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영화 감상평

2026년 4월 13일부터 17일까지

by et cetera

주간 영화 리스트


월: 틱, 틱... 붐!(2021)

화: 재즈맨 블루스(2022)

수: 동화지만 청불입니다(2025)

목: 포화 속의 합창(2025)

금: 비트(2019)


주간 영화 별 간단 리뷰

틱, 틱... 붐!

한 줄 평: 야야야 내 나이가 어때서 (오승근-내 나이가 어때서 중)

영화는 90년대 록 뮤지컬의 전설적인 히트작 ‘렌트(1996)’를 만든 조너선 라슨의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다. 그는 퓰리처상을 받은 천재 예술가였지만, 안타깝게도 ‘렌트’의 성공을 보지 못한 채 35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우리에게는 김호영, 조권 배우가 부른 "52만 5천 6백 분"이라는 가사로 친숙한 'Seasons of Love'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그가 뮤지컬 ‘슈퍼비아’ 워크숍을 준비하며 겪는 창작의 고통과 일상을 그린다. 특히 실제 뮤지컬 공연 장면과 주인공의 일상이 교차하며 전개되는데, 그 연결이 무척 자연스럽다. 덕분에 뮤지컬 영화 특유의 갑작스러운 노래 전환에 부담을 느끼는 관객이라도 충분히 몰입하며 즐길 수 있을 듯하다. 개인적으로는 앤드류 가필드의 열연과 뮤지컬 음악 특유의 리듬감을 만끽할 수 있어 매우 즐거운 시간이었다. 뮤지컬에 대해 깊은 지식이 없더라도, 곡마다 담긴 탄생 배경과 조너선 라슨의 상황이 친절하게 설명되어 다채로운 감정을 공유받는 기분이 들었다. 두 시간이라는 상영 시간이 지루할 틈 없이 오로지 노래를 듣는 것만으로도 충만한 경험이었다. 물론 이 영화가 단순한 즐거움에만 머무는 것은 아니다. 주인공의 시선을 통해 당시의 시대상과 자아 성찰, 그리고 동성애와 에이즈 등 묵직한 사회적 이슈들을 함께 던진다. 인물의 심리적 고통을 세밀하게 보여주면서도, 그 상황에 딱 맞는 넘버를 배치한 연출이 돋보였다. 'Come To Your Senses'나 'Therapy' 같은 곡들이 왜 그토록 유명한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영화를 보고 나니 화면 너머 실제 뮤지컬 무대가 궁금해졌다. 기회가 된다면 그의 또 다른 역작인 ‘렌트’도 보고 싶어진다.


재즈맨 블루스

한 줄 평: 벗어날 수 없는 블루스에 갇힌 비운의 재즈맨

음악 영화의 형식을 빌렸지만, 본질은 시대적 배경을 영리하게 활용한 애절한 로맨스 영화에 가깝다. 1940년대 미국 남부의 인종차별 시대를 배경으로, 당시에는 절대 금기시되었던 백인과 흑인의 사랑을 다룬다. 반전과 애절함, 그리고 시대상까지 고루 담아낸 잘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제목이 왜 ‘재즈맨 블루스’인지 그 의미를 곱씹어 보게 된다. 주인공은 재즈 음악을 통해 성공 가도에 오른다. 흔히 재즈가 즉흥성과 유희, 도시의 세련됨과 자유를 상징한다면, 주인공 역시 재즈를 통해 자유로운 삶을 꿈꿨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결국 흑인이 백인을 사랑했다는 당시의 견고한 틀에 갇혀 죽음을 맞이한다. 이는 마치 반복적이고 원초적이며, 개인의 한(恨)을 담아내는 블루스의 속성과 닮아 있다. 결국 무대 위에서는 자유로운 재즈를 노래했지만, 현실의 블루스라는 굴레를 끝내 벗어나지 못한 주인공의 상황을 제목이 관통하고 있는 셈이다. 이야기는 노년의 흑인 여성과 인종차별적 성향이 강한 정치인이 편지를 매개로 마주하며 전개되는데, 마지막까지 반전을 잘 숨겨두어 몰입감이 상당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마무리되는 전개가 신선했고, 넘치는 흥과 끼를 보여주는 노래들도 많아 기대 이상으로 즐겁게 감상했다. 특히 노래와 편지라는 소품을 활용해 과거와 현대, 인물과 인물을 유연하게 엮어낸 연출이 돋보였다. 물론 주인공들의 선택이나 이해하기 힘든 상황들이 조금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만약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 하는 안타까운 상상을 하게 만들 정도였다. 주인공이 작은 시골 마을에서 시작해 시카고에 이르기까지 점차 무대를 넓혀가는 공간적 변화를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하지만 공간은 변해도 차별적인 요소는 여전하다는 사실이 당시의 시대상과 주인공의 처지를 더욱 극명하게 보여준다. 영화 <씨너스: 죄인들(2025)>이 떠오르기도 했지만, 그보다 훨씬 현실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엄청난 대작은 아니지만 마음 한구석을 건드리는 영화였다.


동화지만 청불입니다.

한 줄 평: 환상은 있지만 동화는 없다.

전체적으로 아쉬움이 많이 남는 영화였다.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장르가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극의 재미나 대사가 주는 유쾌함, 위트 면에서 큰 매력을 느끼기 어려웠다. 영화가 던지려는 메시지는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문학계의 폐쇄성이나 성(性)적인 보수주의, 그리고 19금 창작물에 대한 차별 등 우리 사회의 단면을 이야기하려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런 묵직한 주제들이 극의 흐름 속에 매끄럽게 녹아들었다고 보기는 힘들었다. 가장 아쉬웠던 점은 전개가 뚝뚝 끊기는 듯한 느낌이었다는 것이다. 동화라는 소재에 깊이 있게 파고드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성인물에 대한 담론이 자세히 다뤄지는 것도 아니어서 코미디 그 이상의 지점으로 나아가지 못한 인상을 받았다. 취향에 맞지 않는 코미디 코드도 안타까움을 더했다. 조연들의 행동은 다소 뜬금없게 느껴졌고, 그들의 설정이 소설의 인기와 연결되는 과정 역시 개연성이 부족해 보였다. 차라리 동화적 요소를 비트는 '잔혹 동화'나 '블랙 코미디'적인 측면을 더 부각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제목처럼 '동화지만 청불'인 어른용 동화라는 정체성을 확실히 했다면 훨씬 유쾌했을 것 같다. 하지만 영화는 자아 성찰, 아버지와의 약속, 평면적인 빌런과의 대립 등 너무 많은 요소를 엉성하게 엮으려다 보니 오히려 흐름이 튀고 말았다. 영화를 보며 문득 현실적인 의문들도 생겼다. 출판사 사장이 고가의 외제차를 타고 다닐 만큼의 부를 축적하는 것이나, 엄격해야 할 공무원 조직의 보안이 쉽게 무시되는 설정 등이 그러했다. 또한 우리 사회가 정말로 장르 문학을 문학으로 인정해 주지 않는지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물론 영화적 설정이겠지만,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포화 속의 합창

한 줄 평: 솔로 파트가 아쉬운 합창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을 배경으로,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 예술과 음악이 지니는 존재 이유와 그 위로의 시선을 담아낸 작품이다. 영화는 에드워드 엘가의 거대한 합창 걸작, ‘제론티우스의 꿈’을 완벽하게 무대에 올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을 비춘다. 사실 에드워드 엘가의 이 곡은 한 남자가 죽음 이후 천사의 인도를 받아 연옥을 거쳐 천국에 이르는 영혼의 여정을 담은, 영국 음악사에서 매우 위대한 위치를 차지하는 오라토리오다. 하지만 영화는 이런 배경지식을 관객에게 친절하게 설명해 주지 않는다. 음악에 깊은 조예가 없는 나에게는 오라토리오나 콰이어 같은 용어들이 낯설게 다가오고, 극 중 소년들이나 평범한 시민들이 나누는 대사들 또한 그저 스쳐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지기 쉽다. 합창을 향한 열정은 느껴지지만, 전문적인 장벽을 허물어주지 못한 연출상의 불친절함은 개인적으로 못내 아쉬운 대목이었다. 영화가 전쟁을 다루는 방식은 사뭇 간접적이다. 포화가 빗발치는 전장을 직접 보여주는 대신, 젊은 남성이 사라진 채 노인과 소년들만 남은 마을의 풍경, 신문 기사 속 피해 소식, 부상을 입고 돌아온 병사들의 초췌한 모습 등을 통해 전쟁의 비극을 비춘다. 특히 주인공 거스리 박사의 시선을 통해 강제 징병과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 대한 심사 등 당시 사회의 모순과 세대·성별 간의 불통을 냉소적으로 비판하는 지점은 꽤 강력한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적 재미는 다소 그저 그랬다. 노래와 마지막 합창 장면은 귀를 즐겁게 했지만, 가슴을 울리는 감동이나 안타까움 같은 감정적 동요는 크게 일어나지 않았다. 전쟁의 비극과 대비되는 마을 사람들의 평온한 합창 연습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지긴 했으나, 그 합창이 인물들에게 어떤 실질적인 구원이 되었는지는 명확히 와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성당을 향해 울려 퍼지는 노래에 사람들이 공명하는 순간조차, 중심축 없이 흩어진 여러 인물의 서사에 가려져 감정의 밀도가 분산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다양한 인물의 사연을 엮으려 하기보다, 차라리 시리즈물로 호흡을 길게 가져가며 각자의 서사를 깊이 있게 다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전체적인 조화는 갖추려 노력했으나, 강렬한 솔로가 없으니 이 영화는 내게 솔로 파트가 아쉬운 합창 같은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다.


비트

한 줄 평: 노래의 요소가 쌓여가듯 나아가고 이겨내는 것

평소 힙합이나 흑인 음악에 대한 배경지식이 좀 더 풍부했더라면, 이 영화를 훨씬 깊이 있게 이해하고 즐길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먼저 든다. 주인공이 만드는 노래들이 분명 좋게는 들리지만, 힙합이라는 장르 자체가 나에게는 조금 낯설다 보니 '이게 정말 최고라고 할 만한 곡인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시카고 특유의 거칠고 삭막한 분위기를 구현해낸 연출만큼은 정말 훌륭했다. 그 공기 속에 깔리는 배경음악(BGM)들이 영화와 아주 찰떡같이 어우러져서 몰입을 도와주었다. 스토리가 다소 뻔하게 느껴질 수도 있고, '카리'라는 인물 한 명을 위해 비트를 만들다 보니 음악적 다양성이 부족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과감한 연출이나 주인공이 보여주는 특유의 답답한 면모는, 그간 힙합 영화에서 흔히 보던 전형적인 캐릭터가 아니라서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왔다. 영화는 방 안에만 틀어박혀 비트를 만들던 아이가 클럽으로, 그리고 마침내 세상 밖으로 다시 나오는 과정을 보여준다. 감독은 '회복'이라는 단어를 이토록 길게 풀어낸 것 같다. 스토리 자체가 엄청난 매력을 뿜어내기보다는, 음악이 점차 완성되어가는 과정과 주인공의 활동 범위가 방 안에서 세상으로 점차 확장되는 그 '공간의 변화'를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사실 영화가 눈을 떼지 못할 만큼 재미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래서 보는 내내 인물들의 대화나, 주인공이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에 더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만약 내가 힙합 비트에 대해 더 잘 알았더라면 즐거움이 배가 되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래도 마지막 엔딩곡이 가장 좋게 들렸는데,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노래 참 좋다'고 느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영화를 잘 본 게 아닐까 싶다. 한편으론 자식을 보호하려는 부모의 마음을 다 헤아릴 순 없지만, 딸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에 과잉보호하는 설정은 익숙하게 느껴졌다. 이런 장치는 참 많은 영화에서 쓰이는 것 같다. 지금 우리 세대가 나중에 부모가 된다면, 그때는 또 어떤 다른 부모 자식 간의 이야기가 나올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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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영화 감상평


음악과 영화는 참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서로를 보완하고 돋보이게 만드는 관계로, 이제는 배경음악을 넘어 합창, 힙합, 재즈, 뮤지컬 등 음악 자체를 소재로 한 영화까지 그 범주가 넓어졌다. 영화라는 매체가 담을 수 있는 가장 매력적인 소재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고 생각한다.

해외에서 성공한 음악 영화를 떠올리면 ‘위키드(2024)’, ‘보헤미안 랩소디(2018)’, ‘레미제라블(2012)’, ‘라라랜드(2016)’, ‘비긴 어게인(2014)’ 등이 있다. 흥행과는 별개로 ‘스타 이즈 본(2018)’, ‘원스(2007)’, ‘위플래쉬(2014)’도 파급력 있는 작품으로 기억한다. 우리나라 영화 중에는 ‘하모니(2010)’, ‘파파로티(2013)’, ‘서편제(1993)’ 정도를 음악 영화로 꼽을 수 있다.

그런데 이 목록을 늘어놓고 보니 한 가지 질문이 생긴다. 우리나라에서 정말 성공한 음악 영화가 뭐가 있을까. OST가 히트한 영화가 아니라, 영화를 즐겨 보지 않는 사람도 알 만한 음악 영화 말이다. 생각해보면 선뜻 떠오르는 작품이 많지 않다.

이유를 생각해봤는데, 우선 뮤지컬 형식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것 같다. 주변 지인들도 대사를 하다가 갑자기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낯설고 어색하다고 말한다. 디즈니조차 어색하게 느끼는 경우가 있을 정도니, 현실감이 떨어지는 상황에 좀처럼 적응이 안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또 하나는 음악을 감동의 장치로 쓰는 경향이다. 편향된 시각일 수 있지만, 앞서 언급한 우리나라 음악 영화들만 봐도 노래가 감정을 극대화하는 수단으로 주로 쓰인다는 느낌을 받는다. 음악이 그 자체로 빛나기보다 감정을 전달하기 위한 도구로 쓰이다 보니, 좋은 OST가 나온 영화는 있어도 음악 영화로서 좋은 평가를 받는 작품은 드문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변산(2018)’이나 ‘쎄시봉(2015)’ 같은 영화가 그 한계를 조금이나마 넘어보려 한 시도였다고 느낀다.

물론 이런 경향이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OTT가 일상이 된 지금은 유명하지 않은 외국 영화도 쉽게 접할 수 있어서, 예전처럼 검증된 작품만 보던 시절과는 다르다. 감정선을 비슷하게 강요하는 외국 음악 영화도 생각보다 많다는 걸 이제는 알게 됐다. 이번 주에 본 영화들도 그런 면에서 조금 아쉬웠다. 음악이 압도적으로 좋거나, 아니면 서사와 음악이 긴밀하게 맞물리거나, 둘 중 하나는 되어야 좋은 음악 영화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쪽에만 치우치거나 감정에만 기댄다면, 감독이 전달하고자 한 것이 온전히 닿기 어려울 것이다.

결국 음악만으로 영화를 만드는 건 어렵다. 감동적인 서사, 음악을 하며 겪는 고통, 노래가 탄생하는 이유까지 엮어야 하나의 영화가 된다. 그럼에도 감동이라는 요소에서 조금만 벗어난다면 더 좋은 음악 영화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다. ‘조커: 폴리 아 되(2024)’가 뮤지컬로 나왔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실망했는지를 보면, 관객들이 음악 영화에 거는 기대가 얼마나 까다로운지 알 수 있다.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이 함께 충만할 때, 영화라는 장르를 가장 잘 활용해서 만든 작품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그 사실을 모두가 알기에 좋은 음악 영화를 만들려는 시도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 모든 시도를 응원한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 주는 또 어떤 영화를 볼까?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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