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친구를 연인으로 만들까?
기계장치의 예열이 끝난 것 처럼, 오전이 마무리 되어갈 시간이 되자 사무실 사람들은 최대 성능을 뽑아내고 있다.
난 대기업에서 시스템을 유지보수 하는 일을 맡고 있고, 모기업 클라이언트의 요청사항이 담긴 메일을 열어보며 또 한번 한숨을 쉬게 되었다.
‘아 답답하네.’
오전 시간에는 가급적 자리를 비우지 말고 업무에 집중하라는 팀장님의 지시가 있었지만, 조용히 담배를 챙겨 흡연 공간으로 가려 일어섰다.
내가 일어선 것을 보고 말씀하신 건지 그 순간 팀장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은정씨, 지금 요구사항 메일 확인 했죠? 거기 팀장이 어제 밤에 전화해서 신신당부 한 내용이니까 최대한 빠르게 작업시간 확인하고 회신주세요.”
우리 팀장님은 참 좋은 분이다. 감정적으로 치우침 없고, 누구에게나 일관된 태도로 대하신다. 이 팀에 발령받고 팀장님의 모습을 보며 직장생활의 본보기로 생각하기도 했다.
“저.. 팀장님”
“네? 무슨 문제 있어요?”
“저 그만두고 싶은데요.”
“…”
팀장님의 표정은 오묘햇다.
“잠시 얘기좀 하죠. 아니다 점심시간 다 되었으니 우리 밥 먹으면서 얘기합시다. 나가죠.”
팀장님은 늘 가던 구내 식당이 아니라 외부 식당으로 날 데려가셨다. 꽤 괜찮은 식당에서 맛있는 식사 주문을 하고, 식사를 하는 내내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식사를 마친 후에야,
“음식 괜찮았죠? 자 밥을 먹었으니 우리 커피 한잔 하면서 얘기 합시다.”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기고, 많은 사람들 사이에 자리를 잡고 난 말했다.
“커피는 제가 살게요.”
“그만 둔다 소리를 해 놓고 커피까지 산다고? 에이. 그건 아니죠. 내가 계산 하는 동안 저기 앉아서 나한테 할 말을 다시 한번 정리해 보세요.”
팀장님 말씀처럼 난 아직 내 생각에 정리가 되질 않았다.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하는지 고민하던 중 팀장님은 커피를 들고 자리로 오셨다.
“자. 정리된 데까지 얘기 좀 들어봅시다.”
“아까 말씀드린 거랑 다를 건 없네요. 회사를 그만 두고 싶어요.”
“음….. 왜요?”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너무 답답해요. 버겁다는 생각도 들구요.”
“그랬군요.”
“네…”
“일단 팀장이자 선배로써 말씀드릴게요. 올해 은정씨는 여러가지 검증을 거칠 예정이에요. 진급이라기 뭐하지만, 팀 리더로써의 역량을 평가해 보라는 얘기가 있었고, 그 얘기인 즉슨 조금만 참으면 지금보다 더 많은 책임과 권한을 받게 될 거란 거죠. 지금보다 조금 더 많은 것을 받게 된다는 얘기겠죠?
그리고 다음 얘기는 내가 남성의 입장에서 이렇게 얘기하는게 불편하시면 바로 말씀하세요. 여성이기 때문에 능력과 별개로 지금 회사를 그만두고 나가게 되면 남성들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경력을 이어 가기 쉽지 않을 수 있어요. 그 부분을 생각하셔야 합니다.”
팀장님의 말을 이어 난 생각을 말했다.
“사실 깊이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 그만 두고 싶습니다. 팀장님 말씀에 대해서도 지금 생각해 봤지만, 불편하지 않았구요. 오히려 현실적으로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생각을 거두란 것은 아니에요. 오히려 용기가 부러워 그렇죠. 뭐 다른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게 있나요?”
“없어요.. 그저, 숨이 막힌다는 느낌. 내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모르겠단 생각. 이게 의미있는 삶인가라는 고민이 생겼을 뿐이에요.”
“딱 1주일만 더 생각해 보세요. 사직서를 올린 날로 1주일 후에 결재하겠습니다. 그 동안 조금 더 생각해 보시고, 제가 결재한 후 주변 사람들에게 얘기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혹시 생각이 바뀔 수 있으니까요.”
사표를 올리고, 1주일 후 팀장님은 더 이상 아무런 말씀없이 내 사직서를 수리하셨고 이후 절차도 성가신 것 없이 진행 될 수 있도록 신경 써 주셨다.
앞으로 5일 후면 난 직장이 없어진다. 지금껏 누려왔던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할 것이고, 지금껏 포기해 왔던 많은 것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설래는 느낌도 아무런 걱정도 아직은 느낄 수 없었다. 사실 너무도 순조롭게 진행되는 퇴사 처리 프로세스가 조금은 서운하기도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10년 넘게 일한 직장에서 내가 나가는 일이 이리도 쉬운 일인지.
마지막 출근 날, 팀장님은 나를 조용히 부르셨다.
“은정씨, 오늘 점심에 팀원들이랑 식사 자리 만들어 놨으니 식사 하시고, 바로 퇴근 하세요. 같이 퇴근하시면 우리가 배웅해 주기 어려울 것 같네요. 우리 팀에 온지 벌써 3년이나 되었는데 된 것 같은데 이 정도는 해야 할 것 같아요.”
동료들과의 식사는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후배들은 작은 케익을 준비해 주었고, 동기들은 운동화를 선물로 주었다.
“니가 먼저 도망가는구나. 왜 뭔가 부럽지?”
대학 선배이자 입사 동기인 지호오빠는 평소와 같이 장난기 섞인 말투로 얘기했다.
마지막은 내가 사용하던 컴퓨터를 정리하고, 챙겨갈 물건을 확인해 봤다. 대부분 회사에서 지급해 준 것들이기에 내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그 동안 많이 닳아버린 슬리퍼와 손때 묻은 마우스패드, 큰맘 먹고 샀던 키보드 정도였다. 난 핸드백에 키보드만 넣고 동료들과 인사한 후 조용히 밖으로 나셨다.
평일 오후의 서울.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보였다. 이제서야 사회로부터의 단절이 조금은 느껴진다.
뭔가 시간이 비게되면 무의식적으로 주변 커피숍을 찾게 된다.
3월 중순이라 아직 찬 날씨지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켜 자리를 잡고 앉아 무언가 생각하려 애썼다.
‘이제 뭘 하지?’
검색창에 ‘퇴사’라고 검색해 보자 뭔가 현실적인 것들과 이상적인 것들이 동시에 나타났다.
‘아.. 건강보험료가 많이 나가는구나.’
앞으로에 대한 생활보다는 당장 지금 뭘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앞섰다.
‘그간 못했던 것들을 좀 해야 겠다.’
서둘러 커피를 마시고 서점으로 향했다.
바쁘단 핑게로 그간 책을 멀리하며 살았던 것 같다.
책표지를 읽다 보니 집을 꾸미는 책들이 많이 보였고, 자연스럽게 동준이가 생각났다. 전공은 다르지만 같은 대학에 다녔었고, 어찌어찌 알게 된 친구였다.
참 재미있는 친구인 것이 얼마전까지 어딘가에서 농사를 짓다 다시 서울로 올라와 있다.
우선 전화를 해 봐야겠다.
전화벨이 채 3번을 울리기 전 동준이가 받았다.
“어이~”
마치 날 지나가는 동네 강아지를 보는 것 같이 별다른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그의 태도가 참 좋다.
“좀 반갑게 받으면 안돼?”
“지금 되게 반가워 하고 있는데?”
“나 회사 그만 뒀어.”
“어~ 잘했네.”
이 친구의 반응은 때론 어디까지가 진심인지 혼란스럽다.
“나 지금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 니가 퇴사 선배로써 조언을 해 주는건 어때?”
“돈을 벌고 싶으면 일자리를 찾아야 할 거고. 너를 찾고 싶으면 하고 싶은걸 찾아.”
“되게 도움이 되네?”
“기분은 어때?”
“응. 아직 뭔가 비현실적인것 같은 기분?”
“불안하거나 걱정이 되진 않아?”
“아직 그런 느낌이 들진 않아.”
“그럼 그냥 좀 시간을 보내봐.”
“오늘 시간 어때? 저녁 같이 할래?”
“그래. 니 자유를 위해 한잔 합시다.”
“지금은 어딘데?”
“회사 근처 까페에 있어.”
“거기 말고 학교 근처로 와. 나도 슬슬 준비해서 나갈게. 봐서 끌리는 가게 들어가 자리잡고 연락할게.”
동준이랑은 특별한 일이 없다면 한달에 한두번 정도는 만났다.
우리의 관계는 주변 사람은 물론 사실 가끔 나도 헤깔린다.
절대적 친구. 서로의 치부를 모두 알고 있는 우리는 서로를 이렇게 부른다.
동준이는 우리가 졸업한 학교 근처 건물에서 살고 있다.
휴대폰을 통해 5시 20분이라는 시간을 확인하는 순간 전화가 걸려왔다.
“나 지금 지하철 내렸어.”
저녁을 먹으며 한달간의 이야기를 했다.
이상하게도 회사를 그만 둔 얘기만 쏙 빼놓고.
동준이는 자연스럽게 테이블에 있는 식기들을 종업원 들이 치우기 쉽게 정리하며 말했다.
“밥 다먹었으니까 앞에가서 맥주한잔 할까?
난 아무말 없이 그를 따라 근처 호프집으로 향했다.
자리에 앉아 주문을 하자마자 난 말했다.
“여행가자. 우리”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동준이는 대답했다.
“예약할게.”
“내가 언제 어딜 가고 싶을 줄 알고?”
“지금 너한테 제일 많은 건 시간일테고, 회사를 그만 두면 대부분 먼 곳으로 떠나니 유럽이 제일 일반적인거 아니야?”
“그렇네. 시간이 많다고 느껴지면 뭔가 걱정이 생기겠지? 뭔가 환기가 필요할것 같아. 난 너무 오래 일했어.”
“다음주 주말에 출발하자.”
난 큰 결심을 한 것 같이 그에게 말했다.
“당장 가도 상관 없잖아.”
그는 어이없다는 듯 날 바라보며 말했다.
“이번주엔 밀린 일을 좀 하고 싶어. 엄마한테도 좀 다녀오고, 기왕 유럽가는거 멋지게 차려입고 폼나게 다녀오고 싶어.”
불현듯 그가 유럽에서 보낸 시간이 생각났다.
“너 살던데 가자. 거기서 공부했으니 말도 잘 통할거 아니야.”
“아~ 내가 널 가이드하라는거지? 꽃보다 할배처럼?”
“꽃보다 청춘이라고 해 줄래?”
동준이는 핸드폰을 꺼내 항공권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직항? 경유?”
그는 고개도 들지 않고 기계적으로 물어봤다. 그를 보면 마치 여행사 직원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시간 많지 않아?”
“그렇지… 우린 시간은 많지.”
그는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더 오래 여행할래. 경유 많이 해도 돼. 아니야 비행기에서 진을 빼고 싶진 않아 직항으로.”
“한 달 정도면 될까?”
“기간은 상관없는데, 너무 여기저기 다니긴 싫어. 니가 아는 곳 위주로 좀 데리고 다닐 수 있어? 난 위로가 필요할 것 같아.”
“대한항공, 바르셀로나 인 마드리드 아웃, 다음주 목요일 출발.”
“열흘 뒤네! 오키. 알았어.”
순간 지금의 행동에 있어 동준이의 입장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많은 부탁을 했었지만, 조금 전 행동처럼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니가 가이드 할거고, 내가 가자고 했으니까 니 항공권은 이 누나가 쏜다.”
애써 쿨한척 말은 했지만, 미안한 감정을 얼굴에서 숨길 수 없었다.
“응.. 고마운데, 됐어. “
“고마우라고 이러는게 아니고, 혹시 알아? 다음에 또 부탁할지.”
“백수라서 안타까워 그러냐?.”
“그래. 사실 그런 것도 있지. 돈 없어서 사채 써서 따라오는게 아닌지.”
“됐다. 니가 항상 나한테 금수저라며. 나도 생각을 정리해야 할 타이밍이었어. 어디든 훌쩍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갈 데가 없어 못 가고 있었어. 이번 기회에 가지 모.”
휴대폰을 내려놓으며 동준이는 말했다.
“놀러 가려니 좋아?”
“잘 모르겠어. 아직 떠나지 않았으니.”
“난 ‘잘 모르겠어’라는 표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어. 어릴 때 엄마랑 아빠랑 이혼했을 때, 내가 엄마한테 괜찮냐고 물어봤었거든. 그때 우리 엄마가 그러더라. 잘 모르겠다고. 근데 난 왜 알 것 같았는지 모르겠어. 지금도 난 니 생각을 알 것 같은데 모르겠는 건 왜일까?”
“그렇지? ‘잘 모르겠어’는 부정적 의미겠지?”
그렇게 동준이와의 만남을 뒤로하고 집으로 들어왔다.
샤워를 한참 했다. 더운 수증기가 욕실에 가득 차도록 오랜 시간 뜨거운 물을 몸에 떨어뜨렸다.
‘잘 한 행동인가?’
평소 내가 한 행동에 대해 후회를 하는 성격은 아니다. 그렇지만 오늘 급작스레 진행된 일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무엇보다도, 너무 내 위주의 생각이지 않았는가에 대한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닸다.
‘일단 오늘은 아무 생각 말고 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