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20일부터 24일까지
월: 파이트 클럽(1999)
화: 나이트 크롤러(2014)
수: 코트 스틸링(2025)
목: 180(2026)
금: 그렇게 난 갱스터와 사랑에 빠졌다(2022)
한 줄 평: 언제부터 어디까지 나도 모르게
개봉한 지 30년이 다 되어가는 영화지만, 이미 결말과 반전을 다 알고 봐도 여전히 소름 돋게 재미있는 영화다. 척 팔라닉 작가님의 소설‘파이트 클럽(1996’)을 원작으로 하며, 지금 봐도 참 세련되고 강렬하다. 이 영화는 사회 비판적이고 저항 정신이 가득한데, 연출이 아주 차갑고 깔끔해서 매력적이다. 제목처럼 소위 '상남자' 같은 분위기가 풍기면서도, 중간마다 한 프레임씩 스포일러를 보여주는 등 실험적인 연출이 많아 난해하고 어려울 수 있지만 그마저도 즐거움으로 다가온 영화라고 생각한다. “두 번 봐야 더 재미있는 영화"라는 말이 있는데, 이번에 다시 보며 그 이유를 확실히 느꼈다. 반전을 알고 보니 예전에는 놓쳤던 장면들이 새롭게 보였고, 영화라는 장르가 줄 수 있는 특유의 짜릿한 매력을 두 번째 관람에서 더 깊게 맛볼 수 있었다. 젊은 시절 브래드 피트의 멋과 에드워드 노튼의 신들린 듯한 1인 연기는 그야말로 압도적이다. 또한, ‘해리포터’ 시리즈의 벨라트릭스로 익숙한 헬레나 본햄 카터도 배역에 완벽하게 녹아든 모습을 보여주고, 아주 어린 시절의 잘생긴 자레드 레토를 발견하는 재미도 새로웠다. 평범한 소시민이 테러를 모의한다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이걸 비현실적인 블랙 코미디로 풀어내서 그런지 오히려 지금 시대에 더 잘 어울리는 영화라는 생각도 든다. 감독의 전작인 ‘세븐(1995)’만큼이나 잔인하고 불쾌한 묘사들이 등장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를 훨씬 더 흥미진진하게 보았다. 물론 후반부 내용이 갑자기 극단적으로 치닫는 느낌이 있어서 사람마다 호불호는 갈릴 수 있겠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작품이라 생각한다.
한 줄 평: 나이트 트롤링
'나이트 크롤러'라는 제목처럼, 주인공 루이스(제이크 질렌할)는 밤의 비극을 수집하는 차가운 로봇 같다. 요즘 AI 봇이 데이터를 크롤링(Crawling, 데이터 수집 및 저장하는 것)하듯, 사건 현장을 기계적으로 훑는 그의 모습에서 소름 돋는 광기가 느껴졌다. 영화 내내 마음이 참 불편했는데, 그만큼 배우의 연기가 압도적이었다는 증거일 거다. 영화는 관객이 주인공을 응원할 틈을 주지 않는다. 특종을 위해 현장을 조작하고 증거를 숨기는 루이스의 행보는 명백한 악이다. 현란한 말솜씨로 허세를 부리지만 정작 나사는 하나 빠진 듯한 그의 대사들은, 익명성 뒤에 숨어 자신이 정답인 양 구는 요즘 정보 사회의 어두운 면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사실 이런 글을 쓰는 나조차 누군가에게는 그런 존재일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특종에만 매몰된 방송국의 모습도 정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올바른 소리를 하는 사람을 오히려 이상하게 만드는 모습이 지금과 무엇이 다를지 고민하게 된다. 비주얼적인 연출도 기억에 남는다. 강박적으로 깔끔하지만, 온기라곤 전혀 없는 주인공의 집은 그의 내면 그 자체였다. 영화 ‘라라랜드(2016)’의 낭만적인 LA가 맞나 싶을 정도로 도시를 어둡고 공포스럽게 그려낸 분위기 역시 기억에 남는다. 메시지는 확실하지만 보고 나면 기분이 꽤 찝찝하고 잔상이 오래 남는다. 어둡고 불편한 스릴러를 즐기지 않는다면 추천하기 조금은 조심스럽다.
한 줄 평: 도루는 실패했지만 역전 홈런 한 방으로 경기 끝내기
찰리 휴스턴 작가님의 소설 '코트 스틸링(2004)'을 원작으로 한다. 영화는 기대보다 훨씬 세련된 영상미와 속도감을 보여준다. 1998년 뉴욕 로어 이스트 사이드의 거칠고 빈티지한 분위기를 공간마다 아주 잘 구현했는데, 덕분에 자칫 뻔할 수 있는 스토리가 훨씬 매력적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과거의 실패와 현재의 도주를 교차하며 보여준다. 제목인 '코트 스틸링(Caught Stealing)'은 야구에서 도루 실패를 뜻하는데, 한 단계 더 나아가려다 결국 고꾸라진 주인공의 인생을 비유하는 것 같아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개도 꽤 극단적이고 잔인해서 스릴러로서의 재미는 충분하지만, "정말 저렇게까지?" 싶을 정도로 몰입이 세서 호불호는 갈릴 듯하다. 다만 인물들의 감정선은 조금 의아하다.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해 주변을 파멸시키는 주인공을 보면 그를 곁에서 지키는 여자 친구가 안타까울 정도다. 특히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어머니에게 집착하듯 효도하는 장면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주인공이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지금의 이정후 선수 팀)에 지명됐던 유망주였다는 설정도 조금 아쉽다. 소설에선 어떨지 몰라도, 영화에선 단순히 제목의 비유를 위해 끼워 맞춘 설정 같았기 때문이다. 굳이 의미를 찾자면 가장 밝은 곳을 꿈꾸던 운동선수가 가장 어두운 바텐더로 추락했다는 대비 정도일까. 그래도 주인공이 특수부대 출신 같은 뻔한 설정이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운동선수 특유의 집념과 생존 본능으로 포장한 것이 신선했고, 무엇보다 '잡히다(Caught)'라는 중의적 표현을 야구 용어로 풀어낸 언어유희가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닌가 싶다.
한 줄 평: 아이가 있다면 더욱이 안전운전
영화 제목인 ‘180’은 단 하나의 사건으로 완전히 뒤집혀버린 상황을 뜻하는 것 같다. 성공한 사업가로 행복했던 가정이 아들의 죽음과 함께 박살나고, 부패한 경찰과 금융 시스템이라는 180도 다른 현실을 마주하게 되는 과정을 담았기 때문이다. 특히 마지막에 자신과 악연인 회사의 택시를 타게 되는 장면은, 거대한 시스템 앞에 개인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비참함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아프리카의 거리나 극심한 빈부격차, 부패가 만연한 도시의 풍경을 담아낸 영상미는 훌륭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재미 면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스토리나 음악이 조금 빈약하게 느껴졌고, 무엇보다 내용이 끝까지 답답하고 찝찝하게 진행되다 보니 내 취향과는 거리가 좀 있었다. 그래도 사회의 부조리에 맞선 한 시민의 처절한 발버둥을 잘 만들어낸 영화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문득 '내가 저 상황이라면 어땠을까'를 생각해 보게 된다. 일단 나였다면 아예 보복 운전 자체를 안 했을 것이다. 사소한 시비가 이런 비극으로 이어지지 않기를 바랐을 테니까. 하지만 영화 속 배경처럼 치안이 불안한 곳이었다면, 나 역시 기죽지 않으려 더 과장되게 행동했을지도 모르겠다. 영화 ‘보통의 가족(2024)’도 비슷한 사건으로 시작하는데, 결국 이런 보복 운전이 모든 비극의 시발점이라는 사실이 무섭게 다가온다. 결론이 '안전운전'으로 귀결되는 게 조금 이상해 보일지 몰라도, 영화를 보고 나니 그게 얼마나 중요한지 뼈저리게 느껴진다.
한 줄 평: 3시간 동안 빚어낸 주변 사람이 사랑한 갱스터의 모습
영화는 폴란드 범죄계의 전설적인 인물, 니코뎀 '니코시' 스코타르차크의 일생을 다룬 전기 영화다. 3시간이 넘는 긴 러닝타임 동안 그의 유년기부터 노년까지를 훑어 내려가는데, 그 과정이 마치 관객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연출로 그려진다. 화려함 속에 감춰진 고독을 그린다는 점에서는 영화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2013)’나 ‘에비에이터(2004)’가 연상되기도 했다. 영화의 가장 큰 묘미는 방대한 사건들을 다루는 방식에 있다.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긴 일대기를 마치 구연동화처럼, 혹은 배우들이 제4의 벽을 넘어 관객에게 말을 거는 방식으로 풀어낸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주인공 니코시가 직접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 인물들이 그를 회상하고 평가하는 형식을 취한다는 것이다. 만약 본인의 목소리로만 전달됐다면 일방적인 주장에 그쳤겠지만, 타인의 시선을 빌려 구성한 덕분에 그를 갱스터 이전에 하나의 입체적인 '사람'으로 보게 만든다. 서사는 크게 '부흥-위기-몰락'이라는 전형적인 틀을 따르지만, 그 안을 채우는 디테일은 절대 단순하지 않다. 당시 독일과 폴란드의 시대적 배경과 환경을 충분히 활용하여 시대가 변함에 따라 달라지는 주변 인물들과 공간을 세밀하게 담아 냈다고 생각한다. 자동차, 마약, 사랑, 가족 등 다양한 요소를 적재적소에 배치해 3시간이라는 물리적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유지한 점이 인상적이다. 범죄의 기술적인 측면보다는 인물의 생각이 어떻게 변해가고, 그가 내린 선택이 어떤 결과를 불러오는지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영화가 묘사하는 니코시는 단순히 성공과 몰락을 겪은 범죄자가 아니다. 그는 지독하게 사랑을 갈구하는 외로운 사람이면서도, 성공에 목마른 인정 욕구가 강한 인물이다. 지시받는 것을 싫어하고 변덕스러우며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지만, 동시에 가족에 대한 사랑만큼은 넘쳐나는 복합적인 인물이다. 매력적이면서도 사기꾼 같은 그의 다채로운 면모가 영화 전반에 잘 녹아 있다. 물론 주인공의 일생을 쭉 따라가는 전기 영화의 특성상 3시간이라는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제약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말을 건네는 듯한 독특한 연출과 매력적인 영상미, 그리고 인물 간의 관계 변화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볼 가치가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가끔 오마주처럼 보이는 장면들조차 니코시라는 인물의 화려한 삶과 잘 어우러진다. 영화를 보고 나면, 그의 최후가 그러했듯 이 인물의 어디까지를 믿어야 할지 묘한 여운이 남는다.
파이트 클럽
파이트 클럽
코트 스틸링
주인공이 악인이라면 응원해야 할까, 아니면 망하기를 바라야 할까. 장르가 다양해지면서 도덕적으로 문제 있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피카레스크(Picaresque) 장르도 하나의 축으로 자리 잡았다. 우리가 평소에 하지 못하거나 말하지 못한 욕망을 이런 인물들이 대신 표출해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악인을 주인공으로 삼는 방식에도 나름의 분류가 있다. 첫 번째는 안티히어로(Anti-hero)다. ‘파이트 클럽(1999)’처럼 반사회적이지만 소시민을 대변하는 인물로, 최근에는 ‘데드풀(2016)’이 가장 유명한 사례일 것이다. 이 유형은 마냥 악인으로 단정 짓기 애매하게 설정되어, 극한의 빌런과 대립하는 과정에서 결국 선을 위할 것이라 믿고 응원하게 만든다. 그래서 인물이 왜 악인이 되었는지, 과거와 사연을 함께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두 번째는 사연 없이 인물 자체를 악당으로 만드는 빌런(Villain) 영화다. ‘조커(2019)’와 ‘아메리칸 사이코(2000)’가 대표적이다. 이 유형의 주인공은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고 광기를 바탕으로 오직 자신만을 위해 살아간다. 심리 묘사와 파멸의 과정이 주된 내용이 되고, 더 나아가 이 빌런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서사를 담기도 한다. 이 지점에서 피카레스크 장르와 경계가 흐려진다.
개인적으로 피카레스크는 사회의 부조리를 느끼거나 이를 이용하려는 인물을 중심에 둔다고 생각한다. ‘나이트 크롤러’가 전형적인 예인데, 도덕적으로 결여된 사이코패스 주인공을 통해 그를 이용하는 방송국과 그의 영상에 환호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함께 보여준다. 사회의 민낯을 담아내는 것이 이 장르의 핵심이다. ‘180’ 역시 시스템에 맞서던 개인이 결국 자신이 무너뜨리려 했던 택시 회사의 택시를 타게 되는 아이러니로 마무리되며, 냉소적인 시선을 담아낸다.
그렇다면 악인의 일대기를 다루는 영화는 어떻게 볼까.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2013)’, ‘캐치 미 이프 유 캔(2002)’처럼 실존 인물의 전기를 영화화한 작품들이 꾸준히 나온다. 성공과 몰락, 당시 사회의 비합리성, 비정상적인 성공 과정을 보여주며 대리만족과 경계심을 동시에 자극하는 장르다. 피카레스크와 빌런 영화의 성격을 동시에 가지고 있어 흥미롭고, 무엇보다 사람 사는 이야기가 원래 가장 재미있다. 미화만 되지 않는다면 언제든 환영할 장르다.
악인이 가진 매력은 결국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대신해준다는 쾌감이 아닐까. 당당하게 사람을 때리고, 일확천금을 벌고,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파티를 여는 모습을 보는 것 자체가 자극적이다. 그러면서도 담담하게 만든 전기 영화가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악인을 매력적으로 포장하는 것이 미화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그 몰락까지 제대로 보여준다면 그 걱정은 덜어도 되지 않을까. 더 다양한 악인을 보고 싶어진다.
그 핑계로,