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화: 엄마가 쓴 각본에는 내가 없었다

39살의 독립

by 플맘



87년 2월생, 나는 딱 올해 마흔이 된 여자사람 이다

내가 이 글을 쓰고 싶었던 이유는 40이라는 나이 위에 서서 걸어온 길을 돌아보니,

나의 이 억울하고도 뜨거웠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누군가에게는 변화의 시작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용기가 생겼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두 아들의 엄마이자, 19년 차 플로리스트로 살아온 나의 진짜 이야기를 꺼내 보려 한다.



# 피아노 밑에 숨던 아이

어린 시절의 나는 늘 긍정적이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진 아이였다. 하지만 가족들 앞에서 나는 늘 “무엇을 해도 끝까지 해내지 못하는 아이”, “결국 중요한 순간에 일을 망치는 아이”였다. 나의 학창 시절은 화려함과 주눅이 공존하는 기묘한 시간이었다.


부모님의 노력으로 전학 간 사립초등학교에서 나는 매년 일본 여행과 미국 썸머 스쿨을 경험했다.

남들은 부러워할 환경이었지만, 나는 정작 피아노 선생님이 오면 피아노 밑에 숨어 나오지 않던 불안한 아이였다. 그 시절 내가 누린 것들이 얼마나 큰 부유함이었는지는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알았다.


아빠는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을 사기 위해 밤새 줄을 서주실 만큼 나를 사랑하셨지만,

나의 자존감은 조금씩 금이 가고 있었다.




# 외교관의 꿈을 삼킨 철학관의 예언

나는 언어를 좋아했다. 영어 과외를 즐거워했고 막연히 외교관을 꿈꿨다.

하지만 고등학교 2학년, 문과와 이과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서

엄마의 선택은 '이과'였다.


10살 때부터 꽃집을 운영하며 독일에 유학까지 다녀온 존경스러운 엄마였기에,

나는 반항하지 못했다.


엄마 말을 듣지 않으면 내 미래는 엉망이 될 것만 같았다.


엄마가 정해준 '한의대'라는 목표를 향해 달렸지만, 수능 직전 내 꿈은 좌표를 잃었다.

엄마가 방문한 철학관에서 “얘는 뿌리를 만지는 직업을 하면 안좋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이유였다.


내 이름도, 내 진로도 하루아침에 바뀌었다.


나는 선장의 의지로 항해하는 배가 아니라, 바람이 정해주는 방향대로 움직이는 요트처럼 인생의 항로를 틀어야 했다.



# 39살, 이제야 그 각본을 덮으려 한다

결국 나는 엄마의 제안대로 부산의 대학에 하향 지원했다.

내가 이걸 왜 배워야 하는지 모른 채 들어간 강의실에서 나는 겉돌기 시작했다.

엄마는 “내 일을 같이하면 남들이 우러러보는 삶을 살 수 있다”고 하셨지만,

그 온실 안에서 나는 서서히 시들어갔다.


이제 나는 39년 동안 나를 묶어왔던 그 익숙한 ‘각본’을 덮으려 한다.

타인의 예언대로 인생을 망치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하던 삶 대신,

내가 직접 망치더라도 나만의 문장을 써 내려가는 삶을 선택하려 한다.


이 기록은 한 사람의 뒤늦은 독립 선언문이자,

여전히 그늘 아래서 망설이는 이들에게 건네는 작은 등불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