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라고 해봤자 2년 전?) 나는
‘환경이 되니까 하는 거지.운이 좋은 거지.’라는
말을 자주 하는 사람이었다.
부모님의 경제적 지지가 좋은 환경이라
애착 환경이 잘 형성된 집안이라
머리가 비상한게 선천적인거라
그 시대 때는 뭐가 더 쉬웠기 때문에.
그리고 내가 그런 환경에서 태어나지 않았기에
하고 싶은 걸 할 수 없었고
무기력함을 교육 받아 왔다고 생각 했었다.
‘인생은 원래 불공평하다.‘
이 말을 새길수록 남는 건 ‘자기박탈감’ 뿐이었다.
웃기게도
요즘은 내가 주위 사람들에게 저런 말을 듣고 있다.
그 사람들에게서 과거의 내 모습이 비춰보니
나에게 주어지지 않은 완벽한 상황들로
나 자신의 상황에 면죄부를 주면서
나는 그 환경이 주어진 사람만큼 노력하지 않았다.
쉽게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집이 잘 살고 사교육비를 다 대줬으면
명문대를 갔을 거라 얘기하면서도
정작 환경이 뒷받침이 되어 입학한 친구들만큼
노력하지 않는 사람이 대다수다.
보이는게 전부가 아닌데
성취와 그런 긍정적인 성향을 갖기 위해
고뇌하는 시간을 보내고 답을 찾기 위해
돈과 시간을 쓰는 건 깡그리 무시한 채
보이는 것들로만 비교해서 자신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만큼
‘게으른 가난함’은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간호사로서 이것저것 해보는게,
일을 빨리 배우는게,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던게,
일과 공부를 병행하는게,
취미 생활을 찾기 위해 도전하고 경험해보는게,
타고난 운이 100%가 아니라
타고난 성향이 100%가 아니라
수십 번 생각을 고쳐먹고
용기를 내는
(여기 나의 우유부단함을 잘 아는 사람은 내가 뭘 시작하기 전에 얼마나 고민을 많이 하는지 굉장히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 시작의 절반인 의지를 보일만큼
정말 솔직하게 하고 싶은 걸 찾았기 때문이다.
나의 대학 생활은 졸업 때까지 꽉 채워서 이걸 찾는데
시간과 돈을 다 쓴 것 같다.
나는 이때까지 경제적인 이유로
하고 싶은 걸 못 했다고 말했지만
정작 하고 싶은 걸 제대로 찾으니
주변의 악담에도
내게 넓은 선택지를 주기 위해
타 동기들보다 일찍 몸을 갈아넣어 주 50시간 이상
일을 하면서
돈을 준비하고
빠른 적응을 위해 하루도 복습을 미룬 적이 없고
(물론 친절한 선생님들을 만난 건 정말 좋은 운이다.모든 사람에게 감사하다. My mommy and daddy들..)
정맥 주사 감을 찾기 위해 내 팔과 친구 팔에 6개 밴드가 붙여질만큼 연습하며 팔에 멍이 잔뜩 들어서
환자한테 “선생님 괜찮으세요..?“라는 소리를 듣고
싫은 소리 듣는 거 억울한 거 참아가고
매일 환자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 않았다는 안도감에
운을 다 써버린 것 같은 기분과
10시간 동안 계속 서있으면서도
쉬는 날을 아껴가며
할 공부들을 하고 있다.
나를 보며 자신의 처지에 한탄하는 사람들에게
굳이 비교하고 싶지 않지만
나만큼 노력하고 있냐고
묻고 싶다.
힘든 걸 하기 싫은 거에서 오는 포기이지 않냐고
반문하고 싶다.
내가 그랬었기 때문에.
내가 성향이 선천적으로 강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했던 내 시간들은, 노력들은,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았다고 소리지르고 싶다.
과거의 나는 그랬다.
안정적인 걸 추구하고
굳이 머리 아픈 걸 하고 싶지 않고
그래서 한탄이 제일 쉬웠다.
물론 하고 싶은 걸 제대로 지지 받는 환경에서
태어났다는 거에 어느 정도 운이 주는 영향을
깡그리 무시할 순 없다.
(나는 여기에 해당하는 사람은 절대 아니었다.)
안락한 집이 있다는 것도 굉장히 좋은 운이고
이것도 무시할 순 없다.
더 가지지 못한 걸 한탄하고 제자리에 있어봤자
억울하게도 도태되는 건 나 뿐이다.
뭐든 자신에게 면죄부를 줘 봤자다.
정말 원하는게 있으면
그냥 저절로 움직이고
움직이다 보면 확신이 들고
주위에 그걸 이룬 사람들을 시간내서 보고
배우면서 설렘이 느껴진다.
비슷한 꿈을 가진 사람들이 주위에 있을 때
나한테 더 큰 시너지가 난다.
안 그런 사람들이 나쁘다는게 아니라
주로
의견 차가 심해서 서로의 진로 얘기 시
도움 될게 없다.
(약간 어쩌라고 식의 대화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내가 원한 걸 갖춘 사람들의
노력을 인정하고 배우는게
내가 가져야 할 태도라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정말 좋아하는 친구의 말대로 몸도/마음도 다치지 않는 선에서../라고 듣자마자 니들링 당했다.)
과거의 나는 이걸 몰랐고
지금의 나는 이걸 깨달아서
나에게 면죄부 주는 걸 조심하고자 한다.
과거는 반성하고
현재는 조심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앞으로도 나는 그럴거다.
나는 좀 더 억까를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 같다.
결론은 그냥 시작이 반이다.
한탄할 시간에 뭐라도 더 해서 극복하자.
아좌아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