 고객 서비스. 적절한 용역 업체를 찾는 것. 불규칙한 수입에 익숙해지는 것. 복잡한 세금을 처리하는 것. 강제성 없는 삶에서의 시간 조절. 게으름과 무기력과의 싸움. 행복과 불안을 오가는 것. 맞고 틀림이 없는 이 시장의 혼돈을 온전히 혼자 감당해야 하는 것... 습관처럼 "파이팅"을 외치며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지만, 여전히 어려운 거 투성이고, 앞이 잘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재미있다.

이를테면 아파트 각 동 앞에 놓여있는 의자. 앞 동 할머니는 나무 의자에 매일같이 앉아있고, 그 옆 동 철제 의자에는 노부부가 자리한다. 그들을 보면 참을 수 없는 호기심이 발동한다. '지금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또 외출을 마치고 온 어느 날, 현관에 검은 봉지 하나가 걸려 있었다. 옆집 아주머니가 김을 나눠준 것이다. '현관에 걸린 김이라니!' 뜨거워진 가슴으로 다음 날 오렌지를 걸어두었다.

이렇게 바로 집 앞에만 나와도 재미있는 일 투성이다. 그리고 우리 집에서 차로 15분을 달리면 해변이 나온다.

경포, 안목, 강문 등 유명 해변을 갈 수 있다. 바다가 질리면 호수에 가면 된다. 경포호수는 절반은 자연, 절반은 도시와 닿아 있어 한 시간 반을 걸어야 하는 코스도 결코 지루하지 않다.

호수가 진부해지면 천에 가면 된다. 남대천은 음악을 들으며 조용하게 산책하기 좋다. 배고프면 옆길로 빠져 중앙시장에서 군것질도 할 수 있다.

바다도 호수도 천도 전부 질리면 들이나 산에 가면 된다. 대관령의 굽이진 길을 운전하다 보면 내 인생은 그리 굽이진 게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또, 강릉엔 맛있는  많다. 막국수, 장칼국수, 순두부, 게, 회...인기 관광지답게 예쁜 카페, 소품샵 등도 많다.


그래, 역시 강릉에 오길 잘했다.



강릉의 어느 해변
근로소득 원천징수영수증
우리집 I
우리집 II
할머니의 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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